[ 표지이야기 ] 2003년09월25일 제477호 

첫 평양관광, 통념을 깨다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주려는 북한 당국의 화끈한 노력에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4박5일

바닷길, 땅길에 이어 하늘길이 열렸다. 첫 평양관광의 모든 일정을 임을출 기자가 취재했다. 북한 당국은 예전처럼 숨기려 들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려 했다. 관광객들은 4박5일이 꿈만 같았다고 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처녀와 같았던 평양이 모처럼 속살을 드러냈다. 9월15일부터 닷새간의 첫 일반인 평양관광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평양은 예로부터 ‘공원도시’로 불릴 만큼 녹지대가 많다. 더구나 주요 거리마다 다른 종류의 가로수를 심어놔 눈이 심심하지 않다. 따라서 평양은 가을에 볼만하다. 각양각색의 가로수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평양은 무공해 도시로 불릴 만큼 깨끗하다. 자동차나 공장 매연이 없고, 소음에 찌들지 않아 좋다.


사진/ 150m 높이의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평양시 전경. 대동강변의 녹지대는 ‘공원도시’ 평양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관광산업의 매력에 눈을 뜨다

남쪽 보통사람들의 대규모 평양관광길이 본격화되면서 평양은 이제 더는 은둔의 땅도, 동토의 땅도 아니다. 또 위정자나 선택된 몇몇 사람들만의 관광코스도 아니다. 누구든 원하면 동강 난 또 다른 민족의 수도인 평양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북녘땅 흙내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게 됐다. 북한 당국은 이전 증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남쪽 인사들에게도 차츰 문호를 열 작정이란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북한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돌아가면 족하다는 것이다. “남쪽 손님을 한 사람이라도 더 모시면 그 과정에서 북남 통일이 앞당겨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쪽에 돌아가셔서 친지나 동료들을 만날 때 한마디라도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북쪽 책임 안내원 김아무개씨의 당부가 평양관광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평양 곳곳에 들어선 상점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선물용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우선 북한 당국은 관광이 낳는 금전적 실익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갖는 듯했다. 관광지 곳곳에 북한의 각종 특산물과 공예품, 약제, 술, 식료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바야흐로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산업의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한 탓이다. 이들은 관광이 어려운 주변 국제정세 속에서 적은 투자만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고용을 늘리며, 호텔 숙박시설과 도로 등의 인프라 시설을 차츰 늘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실제 이들은 관광객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관광객에게 선보인 제품들의 가짓수도 크게 늘었다. 주류 등 일부 제품의 포장은 몰라보게 세련돼졌다. 더 많이 팔기 위해 옆 가게와 경쟁도 한다. 한명의 관광객이라도 더 끌어들이려는 이들의 노력은 외화벌이와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평양 시내뿐 아니라 시골 호텔 상점의 안내원들도 이제 제법 세련되게 물건을 홍보하고 파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내원들의 극진한 고객 서비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이나 관광을 ‘자본주의의 불순한 부산물’이나 ‘자본주의 확산의 첨병’으로 경계해온 데 비춰보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이번 평양관광에서 감지된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들은 앞으로 수년 안에 닥쳐올 관광분야, 나아가 북한사회의 혁명적 발전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만큼 북한은 이번 평양관광길에서 남쪽 관광객들에게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적 대우를 해주었다. 일부 관광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인 보통강변을 달리기도 했고, 밤에는 다른 호텔의 노래방이나 식당에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거나 단고기 등 평양 고유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평양 야경을 보고 싶다는 관광객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는가 하면, 특별히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데려다 주려는 성의를 보였다. 50년 넘게 북한체제의 경직성과 통제성을 익히 들어온 60, 70대의 남쪽 관광객들은 연일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들의 마음은 열려 있었다. 이는 또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사진/ 모란봉 을밀대에서 만난 평양 중등학생들의 해맑은 모습들. 야외학습을 위해 나온 이들은 남쪽 관광객과 어울려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눴다.


평양관광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많은 북한 주민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부터 유치원생, 초중대학생들, 노동자, 농민 심지어 군인들까지 쉽게 볼 수 있다. 이번 관광길에 만난 북한 주민은 거의 적게는 수천명, 많게는 수만명에 이르렀다. 평양 시내 지하철, 묘향산 등산길, 정주 시골길, 모란봉 산책길, 보통강변 등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제 남쪽 관광객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관광객을 향해 먼저 손을 흔들며 반갑다는 인사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전에 가급적 남쪽 관광객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다양한 북한주민 접촉 배려해줘

묘향산 등산길은 이번 여행 중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 곳이었다. 평양, 신의주 등지에서 왔다는 북한 주민들은 스스럼없이 남쪽 관광객과 어울리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즉석에서 ‘진도아리랑’ ‘반갑습니다’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저도 서울에 있는 삼각산을 한번 꼭 오르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오갔지요.” 신의주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일한다는 김아무개(43)씨의 말이었다. 마침 휴식차 묘향산을 찾은 수십명의 남녀 김책공대 학생들은 등산길에서 남쪽 관광객들의 손뼉을 일일이 마주쳐주며 반겼고, 나이 많은 실향민들에게 향나무로 직접 만든 지팡이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사진/ 아들을 목말 태운 채 묘향산 만폭동 계곡길을 오르는 북한 주민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이들에겐 이제 더는 남쪽 사람들이 이방인이나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남쪽 주민들이 자기들보다 잘산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도 빤히 알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 왜 끌려갈 수밖에 없는지도 조금은 이해하는 듯했다. 국가 이기주의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국제정세 속에서 그래도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피를 나눈 남쪽 동포가 그 누구보다도 미더울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핵문제가 심각하기는 하나 남쪽이 반대하는 한 전쟁이 일어나겠느냐며 자위하기도 했다. 남북한 주민간의 마음 거리가 한층 가까워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북남 정상간의 6·15 공동선언 이후 생겨난 현상입니다. 수많은 남쪽 사람들이 이런저런 목적으로 공화국을 다녀간 탓이죠.” 한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그는 이런 대규모 관광이 본격적으로 실현된 데에는 남쪽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크게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남북 냉전기에는 북한에 와서 간첩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 탓에 가급적 소수의 남쪽 인사들만 초청했으나, 이제 그런 염려는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지 와서 마음껏 보라고 권할 정도로 사정이 변했다는 게 그의 귀띔이었다. 관광은 50년 넘게 막혔던 보통 주민간 교류의 숨통을 트이게 하고, 민족애 교류의 디딤돌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바로알기의 좋은 교육 기회

평양관광은 북한 바로알기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북한 주민들이 아침 몇시에 집을 나서, 어디로 향하며, 무엇을 하는지, 집에 와서 무엇을 하고 언제 자는지 등을 엿볼 수 있다. 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고, 아니면 관광 안내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생활비가 얼마나 되며, 이 돈으로 무엇을 주로 사는지 등 그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많은 궁금증들을 풀 수 있다. 북한 보통 주민들의 진솔한 삶을 그대로 들춰볼 수 있는 셈이다.


사진/ 평양 영광거리에 있는 부흥역 앞, 주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정말 화끈해졌다. 금강산관광총회사에서 나온 북쪽 안내원의 첫 인사말은 이랬다. “남쪽에서 자선·종교 단체들이 가슴 뜨거운 동포애 정으로 식량, 비료 등을 지원해줘 고맙게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자체적으로도 20만정보의 토지를 새로 정리하는 등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도움만 받을 수는 없지요.” 남쪽 관광객들의 미묘한 긴장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6명 안내원 모두 언변이 뛰어났다. 이들은 유머와 재치까지 겸비하고 있어 4박5일의 여행이 지겨울 틈이 없었다. 나이 많은 노인들이 빡빡한 일정으로 힘들어할 때 이들은 전혀 싫은 내색 없이 이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고 등을 밀어주는 등 노인을 극진히 대우하는 모습까지 보여줘 관광객들이 흐뭇해 하기까지 했다. 김일성종합대, 평양외국어대 등 명문대 출신들로 짜여진 안내원들은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도 능숙한 북한이 자랑하는 엘리트들이다.

과거 평양을 다녀갔던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곧잘 한다. “북한에 가면 정해진 코스에 따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장소만 둘러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을 접촉하기 어렵고, 보고 듣는 게 별로 없어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번 평양관광길은 기존 통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너무 많이 보고 듣고 사람들을 만나 더 혼란스럽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랬다. 북한은 4박5일이라는 짧은 일정 안에 가급적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관광객들은 평양 시내 지하철을 시승하고, 만경대학생궁전, 동명왕릉, 주체사상탑, 개선문, 모란봉, 창광유치원 등을 돌아봤으며, 멀리 정주와 안주, 예정에 없던 지하동굴 관광명소로 유명한 룡문대굴까지 관광할 수 있었다. 룡문대굴은 평양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2시간 남짓 떨어진 평안북도 구장군 용문리에 자리잡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찾아 “룡문대굴은 볼수록 희한합니다”라고 친필을 남길 만큼 비경을 뽑내는 곳이다. 남쪽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기는 처음이며, 동굴 안에 흐드러지게 핀 돌꽃으로 유명하다. 이번 평양관광길을 연 평화항공여행사쪽 관계자는 “조만간 북한과 협의해 공개되지 않은 관광명소들도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핵위기 타개하려는 내밀한 의도

북한 당국의 더 내밀한 의도도 엿보인다. 핵위기라는 험난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관광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목표가 있다. 서방 언론에 한껏 왜곡된 자신들의 이미지를, 관광으로 인식의 교정을 자연스럽게 꾀한다는 것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낙후된 사정을 회피하지 않고 직접 설명해줌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꼭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이렇게 불편하게 모시고 싶지도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모셨습니다. 이해할 줄로 믿습니다.” 북쪽 책임 안내원의 설명 속에서도 그들의 꾸밈없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북한은 정치와 사상 측면에서는 강국이나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라는 점을 조금도 스스럼없이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집요하고 오랜 경제제재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적대관계만 해소되면 금방 나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사진/ 북한의 시골길은 대부분 비포장 상태로 먼지를 뒤집어쓰기 일쑤다. 평안북도 정주 가는 길에 노동자들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지나가고 있다.


어쨌든 북한 당국은 치부를 드러내는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특히 평양에서 안주를 거쳐 평안북도 정주로 가는 길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가을의 시골 풍경과 달리, 삽과 곡괭이로 취락구조개선사업을 하거나 지게로 흙과 돌을 나르는 노동자, 오래 전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목탄차가 지나가고, 커다란 등짐을 지고 먼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촌로들의 고단한 모습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시골길은 대부분 비포장도로인지라 먼지를 온몸에 덮어쓸 각오를 해야 한다. 북쪽 안내원의 민망해하는 모습 속에서도 그들의 치부를 드러낸 데 대한 고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나날이 다른 발전상을 보이고 있었다. 평양 시내와 주변 지역 도로에는 지프와 대형트럭이 속력을 내며 질주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고, 전력 사정도 나아진 듯 보였다. 밤 9시만 지나면 불빛 구경하기가 어려웠으나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고층 아파트들에는 환히 밝힌 백열등들을 목격할 수 있다. “지방에 중소형 발전소를 많이 지어 자체 전력난을 해결한 탓에 평양의 전력 사정이 크게 나아졌다”는 게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주민들의 표정도 화사한 옷차림 탓인지 한층 밝아보였다. 지난해 7·1 경제관리 개선조처 이후 인센티브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남보다 열심히 일한 주민들은 누구나 좋은 옷들을 사 입을 수 있게 된 탓이다. 이제 평양에는 강남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세련된 옷을 입고 사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산업발전 단계 차원에서도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다. 여전히 전반적으로 낙후된 산업구조가 존재하지만 일각에서는 남쪽 기업과의 합영으로 고급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일부 특권층은 누군가에게 휴대전화를 거는 장면까지 관광객들의 눈에 들어왔다. 평양컴퓨터센터에서는 국제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인공위성을 통해 <홍콩스타텔레비전> 등을 시청하며 바깥 세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소모적 이념논쟁’ 오히려 회피

“한번 잘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장병석 한국소니 고문의 평가처럼, 북한은 그들이 흔히 내세우는 ‘모두가 잘먹고 잘사는’ 체제 유지를 위해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특히 소모적인 이념논쟁은 오히려 북쪽 사람들이 회피하려고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핵’과 ‘전쟁’만을 선호하고 남한이나 국제사회와의 공생을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자신들 체제의 민감한 부분까지 드러내 보여주면서 많은 관광객을 깊숙이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많은 북쪽 사람들은 핵문제를 빌미로 군사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있는 미국을 겉과 달리 내심으로는 크게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핵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풀고, 미국 등 주변국과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면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평양관광은 아주 특별했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이나마 북한 보통 주민들의 살내를 가까이 맡아서 좋았고, 그들만의 내밀하지만 진솔한 삶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그곳에도 희(喜), 노(怒), 애(哀), 낙(樂), 애(愛), 오(惡), 욕(慾) 등 ‘7정’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평양순안비행장에 도착하자마자 북쪽 안내원이 “관광가이드 수년 만에 이런 기분 처음입니다. 감격에 말문이 막혀 말이 잘 안 나옵니다. 남쪽 동포들 얼굴을 직접 맞대니 다들 내 아버지, 누이, 한 형제 같습니다. 짧은 관광기간이나마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어 한 식솔,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라는 다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통일이 별건가. 이런 관광을 지속하다보면 통일이 되는 거지.” 한 실향민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겼다. 4박5일의 첫 평양관광을 마치고 9월19일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관광객들의 소감은 이랬다.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평양= 글·사진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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