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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평양관광, 통념을 깨다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주려는 북한 당국의 화끈한 노력에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4박5일
수줍음을 많이 타는 처녀와 같았던 평양이 모처럼 속살을 드러냈다. 9월15일부터 닷새간의 첫 일반인 평양관광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평양은 예로부터 ‘공원도시’로 불릴 만큼 녹지대가 많다. 더구나 주요 거리마다 다른 종류의 가로수를 심어놔 눈이 심심하지 않다. 따라서 평양은 가을에 볼만하다. 각양각색의 가로수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평양은 무공해 도시로 불릴 만큼 깨끗하다. 자동차나 공장 매연이 없고, 소음에 찌들지 않아 좋다.
관광산업의 매력에 눈을 뜨다
남쪽 보통사람들의 대규모 평양관광길이 본격화되면서 평양은 이제 더는 은둔의 땅도, 동토의 땅도 아니다. 또 위정자나 선택된 몇몇 사람들만의 관광코스도 아니다. 누구든 원하면 동강 난 또 다른 민족의 수도인 평양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북녘땅 흙내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게 됐다. 북한 당국은 이전 증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남쪽 인사들에게도 차츰 문호를 열 작정이란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북한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돌아가면 족하다는 것이다. “남쪽 손님을 한 사람이라도 더 모시면 그 과정에서 북남 통일이 앞당겨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쪽에 돌아가셔서 친지나 동료들을 만날 때 한마디라도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북쪽 책임 안내원 김아무개씨의 당부가 평양관광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이나 관광을 ‘자본주의의 불순한 부산물’이나 ‘자본주의 확산의 첨병’으로 경계해온 데 비춰보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이번 평양관광에서 감지된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들은 앞으로 수년 안에 닥쳐올 관광분야, 나아가 북한사회의 혁명적 발전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만큼 북한은 이번 평양관광길에서 남쪽 관광객들에게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적 대우를 해주었다. 일부 관광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인 보통강변을 달리기도 했고, 밤에는 다른 호텔의 노래방이나 식당에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거나 단고기 등 평양 고유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평양 야경을 보고 싶다는 관광객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는가 하면, 특별히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데려다 주려는 성의를 보였다. 50년 넘게 북한체제의 경직성과 통제성을 익히 들어온 60, 70대의 남쪽 관광객들은 연일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들의 마음은 열려 있었다. 이는 또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다양한 북한주민 접촉 배려해줘
묘향산 등산길은 이번 여행 중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 곳이었다. 평양, 신의주 등지에서 왔다는 북한 주민들은 스스럼없이 남쪽 관광객과 어울리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즉석에서 ‘진도아리랑’ ‘반갑습니다’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저도 서울에 있는 삼각산을 한번 꼭 오르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오갔지요.” 신의주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일한다는 김아무개(43)씨의 말이었다. 마침 휴식차 묘향산을 찾은 수십명의 남녀 김책공대 학생들은 등산길에서 남쪽 관광객들의 손뼉을 일일이 마주쳐주며 반겼고, 나이 많은 실향민들에게 향나무로 직접 만든 지팡이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북남 정상간의 6·15 공동선언 이후 생겨난 현상입니다. 수많은 남쪽 사람들이 이런저런 목적으로 공화국을 다녀간 탓이죠.” 한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그는 이런 대규모 관광이 본격적으로 실현된 데에는 남쪽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크게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남북 냉전기에는 북한에 와서 간첩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 탓에 가급적 소수의 남쪽 인사들만 초청했으나, 이제 그런 염려는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지 와서 마음껏 보라고 권할 정도로 사정이 변했다는 게 그의 귀띔이었다. 관광은 50년 넘게 막혔던 보통 주민간 교류의 숨통을 트이게 하고, 민족애 교류의 디딤돌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바로알기의 좋은 교육 기회
평양관광은 북한 바로알기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북한 주민들이 아침 몇시에 집을 나서, 어디로 향하며, 무엇을 하는지, 집에 와서 무엇을 하고 언제 자는지 등을 엿볼 수 있다. 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고, 아니면 관광 안내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생활비가 얼마나 되며, 이 돈으로 무엇을 주로 사는지 등 그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많은 궁금증들을 풀 수 있다. 북한 보통 주민들의 진솔한 삶을 그대로 들춰볼 수 있는 셈이다.
과거 평양을 다녀갔던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곧잘 한다. “북한에 가면 정해진 코스에 따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장소만 둘러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을 접촉하기 어렵고, 보고 듣는 게 별로 없어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번 평양관광길은 기존 통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너무 많이 보고 듣고 사람들을 만나 더 혼란스럽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랬다. 북한은 4박5일이라는 짧은 일정 안에 가급적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관광객들은 평양 시내 지하철을 시승하고, 만경대학생궁전, 동명왕릉, 주체사상탑, 개선문, 모란봉, 창광유치원 등을 돌아봤으며, 멀리 정주와 안주, 예정에 없던 지하동굴 관광명소로 유명한 룡문대굴까지 관광할 수 있었다. 룡문대굴은 평양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2시간 남짓 떨어진 평안북도 구장군 용문리에 자리잡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찾아 “룡문대굴은 볼수록 희한합니다”라고 친필을 남길 만큼 비경을 뽑내는 곳이다. 남쪽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기는 처음이며, 동굴 안에 흐드러지게 핀 돌꽃으로 유명하다. 이번 평양관광길을 연 평화항공여행사쪽 관계자는 “조만간 북한과 협의해 공개되지 않은 관광명소들도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핵위기 타개하려는 내밀한 의도
북한 당국의 더 내밀한 의도도 엿보인다. 핵위기라는 험난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관광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목표가 있다. 서방 언론에 한껏 왜곡된 자신들의 이미지를, 관광으로 인식의 교정을 자연스럽게 꾀한다는 것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낙후된 사정을 회피하지 않고 직접 설명해줌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꼭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이렇게 불편하게 모시고 싶지도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모셨습니다. 이해할 줄로 믿습니다.” 북쪽 책임 안내원의 설명 속에서도 그들의 꾸밈없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북한은 정치와 사상 측면에서는 강국이나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라는 점을 조금도 스스럼없이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집요하고 오랜 경제제재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적대관계만 해소되면 금방 나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나날이 다른 발전상을 보이고 있었다. 평양 시내와 주변 지역 도로에는 지프와 대형트럭이 속력을 내며 질주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고, 전력 사정도 나아진 듯 보였다. 밤 9시만 지나면 불빛 구경하기가 어려웠으나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고층 아파트들에는 환히 밝힌 백열등들을 목격할 수 있다. “지방에 중소형 발전소를 많이 지어 자체 전력난을 해결한 탓에 평양의 전력 사정이 크게 나아졌다”는 게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주민들의 표정도 화사한 옷차림 탓인지 한층 밝아보였다. 지난해 7·1 경제관리 개선조처 이후 인센티브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서 남보다 열심히 일한 주민들은 누구나 좋은 옷들을 사 입을 수 있게 된 탓이다. 이제 평양에는 강남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세련된 옷을 입고 사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산업발전 단계 차원에서도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다. 여전히 전반적으로 낙후된 산업구조가 존재하지만 일각에서는 남쪽 기업과의 합영으로 고급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일부 특권층은 누군가에게 휴대전화를 거는 장면까지 관광객들의 눈에 들어왔다. 평양컴퓨터센터에서는 국제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인공위성을 통해
‘소모적 이념논쟁’ 오히려 회피
“한번 잘살아 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장병석 한국소니 고문의 평가처럼, 북한은 그들이 흔히 내세우는 ‘모두가 잘먹고 잘사는’ 체제 유지를 위해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특히 소모적인 이념논쟁은 오히려 북쪽 사람들이 회피하려고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핵’과 ‘전쟁’만을 선호하고 남한이나 국제사회와의 공생을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자신들 체제의 민감한 부분까지 드러내 보여주면서 많은 관광객을 깊숙이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많은 북쪽 사람들은 핵문제를 빌미로 군사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있는 미국을 겉과 달리 내심으로는 크게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핵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풀고, 미국 등 주변국과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면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평양관광은 아주 특별했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이나마 북한 보통 주민들의 살내를 가까이 맡아서 좋았고, 그들만의 내밀하지만 진솔한 삶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그곳에도 희(喜), 노(怒), 애(哀), 낙(樂), 애(愛), 오(惡), 욕(慾) 등 ‘7정’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평양순안비행장에 도착하자마자 북쪽 안내원이 “관광가이드 수년 만에 이런 기분 처음입니다. 감격에 말문이 막혀 말이 잘 안 나옵니다. 남쪽 동포들 얼굴을 직접 맞대니 다들 내 아버지, 누이, 한 형제 같습니다. 짧은 관광기간이나마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어 한 식솔,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라는 다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통일이 별건가. 이런 관광을 지속하다보면 통일이 되는 거지.” 한 실향민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겼다. 4박5일의 첫 평양관광을 마치고 9월19일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관광객들의 소감은 이랬다.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평양= 글·사진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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