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9월18일 제476호 

“명분 없으면 국익도 없다”

이라크 추가파병 반대 선언한 신당파 의원 5인… 파병 동의안 처리에 여야 적극 나서지 않을 듯

이라크 파병 문제가 또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미국이 정부에 대해 ‘독립적으로 작전 수행이 가능한 규모’의 추가파병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올 초 뜨거운 반전여론 속에 한 차례 ‘찐한’ 학습을 거쳤던 여야가 이번엔 모두 몸을 사리고 있다. 먼저 입을 여는 쪽이 불리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5인 선언에도 신당 대세는 ‘신중론’

이런 가운데 추석 연휴 중에 알려진 추가파병 요구에 가장 발빠르게 대응한 쪽은 김근태 민주당 의원 등 신당파 일부다. 김 의원은 9월12일 김성호·배기선·이미경·허운나 의원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다소의 경제적 실리 때문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도덕적 자부심을 잃게 하고 한반도 평화에도 장애가 될 것”이라며 추가파병 반대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이들은 “우리 다섯 사람은 그동안 대북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해오면서 이라크 전쟁과 대북송금 사건 특검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같이해왔다”며 “특히 최근 이라크 파병 요청과 관련해 파병 찬성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신당파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고 회견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 정치권이 파병 소용돌이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2일 국회는 국군의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을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이들의 반대 근거는, 파병을 반대해온 시민사회단체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에 한-미 동맹 강화 등 국익을 이유로 참여할 경우, 미국이 북핵을 이유로 강경카드를 쓸 때 국제사회에 평화를 호소할 명분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평화를 위해 다른 나라의 평화를 깨뜨리는 데 동참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김 의원은 “신당은 6·15 정상회담 정신과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남북간의 교류협력을 한층 강화시키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밝혀, 이번 추가파병 반대 선언이 신당의 ‘당론’으로 굳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치는 않아 보인다. 신당파 의원 개개인의 성향으로 보면 반대가 우세해 보이지만, 신당이 앞으로 “노무현 정부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여당”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신당파 대부분이 신중론을 펴고 있다.

신당의 정책위의장이 유력시되는 정세균 민주당 의원은 “파병이 어떤 형태를 띨 것인지,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지, 감각적으로 대처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천정배 의원 등 올 초 1차 파병 논란 속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의원 상당수가 “좀더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잔류파에서 차기 정책위의장으로 거론되는 강운태 의원은 “(유엔 차원의) 평화유지군 정도라면 몰라도 직접 전투에 개입될 소지가 있는 추가파병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태라면, 향후 국회로 넘어올 ‘파병 동의안’ 통과에 범여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총대 멨다가 뭇매 맞을라

한나라당은 올 초 파병 논란 과정에서의 ‘오류’를 거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당인 민주당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한 반면, 한나라당은 한-미 동맹 강화 등을 이유로 ‘총대’를 메고 나섰다가 반전 여론에 그대로 노출됐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최병렬 대표는 13일 미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미국과 한국이 정식으로 이 문제를 논의한 것도 아니고 정부안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야당이 가타부타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원희룡 기획위원장은 “결국엔 동의해줘야겠지만 지난번처럼 먼저 나서 총대를 멜 필요는 없다는 것이 당내 분위기”라고 전했다. 올 초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파병 찬성을 주도했던 김용갑 의원쪽도 “이라크 전쟁이 이미 시작돼 시급을 다투던 때와는 다르다”며 느긋하게 대응하고 있다. 원내 과반을 넘는 제1정당이 파병과 관련해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이, 총선을 7개월가량 앞두고 반전여론에 얻어맞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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