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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표지이야기 등록 2003.08.28(목) 제474호

[표지이야기] 베토벤은 엘리제를 위했나

암호문 수준의 악필을 남긴 국내외의 ‘괴발개발’들… 최인호의 육필원고 알아 맞히기 행사도 열려

함부로 이리저리 써갈긴 글씨를 ‘괴발개발’이라 한다. 글씨를 갓 배운 아이도 아니고 어른이 글씨가 엉망이면 악필이란 오명을 벗어날 길이 없다. 악필을 두고 지렁이가 기어간다는 둥, 병아리가 찍어놓은 발자국이라는 둥 놀리는 말도 다양하다. 글씨를 못 쓰는 쪽은 ‘천재는 악필이다’ ‘요즘 누가 손으로 글을 쓰느냐’며 볼멘소리로 맞서보지만, 악필에 대한 자격지심은 여전하다.

예로부터 작가나 학자같이 글쓰기로 ‘먹고사는’ 동네에서는 악필에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소설가 최인호씨가 월간 <샘터>에 연재하는 연작소설 ‘가족’이 2000년 9월호로 300회가 된 적이 있다. 국내 잡지 역사상 연재 300회(시간으로 치면 25년에 해당)를 넘은 것은 ‘가족’이 처음이었다. 샘터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홈페이지에서 독자들을 상대로 최씨가 쓴 ‘가족’ 육필원고 내용 알아맞히기 행사를 열었다. 출판계에서 최씨는 작품 못지않게 악필로 유명했다. 그가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이런 글씨는 심사위원들이 읽어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릴 것’이라며 걱정한 동생이 글씨를 대신 써주었을 정도다. 최인호씨가 소설을 연재하는 신문사나 출판사의 담당자는 ‘암호문’을 해독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일간신문 연재 기간에 그의 글씨를 신문사 안에서 유일하게 판독할 수 있는 담당 기자는 다른 부서 전출은커녕 국내 출장도 못 갈 정도였다고 한다.

‘깃발’과 ‘행복’의 시인 청마 유치환(1908~1967)은 어느 글에서 ‘세상에 나 같은 악필은 드물 것’이라 고백한 적이 있다. “붓글씨라고는 아예 못 쓸 뿐 아니라, 게다가 수전증까지 있어 과음한 다음날 같은 때는 펜대조차 제대로 못 잡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출판 기념회나 무슨 전람회엘 가면, 으레 해야 되는 그 서명하는 것에 내 못난 글씨를 내놓기가 부끄럽고 두려워 부득이한 경우 이외에는 되도록 그러한 자리는 피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끄러운 악필- 아니, 악필에도 악필다운 어떤 독특한 멋이 있는데- 악필도 채 못 되는 나의 졸필은 이래봬도 소싯적엔 3년 동안이나 글씨 선생님 앞에서 글씨 공부를 받았으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악필에 얽힌 이야기는 서양에도 많다.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지독한 악필이었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는 남편이 쓴 원고를 정서하고 교열·교정을 하는 게 큰 일이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같은 고전들이 소피아의 ‘해독’을 거쳐 세상으로 나왔다. 육아와 교정, 정서 등으로 하루 다섯 시간 넘게 자본 적이 없었던 소피아는 자신을 ‘톨스토이 작품의 유모’라고 자조하곤 했다.

중세유럽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씨는 ‘판독 불가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의 곁에는 몇명의 대필자들이 있으면서 저작 활동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은 악필로도 유명하다.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Fur Elise) 악보는 베토벤이 죽은 지 40여년이 지난 뒤 뮌헨에서 발견됐다. 악보에는 ‘엘리제를 위하여. 4월27일, 추억을 기리며, 베토벤’이라고 적혀 있었다. 애틋한 남녀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지만 정작 베토벤은 엘리제라는 여성을 사귄 적이 없었다. 고심하던 학자들은 테레제 폰 말파티(Therese Malfatti)란 여성을 발견했다. 1810년 베토벤은 대지주의 딸이자 빈 사교계에서 미녀로 이름난 테레제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베토벤이 그에게 청혼을 했지만, 베토벤이 나이가 23살이나 많고 두 사람의 신분 차이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었다. 사랑의 열병을 앓던 베토벤이 테레제에게 보낸 사랑의 음악편지가 <엘리제를 위하여>였다. 학자들은 애초 베토벤이 ‘테레제’라고 썼지만 워낙 악필인 탓에 악보를 낸 출판사 담당자가 ‘엘리제’로 오독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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