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8월14일 제472호 

일본 미디어는 미쳤다!

장르 불문하고 질리도록 ‘납치와 김정일’ 공격… “북한 스키부대의 본토 침략” 황당한 내용도

‘납치, 김정일, 북조선, 핵폭탄,….’

요즘 일본 서점에 가면 신간 코너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들이다. 8월7일 오후 니가타시에서 가장 큰 서점인 키노쿠니야에 들렀다. 사회과학 신간 코너의 절반 정도는 북한 관련 서적이 차지하고 있었다. <김정일 입문> <김정일 대리인> <북조선의 최종결말> <북조선, 공중폭격 시나리오> <북조선 핵폭격> 등등…. 맨눈으로 확인해도 10여종 이상의 새책이 납치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

“미친개를 겁내지 마라”


사진/ 니가타시 기노쿠니야 서점의 사회과학 신간 코너에 진열된 북한 관련 책들. 부정적 이미지가 극대화된 소재와 제목들이 눈에 띈다.


최근 북한 관련 책을 펴낸 출판사는 대표적으로 7군데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분게이주(文藝春秋), 도쿠마쇼텐(德間書店), 고단샤(講談社), 슈가쿠칸(小學館), 고분샤(光文社), 코스믹 인터내셔널, 더 마사다(THE MASADA) 등이 그곳이다. 2000년에 출간된 북한 관련 책 53권을 봐도 최근 몇년 동안 일본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해왔는지가 드러난다. <미친개를 겁내지 마라-속 김정일에 대한 선전포고> <북한 절망수용소> <북한, 울고 있는 여성들> <북한과 국교수립해서는 안 된다> 등이 대표적인 책들이다.

8월8일 오사카에 도착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광고판에 붙어 있는 시사주간지 <슈칸분>(週刊文春)의 머리기사 역시 ‘북조선 납치’에 관한 얘기였다. 최근 일본 언론이 가장 많이 다루는 취재원은 납치가족모임의 얘기다.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기사를 생산해내고 있다.

8월10일 아침 6시50분에 눈을 떴다. 묵고 있던 호텔의 텔레비전을 켰다. 아니 이럴 수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북한 핵문제와 납치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취재 도중 만난 재일동포들마다 “이제 너무 많이 나와서 질려버린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9·17 이후 북한에 관한 일본 텔레비전의 보도 태도는 ‘선정적’이라기보다 ‘선동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사히 텔레비전이 지난해 12월 방송한 북한에 관한 시리즈물을 보면 그렇다.

제목만 살펴보자. “지옥생활, 이것이 북한 수용소다”(12월3일), “긴급추적! 극장국가 북조선의 조작”(12월4일), “충격폭로, 그는 흉포한 독재자”(12월5일), “특종입수! 2대 비밀증거, 이것이 바로 김정일의 거대 풀장 딸린 호화저택이다”(12월9일), “독점추적! 북조선으로 사라진 4명의 독신미녀”(12월11일) 등이 그것이다.

북한 관련 방송 프로그램은 보도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소재로 쓰여졌다. <한겨레21> 도쿄 주재 전문위원인 도쿄외국어대 신명직 교수는 “홋카이도에 북한 스키부대가 내려와서 일본 본토를 침략한다는 등의 황당한 내용들도 있다”면서 “상상과 자료화면을 섞는 조잡한 방식을 쓴다”고 말했다.

25년 동안 보도하지 못한 반성?


사진/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북한 관련 보도를 하고 있는 일본 프로그램들. 납치 문제가 주요 이슈다.


북한에 대한 미디어 공격은 장르를 불문하고 이뤄지고 있다. 신문, 잡지, 책 등 모든 인쇄매체와 방송매체가 한입으로 “납치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김정일 체제의 붕괴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파한다. 이같은 미디어의 총체적 공격은 일본 사회가 재일동포들에 대해 벌이는 물리적 폭력의 이데올로기적 근거를 제공한다. 또 언론이 보수우익을 대리해 심리전을 벌이는 양상마저 보인다. 이같은 공세 덕분인지 역사 왜곡에 앞장서온 후쇼샤 출판사는 이미 납치문제를 교과서에 포함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 저널리스트인 이시마루 지로는 “방송의 경우 시청률이 3% 올라갈 때 30억엔(300억원 안팎)의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안보상업주의와 선정주의가 교묘하게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함께 현장기자들의 역사의식 부재도 지적했다.

물론 일본 언론들은 자신들의 보도 태도를 옹호하는 나름의 논리를 펴고 있다. 납치사건이 1977년 처음으로 발생한 지 3년 뒤인 1980년 <산케이신문>은 ‘아베크족 3쌍, 의문의 증발’이라는 제목으로 처음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에서 북한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이후 1988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씨가 “일본어 교사 ‘이은혜’가 납치 피해자였다”고 증언함으로써 재공론화됐지만, 이 역시 북한의 조사 거부로 밝혀지지 않았다.

1997년 <산케이신문>과 <아사히신문> 주간지인 <아에라>가 전 북한 공작원 안명진의 증언을 토대로 요코다 메구미 납치 의혹을 보도했고, 그해 5월 일본 경찰은 납치의혹이 7건에 10명이라고 최초로 납치 의혹을 인정했다.

일본 미디어들은 이 때문에 납치 사건이 처음 일어난 지 25년 동안 보도하지 못한 반성으로서 과도한 보도에 나섰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납치 문제를 크게 다루지 못한 <마이니치신문>이나 <아사히신문> 같은 신문들은 당시 상황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데 비해 <산케이신문> 같은 곳에서는 정당성을 강조하는 형국이다. <산케이신문>이나 <요미우리신문>은 자사 사설과 <아사히신문>과 비교하는 책을 내 상대적으로 북에 비판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일본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 태도는 분명히 이성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라크전쟁 당시에도 전쟁 뉴스가 납치 보도에 밀렸을 정도라고 한다. 납치 문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따돌림을 당하는 분위기는 전적으로 언론의 탓이 큰 셈이다.

건설적 주장 펴면 국적(國賊) 취급


사진/ 주간지 <슈칸분슌> 여름 특대호에 실린 북한 납치 관련 보도 내용.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납치 문제는 일본 언론의 단골메뉴다.


일부 일본 언론인들도 이같은 주장에 호응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21세기 새로운 한일관계와 미디어’라는 세미나에서 <마이니치신문> 호리야마 아키코 기자는 “25년 동안의 공백을 생각하면 일정 기간 동안 반성과 검증, 반동이 일어난 것은 필요한 작업”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대북 불신감이 높아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생활을 흥미 위주로 보도하거나 재일동포들이 일궈온 생활기반을 위협하는 안이한 배외주의를 그대로 보도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또 “일본인을 돌려달라고 주장하면서 북한 배는 한척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보도 태도는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최근작 <북한을 읽는다>에서 최근 일본의 미디어들이 벌인 북에 관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5가지 주장을 뼈대로 한다고 분석했다. 첫째, 김일성 전 주석은 가짜이며 소련군에 의해 집권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둘째 김정일 총서기는 부자계승을 통해 권좌에 앉은 무능하고 비뚤어진 성격의 소유자다, 셋째 북은 개인숭배국가이며 수용소로 유지되는 억압체제이다, 넷째 북한 체제는 머지않아 붕괴한다, 다섯째 북한은 군비를 증강하고 핵무기를 보유하는 등 전쟁준비를 하고 있으며 반드시 한국을 침공할 것이다는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최근 북-일 국교수립을 위한 건설적·이성적 교섭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균형 잡힌 다면적 보도를 주장하는 사람은 ‘국적’(國賊) 취급을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와 함께 “일본이 북한과 국교수립을 할 생각이라면 상대가 아무리 체제적 문제를 지닌 가난한 나라여도 프라이드를 존중하고 자신들의 죄에 대해 반성·사죄하는 마음으로 약속을 지키고 차근차근 신뢰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며 “평양선언과 건전한 여론에 힘입어 납치 문제와 보상 및 경제협력 문제, 안전보장 문제처럼 주장하고 요구할 사항들은 그 속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니가타·오사카=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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