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8월06일 제471호 

치욕감 주는 수사는 없었을까

검찰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조사” 강조… 직접적인 자살동기는 오리무중

‘분단 타살’에서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한 자살’까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의 자살 동기와 배경을 두고 갖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현재까지는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자살 직전, 친구와 무슨 얘기 나눴을까


사진/ ‘150억+α’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소환되는 정몽헌 의장. 이 과정의 심리적 압박은 가장 유력한 자살동기로 추정된다.(한겨레 강창광 기자)


물론 며칠 사이에 직접적인 자살 동기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먼저, 유족들이 공개를 꺼려하고 있는 유서 내용 전부가 공개되고 그 유서 안에 자살 동기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됐을 경우다. 두 번째는 정 의장이 사옥에서 뛰어내리기 몇 시간 전까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고교동창 박아무개씨가 정 의장과 ‘어떤 얘기’를 나눴고, 박씨가 이를 공개할 가능성이다. 박씨는 8월3일 정 의장과 서울 남산의 ㅎ호텔에서 만나 정 의장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정 의장이 자주 다니던 술집에서 와인 2병을 나누어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는 8월4일 경찰조사에서 “정 의장이 자살을 하겠다는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어쨌든 현재까지 가장 유력하게 추정되는 자살 동기는 △그룹 경영상의 어려움 △대검 중수부의 ‘150억원+알파’수사 △특검 관련 재판에서 받은 스트레스 등이 꼽히고 있다.

대북사업을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 현대아산은 올 들어 정부의 금강산관광 경비지원금 200억원이 국회의 반대로 동결되면서 경영이 고빗사위를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회사는 임직원들의 임금을 깎는 등 내핍을 강화하는 조처를 취하면서도 월 20억~30억원의 적자를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북-미간 6자회담 합의 등 핵문제 해결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고 금강산관광 경비 지원도 가능해지는 상황이어서 사업 악화가 직접적인 자살 원인이 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북사업과 관련해 북쪽과의 관계에서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육로관광 재개를 합의하는 등 사업이 무리없이 진행돼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두세달 동안 10여 차례 법정과 검찰청을 오가면서 대북송금 사건의 특검수사와 관련한 법원의 재판과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 검사장)의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압박이 가장 유력한 자살 동기로 추정되고 있다.

정 의장은 특검 수사가 정점에 다다를 즈음인 지난 5월30일 특검에 처음으로 소환돼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았다. 6월14일은 북한에 다녀온 다음날이었지만, 밤 11시에 다시 소환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대질신문 조사를 받았다. 또 사흘 만인 17일에 재소환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대질해야 했다.

대검 중수부에선 12시간씩 조사받아

그는 또 특검 수사가 끝나고 불구속 기소되자 지난 7월4일 법정에 처음으로 출석한 이후 모두 3차례 법정에 섰다. 담당 재판부는 “정 의장이 재판에 성실히 임했다”고 밝혔다. 목요일이었던 7월31일부터 자살하기 하루 전인 8월2일(토요일) 사이에는 법원과 검찰에 3일 연속 나가야 하는 ‘고역’을 치른 것으로 확인돼 심리적으로 탈진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요일 재판은 3시간 동안 진행됐고, 목요일과 토요일 이뤄진 대검 중수부 수사는 각각 12시간씩 조사받는 일정이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투신하기 전 1주일 동안 3차례(7월26일과 29일, 8월2일)의 소환조사가 이뤄진 대검 중수부의 수사 강도는 이례적인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 의장은 마지막 소환일인 8월2일 조사를 끝내면서 이후에도 다시 소환일자를 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짧은 시일 안에 잇달아 3회나 4회씩 소환조사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대검 중수부의 경우 중요 소환자는 밤샘조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출·퇴근 조사 방식으로 재소환할 경우는 두 번째나 세 번째 소환 때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조사를 마치는 것이 관례이다.

대검 중수부의 수사 방향도 정 의장에게는 무척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수사팀에서는 정 의장을 상대로 이미 특검에서 불거져나온 ‘150억원’ 부분 말고도 새로운 혐의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가 대북송금 특검팀에서 계좌추적 자료 등을 넘겨받은 것은 7월4일이었다. 이때 정 의장 등 주요 관련자가 출국금지 조처됐고, 중수부 수사 인력을 대부분 투입하는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됐다.


사진/ 대북송금 수사를 받는 와중에도 정몽헌 의장은 대북관련 활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한겨레)


검찰의 수사 방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현대건설이 양도성예금증서(CD) 형태로 발행해 박지원 전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150억원 부분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김영완(50·해외도피)씨가 따로 관여한 추가 비자금, 즉 ‘+알파’의 흐름을 좇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수사의 무게중심은 150억원보다는 김씨를 중심으로 움직인 ‘+알파’쪽에 실려 있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중수부 2과(과장 유재만 부장검사)에 150억원의 계좌추적을 맡기고, 그보다 선임과에 속하는 중수부 1과(과장 남기춘 부장검사)에 ‘+알파’와 관련된 수사를 맡긴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8월4일 정 회장에 대한 조사내용을 묻는 기자들에게 “150억원 외에 존재하는 ‘+알파’ 등 전반적인 내용을 조사했다”고 말해 정 의장이 기존 특검수사팀 소환 조사에서 이미 이뤄진 조사 내용과는 별개의 혐의 내용에 대해 조사받았음을 에둘러 시인했다.

검찰은 이번 현대그룹과 정 의장에 대한 수사가 간단치 않을 것임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온 바 있다.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수사가) 추석 때나 되어야 끝날 것”이라고 말해 이번 수사가 상당히 오래, 강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대검 중수부는 이번 수사의 진행과 관련해 국세청 직원 10여명을 파견받아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역시 이례적인 조처로 볼 수 있다.

정 의장은 중수부 1과와 중수부 2과 검사들에게 번갈아가면서 조사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달 가까운 기간 동안 계좌추적을 벌인 수사팀은 상당한 근거를 확보한 채 정 의장을 번갈아가면서 압박했을 가능성이 높다.

체벌과 반말수사는 없었다?

현역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 등 거물급 정·관계 인사 등을 주로 소환하는 대검 중수부이지만 그동안 몇 차례 가혹행위 수사 논란이 벌어져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특히 명예심이나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들에게 일정한 ‘모욕감’을 줌으로써 진술을 확보하는 수사 방식이 문제된 적도 있다. 몇 시간 동안 벽을 보고 서 있게 한다든가, 반말을 쓴다든가 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이같은 사례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검찰 수사팀은 이같은 의혹 제기가 이뤄질 것에 대비해 정 의장의 수사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식사시간에 담당 변호인이 함께 식사를 했고, 정 의장 자신도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고 질문과 대답이 비교적 원활히 오고 갔다는 것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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