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8월06일 제471호 

“나를 금강산에 묻어다오”

대북사업 걸림돌 제거하려는 몸부림이었나… 충격적인 정몽헌 의장의 자살 뒤에 숨겨진 것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이 현대 본사 사옥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유분은 금강산에 뿌려달라”는 유언과 함께. 그의 충격적인 자살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인가. 그의 죽음은 과연 대북사업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몸부림이었나.

“금강산에 오면 남쪽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더 편해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은 지난 2월14일 저녁 첫 육로 시범관광길을 연 뒤 술잔을 들면서 지인들의 축하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언제부턴가 금강산을 마치 아버지의 따뜻한 품처럼 여겼다고 한다. 2월 초 금강산 육로관광 사전답사길에 오르기 전에도 그는 아버지의 묘소를 먼저 찾아 눈물을 쏟기도 했다.

측근들은 그가 지친 심신을 이끌고 금강산에 가지만 막상 다녀오면 다시 불끈 힘이 솟아나는 것 같은 걸 느끼곤 했다고 말한다. 정 의장은 자살하기 열흘 전쯤인 7월23일에도 사흘간 육로를 통해 금강산을 다녀왔다. 그가 자살하면서 부인에게 남긴 유서 중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주기 바란다”고 밝힌 데서도 그의 금강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쪽 요구에 섭섭해한 적도


사진/ 한겨레 윤운식 기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자식들 중 유난히 애정을 쏟았던 정몽헌 의장에게 금강산 관광사업이라는 중책을 맡기자, 그는 대북사업에 개인의 명예는 물론 현대그룹의 명운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점차 사기업의 역할을 벗어나는, 원하지 않았던 남북관계 수렁 속으로 점차 빠져드는 자신을 감지해야 했다.

애초 그는 대북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 욕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막대한 초기투자와 금강산 관광 대가를 지불한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하지만 현대의 대북사업은 정부 사업의 성격으로 변질되어 갔고, 기업인이 맡기엔 부담스러운 남북한 당국 사이의 중재자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의 사활을 현대 사업에 걸었고, 정 의장은 정부와의 적절한 협력의 필요성과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아버지의 대북사업 유훈을 이행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비공식 정부 특사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장관급 회담 등 굵직굵직한 남북 당국간 대화의 이면에는 거의 모두 현대의 막후 역할이 작동했다.

특히 남북한 당국간 회담이 교착되거나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불거지면 정 의장은 늘 비선을 가동해 해결사 노릇을 해야 했다. 주로 북한 지도부를 다시 설득해 회담장으로 불러오는 구실을 했다는 게 현대 대북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관계자의 귀띔이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남북 당국간 제도적 대화장치가 미비했던 탓에 이처럼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도 8월1일 대북송금 3차 공판에서 “(정상회담) 교섭과 회담 성사 과정에서 현대는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며 “현대는 남북정상회담의 1등 공신”이라고 말해 정 의장의 업적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대는 정상회담 개최 이후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남북한 당국 모두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남한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순풍을 타자 자금난을 호소하며 정부지원을 애걸하는 현대가 부담스러웠고, 북한 당국은 한때 금강산관광 대가 등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2001년 6월 간신히 북쪽으로부터 관광대가 지불 방식을 일괄지불에서 관광객 수에 따라 지불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양보를 얻어내긴 했으나 한동안 북한은 막무가내로 현대쪽 요구를 일축했다. “정말 그때는 (북한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그간 투자한 금액이 얼만데, 호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박대를 하며 ‘돈이 없으면 남한 당국에 도와달라고 해보라’고 말할 때는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더라고요.” 2001년 초기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출범 뒤 금강산 사업을 비롯한 남북관계 전반이 동면 상태에 들어가고, 현대의 유동성 위기가 깊어질 때 북한은 상당 기간 현대를 외면했다.

남한의 내부적 장벽에 더 절망


사진/ 대북협상 및 타협의 채널 기능에서 정몽헌 의장이 할 수 없게 된 역할은 이제 김윤규 사장(오른쪽)에게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연합)


그렇지만 정 의장과 그의 든든한 동반자 김윤규 사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들을 불사조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북한쪽 파트너들과의 대북사업 경험이었다. 대북사업은 웬만한 담대함이나 불굴의 끈기가 없으면 엄두를 낼 수 없다. 따라서 지금도 “대북사업을 한 사람치고 말로가 좋은 사람이 없다”는 게 남북경협 종사들에게는 정설로 굳어져 있다.

98년 남북경협을 벌여온 관계자들은 지금도 금강산관광, 금강산 육로 등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착공 등은 큰 기적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수많은 기업들이 그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대북투자를 해왔지만 극히 소수의 몇몇 기업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비록 정부의 지원에 힘입은 점도 있지만 정몽헌 의장 등이 이뤄낸 대북사업들은 법적 절차상의 문제를 빼면 남북관계사의 기념비적 성과로 평가된다.

김대중 정권 말 거액의 대북 비밀 송금 의혹이 불거진 뒤부터 정 의장은 북한보다 남한의 내부적 장벽에 더 절망하게 된다. 정부는 가급적 현대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했고, 특히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남북관계에 나름대로 기여해온 자부심으로 버텨온 그는 특검이나 검찰 수사로 대북사업의 순수성이 난도질당하는 데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을 설득해 어렵사리 돌파구를 마련해와도 북핵 해결을 우선시하는 남쪽 정부의 입장 탓으로 대북사업의 진척이 더뎠다. 부족한 자금난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외국 투자자들도 북핵이라는 걸림돌 앞에서 주춤거렸다.


사진/ 정몽헌 의장 등이 이뤄낸 대북사업은 남북관계사의 기념비적 성과로 평가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98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접견하는 모습.


더구나 북핵 해결 과정이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라 단기간 내 적자를 메울 목돈 마련은 기대할 수 없었다. 올 들어 정부의 금강산관광 경비지원금 200억원은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핵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기약 없이 묶였고, 이에 따라 매달 20억∼30억원의 적자를 봐야 했다. 급기야 7월18일 국회와 통일부 등에 관광경비 지원 재개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정 의장이 7월23일 금강산에서 북쪽 사업 파트너인 아태평화위 관계자들을 만나 금강산 관광코스를 늘리고 육로관광 재개를 합의했으나, 경영적자를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대북사업의 부진이 그의 자살 동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대아산의 핵심 측근들이 지적한 대로 대북사업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삶에 대한 희망의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북사업 추진 과정에서 믿음직한 동료였던 김윤규 사장에게 남긴 유서에서도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고 밝힌 대목은 변함없는 대북사업에 대한 애정을 잘 보여준다.

대북사업 더 활기 띨 수도

그렇다면 앞으로의 현대 대북 경협사업 운명은 어떻게 될까. 정세현 통일부 장관의 지적처럼 현재의 남북관계 사업들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특별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아산의 자금난 이후 정부는, 개성공단은 한국토지공사, 금강산관광은 한국관광공사 등을 내세워 상당 부분 역할을 떠맡은 상태다. 정 의장 등은 주로 북한과의 계약 주체로서 대북 협상 채널 구실을 해왔다. 가령 개성공단의 경우 초기 개발자금은 거의 토지공사가 대고, 현대는 북한과의 협상을 맡으면서 국내외 기업을 유치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분담한 상태다. 대북 협상 및 타협의 채널 기능도 정 의장이 막중한 역할을 해왔으나, 김윤규 사장이 그에 못지않은 비중과 협상력을 갖고 있어 커다란 공백은 없을 듯하다.

오히려 현대의 대북사업은 더 활기를 띨 가능성도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 사망 뒤 현대에 대한 각별한 의리를 과시해온 북한이 정주영·정몽헌 부자에 진 빚들을 갚는 뜻에서 현대의 대북사업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대북사업의 각종 걸림돌들을 제거하고 대신 남은 사람들이 새로운 아스팔트 길을 놓는 데 도움을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