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은 ‘법관의 꽃’이라 불린다. 법의(法衣)를 입어본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대법관이 되는 꿈을 꾼다.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는 사법부 최고 수장으로서 권위와 명예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법관은 국가나 각종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됐기 때문에 그 가치관과 개성이 존중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법관은 가치관과 개성이 빛나지 않는다. 마치 잘 키워낸 관상식물처럼 똑같은 ‘빛깔과 향기’를 내뿜는다.

서울법대·판사 출신이 독식

사진/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 비슷한 배경과 동일한 교육시스템에 길들여진 인사들이 대법관에 임명돼 왔다.(한겨레)

<한겨레21>은 고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등 역대 대법관 112명 중 인사기록이 남아 있는 102명의 출신지와 출신학교, 나이(대법관 임명 당시), 직업(〃) 등을 분류했다. 그 결과 우리 대법관들은 ‘붕어빵’이었다. 먼저 출신학교의 경우 ‘예상대로’ 서울대 법대(서울대 법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법학과 포함)가 가장 많았다. 서울대 법대는 전체 102명 중 59명(58%)으로 절반을 넘었다. 서울대는 법학과를 제외한 다른 학과 출신들도 6명이나 대법관에 등용돼, 고려대 법대(4명)나 연세대 법대(2명)를 월등히 앞섰다. 일본 메이지대 법학부 등 일본 대학 출신도 15명이나 됐다. 일본 유학파들은 근대적 사법 시스템이 도입된 1948년부터 1970년까지 대법관으로 활동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대법관 ‘독식’ 현상은 1980년부터 노골화됐다. 그 이전에는 일본 유학파와 지방대 출신이 절반을 넘었지만, 5공화국 이후부터는 서울대 법대가 전체 57명 중 39명(68%)을 차지할 정도로 득세했다. 사법체계가 안정돼 갈수록 서울대 법대 독식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지금도 대법관 14명(대법원장 포함) 중 최종영 대법원장을 비롯한 10명이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반면, 서울대 법대 출신 사시 합격자는 1990년대까지 전체의 절반 수준이었다가 2000년에는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2002년 서울대 법대 출신 사시 합격자는 17%에 불과했다.

대법관 임명 당시의 직업과 나이는 더욱 편향적이다. 직업은 전체의 83%(85명)가 판사 출신이었다. 이에 반해 ‘법조 3륜’의 두 축인 검사와 변호사는 각각 12명과 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명은 정부 각료 출신이다. 판사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업무의 성격상 판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관 1명당 1년에 1천여건의 사건을 맡기 때문에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대법관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대법관 임명 자격을 ‘15년 이상 판사·검사·변호사의 직에 있거나 변호사 자격을 갖고 법률학 조교수 이상의 직에 있었던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대법관 14명 중 배기원(사시 5회) 대법관과 강신욱(사시 9회) 대법관이 각각 변호사와 검사 출신이다. 이처럼 변호사와 검사 출신을 각각 1명씩 배정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하지만 대법관에 임명된 변호사도 전직이 판사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대법관 중 12명이 판사 출신인 셈이다.

또 대법관은 50대가 78명(76%)으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1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연령적으로 가장 보수적 경향을 띠는 50대가 대법관의 주류를 형성해왔다. 미국은 현직 대법관 중 여성이 2명이나 되지만, 우리는 역대 112명의 대법관 중 단 한명의 여성 대법관도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성차별적이었다.

임기 마친 뒤엔 엄청난 부의 세례

이처럼 우리의 대법관은 출신 배경이나 나이로 볼 때 기득권을 대표하는 집단이었다. 재직 중에 명예와 권위를 ‘만끽한’ 대법관은 임기를 마친 뒤에는 엄청난 부의 세례를 받는다. 법복을 벗자마자 거액의 몸값을 받고 로펌에 팔려가는가 하면, 대기업 고문변호사나 사외이사 등으로 영입되는 것이다. 실제로 윤관 전 대법원장은 퇴임 뒤 법무법인 화우의 고문변호사로 스카우트됐고, 김석수 전 대법관은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총리인 김 전 대법관은 총리 인준을 위한 재산공개 때 대법관 퇴임 때(9억여원)보다 무려 16억원가량 늘어난 25억여원을 신고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