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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격다짐 ‘사령관 빽’ 군 당국의 ‘외국기자 현지 접근 금지’ 방침을 뚫고 어떻게 아체에 들어갔나
아체는 내게 늘 ‘불법 잠입자’ 신분을 달아주었다. 수하르토가 쫓겨난 뒤 개혁 바람이 한창 몰아치던 2000년 취재를 빼고 나면, 아체와 나는 만나서는 안 될 사이였다. 수하르토 시절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체 취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던 탓에,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관광객 흉내를 내거나 전통가옥 연구자로 속여 아체에 드나들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발길이 끊긴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실랑이를 벌이며 ‘특별관리대상자’ 꼬리표를 단 내 목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2주 동안 자카르타에서 군 당국과 외무부를 오가며 합법적인 취재 허가를 얻고자 갖은 ‘수작’을 벌였지만 “외국기자 현지 접근 금지”, “외국기자 취재 허가서 발급 불가”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었다. “몸부터 던져넣고 보자.” 그렇게 아체에 들어오면서 내가 들고 온 건 전화로 아체 작전사령관 밤방 달모노 준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그이가 흘러가는 말로 던진 말 한마디뿐이었다. “올 수 있으면 와라.” 반다 아체 계엄사령부에서 취재 허가증을 받는 일은 내가 부딪힐 최초의 전투였다. “밤방 준장이 오라고 해서 왔다.” 군 미디어센터 책임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밤방 준장의 확인전화를 요구했다. 록세우마웨 작전사령부에 있던 밤방 준장은 확인전화 요청에 화를 버럭 냈지만, 결과적으로 미디어센터에 나를 확인해주는 셈이 되었고, 계엄사령부 신분증을 얻은 나는 ‘준합법’ 신세로 록세우마웨까지 갈 수 있는 길을 확보했다. 6월15일 반다 아체 계엄사령부 미디어센터. 정례 브리핑을 마친 대변인 디티아 대령이 내게 다가왔다. “자유아체운동을 지원하면 외국기자라도 체포하거나 사살할 테니 조심하시오!” 짜증이 담긴 그이의 말을 농담으로 듣기에는 둘 사이의 관계가 아직 서먹한 상태였고, 진담으로 듣기에는 대변인이라는 직책이 의심스러웠다. “체포와 사살.” 경우에 따라 ‘체포’란 말 정도는 들어왔지만, ‘사살’이라는 직접적인 말은 어디에서도 어떤 군으로부터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매우 생소한 표현이었다. 사실 이번처럼 적군 취재를 공식적으로 금지한 사례도 현대 전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른바 ‘임베드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미국판 대이라크 공격용 언론통제술도 기자들에게 이라크군 취재에 대해 강압적 위협만 했지 불법으로 봉쇄하지는 않았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듯 이 미국판 언론통제술을 고스란히 베껴 아체전쟁에 핵심전략으로 적용한 인도네시아 군 당국은 한술 더 떠 ‘적군 취재 금지’라는 새로운 언론통제 모형을 창조했다.
반다아체·록세우마웨= 정문태 |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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