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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표지이야기 등록 2003.06.26(목) 제465호

[표지이야기] 이해충돌 방지턱이 없다

기업은 로펌 싹쓸이하고 변호사는 윤리의식 부재… 수임제한 기준 다양화 등 법적·제도적 장치 절실

“법무실장의 친척이 있다고 이 로펌에 한건 주고, 법무실에 있는 사원이 자기 친구가 변호사라면서 저 로펌에 한건 줍니다. 또 전무가 추천하는 변호사 한명 있고, 그러다보면 회장도 안면 있는 변호사를 찾아서 또 다른 로펌에 사건을 수임합니다. 사건이 산지사방에 퍼질 수밖에 없는 거죠.”

한 로펌의 중견 변호사 얘기는 로펌에 대한 우리 기업의 법률업무 위임 문화가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해충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측면이 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동종업계의 일을 조금이라도 하게 되면 “당신들 거기랑 거래하면 우리를 배신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앞으로 거래 안 한다”는 식으로 나오는 기업문화도 지적했다. 한 로펌과 꾸준히 거래하면서 그 기업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을 한 로펌쪽에 맡기는 문화가 정착된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기업의 법률업무 위임 문화

요즘엔 기업들도 이해충돌에 대한 변호사 업계의 우려를 잘 알고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고 한 로펌 변호사는 전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기업들은 아예 다른 대형 로펌들이 경쟁기업의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대형 로펌 한 군데당 200만~300만원의 돈을 모두 뿌린 뒤 법률 검토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로펌을 ‘싹쓸이’해보겠다는 얄팍한 시도인 셈이다.

이해관계 충돌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업문화의 변화와 함께 법적·제도적 장치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현재 이와 관련한 법 규정은 변호사법 31조의 ‘수임제한’ 조항뿐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너무 단순하게 정리돼 있어 복잡한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먼저 수임제한의 기준을 극도로 단순화시킨 현행 규정을 현실에 맞게 다양하게 범주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로펌에서 이뤄지는 각종 서비스의 상당 부분은 기존의 전통적인 소송사건의 범주로는 묶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개별 로펌들에서는 나름의 판별기준을 내부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해충돌을 점검하는 시스템도 로펌별로 제각각이고 중견 변호사의 판단력에 거의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로펌별로 기준이 들쭉날쭉할 가능성도 높다.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특히 초대형 로펌들의 경우 최고경영진이 사건의 전체 수임현황을 틀어쥐고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의 양심적인 운영방식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어떤 로펌에서는 법률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정서적 이해관계의 충돌까지 기준으로 삼아 논의를 하고 어떤 로펌에서는 제대로 이 문제가 토론될 기회도 별로 없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로펌에서 나중에 문제가 생기고 난 뒤 부랴부랴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초대형 로펌들 이해충돌 사고에 속수무책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또 다른 사건을 수임하려면 변호사는 애초 의뢰인을 상대로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우리 변호사법에는 그냥 아무런 조건 없이 동의가 필요하면 가능하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동의를 확인하는 절차도 엄격히 규정돼야 한다. 미국 변호사협회 규정에는 동의 전에 자세히 알리고(consultation), 동의를 구하되(consent) 이해관계가 없는 제3의 변호사에게 검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리 로펌들에서는 당해 기업에는 알리지도 않고 대리를 맡고 있는 변호사들끼리 동의서를 주고받는 식의 관행이 굳어져 있다고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변호사법의 경우 시행령이 없고 그에 해당하는 업무는 변호사단체인 대한변협에서 하도록 돼 있다”고 말해 대한변협의 자율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배금자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되려면 법률지식을 묻는 시험과는 별도로 이해관계의 충돌과 관련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묻는 변호사 윤리시험에 통과해야 한다”며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변호사 윤리 부분에 대한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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