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성 정치인은 그 ‘희소가치’만으로도 주목받는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추미애 의원과 강금실 법무장관(넓은 의미에서 정치인으로 분류하면)은 특별히 도드라진다. 이들이 길러온 능력과 자질,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눈에 띄는 외모는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끈다.

대통령의 딸과 세탁소집 둘째딸

그러나 이들이 가꿔온 색채는 전혀 다르다.

추미애 의원은 ‘불’ 같다. 한점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듯, 붉은 마음과 뜨거운 가슴으로 주변을 감화시킨다. 들불처럼 번져가는 그 기세에는 조금의 멈칫거림이나 눈치보기가 없다. 그는 항상 최초의 발화점이었다.

이에 반해 강금실 장관은 ‘물’ 같다. 약하고 부드러운 듯하나 나중에 보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소리 없이 조용히 흐르나, 그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지형이 바뀌어 있고 바위가 뚫려 있다. 다투지 않고 이긴다.

추 의원이나 강 장관 둘 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스타일을 택하고 있다면, 박근혜 의원은 존재 자체로 우주의 질서를 대변한다. 그런 점에서 ‘별’ 같다.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력한 중력장을 형성해, 수많은 위성들을 복속시킨다. 모두들 그 흡인력을 떠받들고 때로는 두려워한다.

사진/ 왼쪽부터 박근혜 의원·추미애 의원(이용호 기자)·강금실 장관(한겨레 김종수 기자)

세 사람의 이런 특성은 출생과 성장 환경에서부터 차이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특히 박 의원과 추 의원은 대척점에 서 있다.

박 의원은 누구나 알듯 ‘대통령의 딸’이다. 열살 무렵부터 20대 후반까지 ‘인생의 로드맵’이 형성되는 주요 시기를 청와대에서 살았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밥상머리의 주요 대화가 수해나 가뭄에 대한 걱정, 외국 국빈들과의 만남, 전자산업의 장래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얘기들을 노상 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에게 부모는 인생의 모델이자 정치의 모델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내 삶의 모델이자 선배이고 스승이며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꼼꼼한 일처리 방식을 배워 그도 어떤 일을 할 때는 끝까지 점검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정리정돈이 철저한 아버지를 배워 그도 학창시절 노트에다 부족한 점과 고쳐야 할 점을 적어두고 고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가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것도 아버지로부터 전자공학의 중요성을 접한 때문이다. 지금의 그를 키운 건 8할이 아버지와 청와대에서 숨쉰 공기였던 셈이다.

추 의원은 가난한 세탁소집 둘째딸로 태어났다.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찾아 먹을 수 있는 날이면 그런 대로 괜찮은, 아니 행복한 하루를 보낸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 기성회비를 못 내 수업을 받다 말고 걸어서 한 시간이 넘는 집까지 가면서 서럽도록 운 경험도 있다. 가정형편상 한양대학교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여성 합격자는 추 의원을 포함해 3명이었는데, 해방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여성은 이태영 변호사로부터 시작해 16명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추 의원은 자작시 ‘선인장’에서처럼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커주던 선인장’이었던 셈이다.

예술혼을 지닌 자유인, 강금실

사진/ 여성단체협의회 주최 정책토론회에서 법무부의 여성정책을 설명하는 강금실 장관. 여성관련 정책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밝혔다.(연합)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 성격도 다르다. 그리고 그 성격이 운명을 결정지었다.

강 장관은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도 촉망받는 아이로 자라났다. 6남매의 막내인데다 자신의 재능 덕에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듯하다. 경기여고 다닐 때는 동기생 가운데 유일하게 3년 내내 우등을 했고, 아침조회 때 전교생 앞에서 애국가나 교가를 지휘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년 후배인 황덕남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공부는 물론 모든 면에서 탁월해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후배들에게는 신화적 존재였다”고 기억했다.

게다가 그는 ‘예술적 혼을 지닌 자유인’이다. 인간문화재 김수아씨에게서 살풀이춤을 사사했고, 손경순·이명경씨에게 승무를 배웠다. “춤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어 좋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그가 친하게 지내는 이들도 대부분 문인, 화가, 시인, 철학자다. 그의 부드러움과 친화력은 이런 정신적 풍요를 자산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추 의원도 학창시절 우뚝 선 존재였으나, 주변의 관심과 지원 속에 성장했다기보다는 혼자 힘으로 거친 세상을 헤쳐온 쪽에 가깝다. 그런 사람들이 갖는 의지와 결단력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2년 12월18일 서울 종로 거리유세에서 “참으로 대찬 여자다. 제가 새로운 정치 하지 않고 어물어물하면 제 멱살을 잡고 흔들, 우리 여자 지도자 추미애가 있다”고 표현할 정도다.

15대 총선 때는 당시 김대중 총재가 추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속편한 전국구에 배려하겠다는 제의를 했는데도 이를 거절하고 굳이 지역구에 나가 싸우겠다고 한 사람이 추 의원이다. 그는 그 의지로 서울 지역구에서 단독으로 당선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명예를 일궈냈다.

세상의 부조리에도 일찍 눈을 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부당하게 반 동료를 매질하자, 어린 추미애는 책상에 펼쳐진 책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은 뒤 쥐죽은 듯이 조용한 교실 뒷문을 드르륵 소리내어 열고는 성큼성큼 집으로 향한 적이 있다. 일종의 반항이자 힘 없는 친구를 돕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그런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중학생 때 ‘백지동맹’을 주도했던 모습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런 기질은 판사 시절 추 의원은 이념서적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기각하고, 시국사건 재판을 방청하는 정보과 형사를 쫓아내는 등의 소신 행보로 이어졌다.

그는 때때로 화가 날 때면 불같이 면전에 대고 퍼붓는다. 마음속에 꿍하니 담아두거나 엉뚱한 곳에 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정면돌파한다. 하지만 추 의원은 강성으로 비치는 데 대해 “정치를 시작할 때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소외된 곳,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려고 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악역을 떠맡게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침착하면서 돌파력 있는…

사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의원. 그는 지난해, 아니라고 판단되자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을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이용호 기자)

박 의원은 엄격한 규율과 훈련으로 단련됐다.

그는 차분하고 침착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면 강단 있게 돌파하는 추진력도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기품까지 느껴지는 그의 절제된 언행은 어머니를 빼박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도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고 정치를 하는 방식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고백한다. 부드럽고 자상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는 데는 냉철하게 절제했던 어머니, 옳다고 생각하면 눈치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지난해 탈당을 강행한 시점은 이회창 총재가 자신의 제안을 최종적으로 거부한 다음날이었다. 아니라고 판단되자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대로 당을 뛰쳐나갔던 것이다. 그는 “단호하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가 없다. 부드러움만 있으면 흔들리기 쉽다. 작년에 탈당할 무렵 눈총도 받고 왕따당하는 기분도 들었지만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손해볼 각오하고 밀고 나갔다”고 털어놨다.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구사력도 그의 자산으로 꼽힌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게 참모진의 전언이다. 이 때문인지 그는 말실수로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세 사람의 능력과 자질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수많은 시험대를 거치며 공인돼 왔다.

추 의원은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산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펴든다. 조직·돈·연줄보다는 머리로 정치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그 덕에 그는 ‘국정감사 모니터 시민연대’ 등이 실시한 의정활동 평가에서 항상 상위에 랭크됐으며, 내무위원회 시절에는 소속 의원들로부터 가장 뛰어나게 활동한 의원으로 꼽혔다.

추 의원은 또 의정활동에서 상당한 집요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제주도 4·3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정부기록보존소의 재판기록과 수형인명부를 샅샅이 조사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것이 대표적이다. 그가 여성 최초의 총재 비서실장, 당 4역인 지방자치위원장 등에 임명되거나 최고위원 경선을 통과한 것 등은 이런 성과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강 장관의 이력에는 3가지 ‘여성 최초’가 붙어다닌다. 서울지역 최초 여성 형사단독판사, 여성 최초 법무법인 대표, 최초의 여성 출신 민변 부회장 등이 그것이다. 그 직함만으로도 그의 능력과 자질은 다 설명된다.

강금실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법무장관으로서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검사 출신의 한 법무부 간부가 이렇게 평가했다.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보던 법무부 검사들도 이제는 장관 편으로 돌아선 이들이 많다. 장관이 지닌 특유의 친화성과 강요하지 않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효과를 보는 것 같다. 즉, 장관은 목표를 설정하고 휘하의 사람들을 억지로 모아 무리를 해서라도 권위를 행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모아서 결론을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자고 설득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법무부를 벗어나 일선 검찰에서는 이러한 장관의 장점에 대해 아직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박 의원은 상임위에서 특출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자신의 뚜렷한 색깔을 드러낸 적은 드물다는 게 상임위 동료들의 평가다. 하지만 그는 직접 보고 들은 바가 적지 않다. 어머니를 대신해 5년 남짓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했던 경험은 그에게 국정 전반에 관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는 “수많은 외국의 정상들과 대화를 나눠봤다. 나만큼 누가 검증이 됐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정치적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그가 정당개혁을 제기하며 차근차근 이회창 총재를 압박해갈 무렵 정치권에선 “누군가 대단히 수완 있는 정치적 후견인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자리매김하는 방식에 대해 세 사람은 상당한 농도 차이를 보인다. 강 장관이 가장 적극적인 데 반해 추 의원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변호사 선배를 얘기할 때 우리는 강 장관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강 장관 이전에도 여성 변호사 선배들이 있었지만, ‘여성주의’를 이해하고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인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강 장관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은 여성주의 세례를 받을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강 장관은 후배들이 말하는 여성주의를 비교적 풍부하게 이해하고 있다.”

민변 소속 한 중견 여성 변호사는 강 장관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여성 지도자들이 ‘남성과 똑같은 성공전략’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가지만, 강 장관의 경우는 ‘여성으로 성공하기’의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 장관직을 수락하게 된 배경에는 여성 후배들의 앞날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었다”는 한 여성 변호사의 언급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취임 초부터 호주제 폐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여러 번 공언한 점이나, 최근 서울지법이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피고인을 보석으로 풀어준 것을 강하게 비판한 점 등은 여성 관련 정책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박근혜,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다

박 의원은 이미경·한명숙 의원과 함께 호주제 폐지 청원을 낸 당사자다. 여성몫 전국구 의원인 다른 두 의원과 달리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구 유림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무릅쓰고 호주제 폐지에 앞장선 것은 나름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호주제에 관한 한, 나는 진보쪽”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내며 “내가 여성인데 어찌 여성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 있겠느냐.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여성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두 사람에 비해 추 의원의 여성관은 독특하다. “남자든 여자든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능력주의다. 특히 자신에게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낸다. 추 의원은 초선시절 당시 정동영 대변인과 남녀 공동대변인으로 거론됐으나 끝내 거부했다. 2000년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할 때도 “여성이 아닌 소장파의 한 사람으로 출마하는 것”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여성적 관점에서 접근해오는 언론 인터뷰는 모두 거절한다.

이 때문에 때로 섭섭한 소리도 듣는다.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권익 보호에 소극적이다”라거나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추 의원은 “내가 만능이 아니니까 다 잘할 수는 없다. 여성문제를 활동의 주요한 주제로 삼지 않을 뿐이다. 나도 집에서 육아나 가사 때문에 중압감을 느끼며 사는 여성이다. 지역구 활동에서는 유치원 설립이나 놀이방 확충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그 성과를 가장 의미 있게 평가하고 있다. 단지 여성 활동가처럼 줄곧 그 문제에 매달리지만 않을 뿐이다”라고 항변했다.

세 사람은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는 만큼 정치행보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특히 최근 추 의원이 신당을 추진하는 민주당 신주류와 분명한 선을 긋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화제가 되고 있다.

민주당 신주류와 선 그은 추미애

사진/ 민주당 신주류 모임에 참석한 추미애 의원. 그러나 신주류와 현격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이용호 기자)

그의 이런 행보에 대해서는 구구한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지역주의 구도 해체를 장기적 관점으로 보는 데서 차이가 나오는 듯하다. 신주류는 내년 총선에서 당장 전국정당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보고 있으나, 추 의원은 “영남 60석 대 호남 30석의 구도가 온존하는 한 지역주의 구도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그는 18대 총선부터 정당명부제 등의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호남의 뺨을 때려 영남표를 얻겠다는 역지역주의 발상으로는 지역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과 이념으로 접근해야 지역주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전국정당화를 공공연히 앞세우면 영남의 유권자들이 미워서라도 찍지 않는다. 그렇게 속내를 드러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한나라당의 대선 패배 이후 상당기간 발언을 자제했다. 선대위의장으로서 자숙하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탈당과 복귀에 따른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소장·개혁파와 손잡고 정치개혁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있다. 그는 민주당 신주류에서도 찬반논란 끝에 관철시키지 못한 지구당 위원장의 기득권 포기와 이를 위한 지구당 위원장제도 폐지를 주장한다. 한나라당에선 매우 ‘급진적인’ 주장인 셈이다. 민주당의 정당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그가 일단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에선 상당한 점수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번 당 대표 경선과정의 틈을 비집고 정치적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탈당과 복귀에 따른 실점이 워낙 큰 탓이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한나라당 내 유력한 차기주자 가운데 한명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강 장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얘기를 한다. 최근 인기가 치솟으면서 ‘정치 입문 가능성’을 거론하는 외부의 시선이 더 잦아졌기 때문이다. 그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가 결코 현실정치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의 성격이나 지향에 비춰볼 때 현실 정치인이 되겠다는 야심이나 욕심을 가지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의 정치 입문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그의 인기는 현실 정치인으로서 나름의 기반을 갖추고 있는 박 의원이나 추 의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이 항상 거론돼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정몽준 의원이 대선 국면에서 보여줬던 이른바 ‘거품 인기’의 실상에 견주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인이 되는 경로가 단일화되어 있지 않은 한국적 상황으로 볼 때 그가 현실 정치인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별로 없다. 특히 검찰 개혁을 비롯해 그가 구상하고 있는 일련의 사법 개혁 방안이 본 궤도에 진입하고 ‘성공한 법무부 장관’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룰 경우, 그의 정치 입문 가능성은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