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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빠도 경협은 한다” 북한도 남한과의 경제교류 끊을 수 없는 형편… 정경분리 통한 남북대화의 ‘모멘텀’ 확보해야
한-미 정상회담뒤 논란의 초점은 ‘추가적 조치의 검토’에 대북 선제공격이 들어 있느냐였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추가적 조치’에 쏠리는 통에 한-미 공동성명 중 ‘노 대통령은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는 대목은 조용히 넘어갔다. 하지만 이 대목은 5월22일 추미애 민주당 의원의 주장마따나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핵과 연결한 것은 사실상 대북정책의 정경분리 원칙 포기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핵심요소였던 정경분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노무현 정부는 남북관계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남한은 북한의 제2위 교역대상국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노선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김대중 정부의 정경분리 노선이 큰 구실을 했다. “남북교류의 문제는 미국의 동의를 구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한미 공동성명문에 포함시킬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는 추미애 의원의 반론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북핵 문제와 남북교류 협력 연계로 정책을 변경한 것이 아니다.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을 병행추진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대통령의 언급 내용은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남북교류 협력도 현실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5월19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제5차 경제협력추진위 회의가 7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남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ㆍ도로 연결공사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 같은 3대 경협사업 등의 일정을 재조정했다. 여기서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비판하면서도 남북 경제협력은 이어가자는 뜻을 강력히 밝혔다. 박창련 북쪽 단장은 “우리 쌍방은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 민족끼리 공조하여 화해와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시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북한의 반응은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외부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있어 남쪽과의 경제교류를 끊을 수 없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9년 시작된 남북교역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왔고 지난해 남북교역 규모는 6억41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 금액은 남쪽에서 보면 총 무역액의 0.2%에 불과하지만 2001년도 총 무역액이 22억7천만달러인 북한에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남북교역은 내국간 거래로서 북한의 대외무역 실적에 포함하지 않으나, 지난해 남한은 중국에 이어 북한의 제2위 교역대상국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전부터 통일부 관계자들은 ‘남북 관계의 모멘텀(추진력) 유지’란 말을 자주 쓴다. 쉽게 말하면 상황이 나쁘더라도 회담과 교류협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11월 서동만 상지대 교수(현 국정원 기조실장) 는 한 토론회에서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남북 관계는 대화가 진행되더라도 화해기조가 궤도에 오르고 제도화되기 전까지는 고착화된 적대관계와 군사적 대치상황이 병존하는 이중적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선에 도달하기까지는 계속해서 성과를 내며, 꾸준히 진전되지 않으면 항상 관계가 다시 악화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양쪽 내부에서의 모멘텀이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경협이란 서로 이득 보자는 것
통일 전 동·서독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80년대 동·서독 교류와 협력에 속도가 붙자 동독 경제의 서독 의존도는 40%까지 이르렀다. 동독 정부는 서독으로부터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면서도 정권에 위협적인 파급효과를 막으려고 했지만 서독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구조적으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물론 경추위 결과에 대해 ‘핵 문제는 놓아둔 채 철도 연결을 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문이다’(5월24일치 <동아일보> 사설 중) 같은 인색한 평가도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5월22일 남북경협추진위가 겉돌자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그냥 내려올 수도 있다. 우리가 급할 것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도 비료고, 식량이고 당장 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에 한번 그냥 이렇게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 경제협력은 형편이 나은 쪽이 처지는 쪽을 돕는 게 아니다. 남북 모두 이득을 보자는 거래다. 여기에 경협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평화사업이란 성격도 아울러 띠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해선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게 역설적으로 햇볕정책의 성과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가 5년 동안 ‘퍼주기’란 비난을 받으면서도 대북교류 협력을 지속했기에 남북이 상호의존성을 갖게 됐다.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정경분리를 통한 남북 대화의 모멘텀 확보는 한국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노 대통령은 전임자가 어렵게 손에 쥔 이 카드를 맥 없이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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