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5월29일 제461호 

왜…… 왜 그랬어!

민감한 대북 강경 발언들 쏟아낸 노무현 대통령, 그의 변신은 과연 무죄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중 여러 차례 한 친미 발언에 이어, 한총련과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이 잇따르자,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 사이에 정서적 이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북한쪽의 거부감 표시도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과연 ‘노무현의 원칙’은 사라진 것인가? 그 원인은 무엇이고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분야별로 긴급점검해 본다. …편집자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노무현의 변신’이 화제다. 북핵문제 해결방안과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특히 의혹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그의 ‘진보성’을 염려하던 ‘보수층’들로선 반대로 적잖이 기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주간은 5월21일치에 ‘대통령을 위한 변명’이라는 칼럼까지 썼다. 한-미 정상회담을 다룬 이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놀라움, 그리고 반발…

“당초부터 대통령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물론 건진 게 있긴 하다. 그것은 대통령을 이렇게 변하게 만든 요인이 다름 아닌 국익에 대한 고려였으리라는 기대다. 그렇다면 정말 이 막가는 나라, 불법 앞에 무릎 꿇는 정부, 내일 없는 경제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길도 언젠가는 찾아질지 모른다는 그런 가물가물한 한줌의 희망을 우리가 길어올린 것일까.”

강 주간은 노무현의 ‘변절’을 개탄하는 지지자들에게도 충고를 앞세웠다. “지금 대통령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는 ‘노무현 코드’의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한-미 동맹이 무너지고, 경제가 주저앉을 때 가장 먼저 가장 아픈 상처를 입게 될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점이다”라고 그는 지적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은 민감한 대북 ‘강경’ 발언들을 쏟아냈다. 5월12일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만찬장에서의 ‘정치범 수용소’ 발언이 시작이었다. 5월15일 미국 공영방송 와의 인터뷰에선 “북한이 믿을 만한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북한 정권과는 견해를 달리한다”고 했다. 16일엔 특별기 안에서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의 내용도 심각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에는 추가적 조치의 검토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데 유의하면서”라고 한 대목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무력사용의 길을 터놓은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남북관계를 직접 언급한 부분도 있다. “노 대통령은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라는 구절이다. ‘남북 교류협력과 핵문제 해결 병행’이라는 대북정책 기조가 흐트러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처음엔 놀라움이, 이어 반발이 터져나왔다. 참여연대는 5월17일 논평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왔던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대폭 후퇴시키는 한편, 미국의 일방적인 대한반도 정책을 추인하는 것으로 끝났다”고 밝혔다. 5·18국립묘지에서 벌어진 한총련 학생들의 ‘굴욕외교’ 규탄 시위는 기념식에 참석하려던 대통령의 발길을 후문쪽으로 돌려놓기에 이르렀다.

노 대통령은 곤혹스런 모습이다. 그는 5월18일 한총련 시위 직후 열린 전남대 특강에서 ‘갈릴레이’를 예로 들어 스스로를 해명했다. “중세 교리가 천동설이었을 때 브루노라는 사람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지동설을 주장하다 화형당했지만,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인하고 살아나오면서 재판소 문턱에서 혼잣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두개 다 의미가 있는 방식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엔 부르노쪽을 좀더 좋아하는 쪽이었다.”

햇볕정책을 버렸나


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대미 굴욕외교라는 지적에 대해 국익차원에서 한-미간 우호관계를 강조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방미결과를 설명하는 노 대통령.(청와대사진기자단)


그는 여기에 더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엎드려 세수하지 않았다고 하고, (옛 중국 한나라) 한신 장군은 어렸을 때 동네 부랑아에게 고개 숙이고 가랑이 밑을 기었다고 한다. 두개는 모순되면서도 다 삶의 본보기로 되새겨지고 있다”고까지 했다. ‘부랑아의 가랑이 사이를 긴 한신’의 모습은 영락없이 한-미 정상회담에 임한 노 대통령 자신에 대한 은유로 읽혔다.

‘가랑이 밑을 기면서’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조선일보>가 명확히 읽었듯이 한국의 ‘국익’이다. 5월16일 워싱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던 특별기 안에서의 기자간담회에선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북핵 등 어려운 문제를 잘 협의하고 합의를 얻기 위해 방미했는데, 한-미간 우호관계를 강조하지 않고 나쁜 관계만 지적했다면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또 다른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국익’을 두고서도 그의 방미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통일부와 외교부는 한-미 정상 공동성명 참고자료를 통해 △평화번영 정책과 남북화해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 재확인 △베이징 대화의 모멘텀(추진력)을 유지할 필요성 반영 △북한 핵불용 원칙 등 한-미의 단호한 대처방침 표명 △문제해결을 위한 한-미간 대북공조 심화 등을 성과로 꼽았다.

특히 ‘앞으로 남북 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한 것과 관련해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 병행’이라는 정책 기조를 ‘연계’로 변경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남북교류협력도 현실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런 긍정적 해석을 일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의 선회는 북핵 위기를 심화시키고,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비교해 노 대통령의 인식이 크게 후퇴했으며, 햇볕정책의 계승자로 자처하던 노 대통령이 마침내 ‘햇볕정책을 버렸다’고 못박기에 이르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가 처음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10월27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미국·일본 정상과 만나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핵문제 해결에 남북대화 채널 활용 등의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0일 국무회의에선 “쿠바와 옛 소련 등 공산국가에 대해 억압과 고립화로 성공한 일이 없다”며 미국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던 ‘맞춤형 봉쇄’ 등 북한 고립화 전략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에 비해 이번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추가조치 검토’로 대북 제재와 고립화 등 외교적 압박은 물론 군사적 봉쇄, 나아가 무력사용까지 미국이 내심 바라는 모든 강경조처로 나아가는 길을 텄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의 군사적 해결을 정부 관료들이 거론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의 협소했던 협상 입지

취임 직후인 3월5일 <더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에 도에 지나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며 “부시 대통령을 만나면 북한이 비록 미국의 가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미국의 관점에서 못마땅한 점이 있더라도 관계를 개선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는 점을 대화를 통해 확신시킬 것”이라고 한 데서도 크게 물러선 것이다.

방미기간 나온 노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들이 남북관계를 한층 꼬이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수용소’ 발언은 노 대통령이 ‘반미주의자’가 아님을 미국에 ‘검증’받기 위해 북한을 ‘희생양’으로 삼은 너무 나간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노 대통령은 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은 낡은 체제를 고집하고 있고, 북한이 추구하는 가치는 북한 주민들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비록 미국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발언일지라도, 남북관계를 생각한다면 조심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는 “이런 발언들로 북한과의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 핵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노 대통령의 선택에 대한 평가가 비난 일색인 것은 아니다. 또 ‘보수층’만이 그의 선택에 공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전략적 변화 아닌 전술적 유연함에 무게를 두는 견해들이다.

정상회담 앞뒤로 포착되는 당시 정황들은 노 대통령의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 고위 당국자는 “처음 미국은 공동성명 초안에서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을 포함한 ‘올 옵션’을 주장했다. 이를 간신히 설득해서 ‘상황악화시 추가조치 검토에 유의한다’로 완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내놓은 초안에는 심지어 ‘후세인과 이라크의 교훈’ 같은 강경한 표현들도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노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에도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이 나서 “대북 무력사용을 옵션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압력을 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으로선 회담을 깨면서라도 ‘추가 조치’에 대한 전면 거부를 표명하거나, 아니면 타협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안보리나 국제원자력기구 상정 등 추가적 외교 조처도 있고 제한적 경제제재 등 수많은 추가적 조처가 가능한데, 왜 군사적 수단을 용인하는 것으로만 해석하느냐”며 “타협의 산물인 만큼, 이후에라도 우리 나름의 해석을 갖고 다시 타협할 문제”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타협엔 특히 미국과의 합의가 깨졌을 경우 한국 경제가 입을 심각한 타격에 대한 우려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사회과학부·정치학)는 “만약 노 대통령이 미국의 제안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회담을 깼더라면 미국은 즉각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배치하고, 그 결과는 한국의 국가신인도 하락과 그에 따른 심각한 경제불안으로 나타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취임 3개월 만에 경제가 흔들리면 통치권 누수가 초래돼 개혁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 같다”고 바라봤다. 한-미 정상회담에 참여한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는 “국민으로선 안보불안도 실은 경제불안으로 먼저 체감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사진/ 시민단체와 한총련은 노무현 대통령이 굽혀도 너무 굽혔다며 미국방문의 결과를 굴욕외교라고 비판한다.(류우종 기자)


이와 함께 북한의 ‘핵보유’ 발언과 재처리 강행 표명 등 달라진 북핵 상황도 노 대통령의 협상 입지를 협소하게 했다. 노 대통령이 16일 특별기 안에서 “이번 방미 중에도 북한은 비핵합의에 대해 효력이 상실됐다고 주장했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효율적인 카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NSC 당국자는 “상황이 달라졌는데, DJ정부 때보다 후퇴했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과 스스로 핵개발 의지를 드러낸 상황을 동일하게 놓고 대응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노 대통령의 대북관에 대해서도 실제 변한 것은 없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핵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 정권을 제거하는 것은 한국에는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끄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만큼 냉정하게 남북관계를 판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 정권이 좋은 상대가 아니라는 인식은 일반적인 것 아니냐”며 “중요한 것은 좋으냐, 나쁘냐의 도덕적 인식이 아니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의 전략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물론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돌출’ 발언이 필요했는가는 여전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방미 전과 후의 발언이 너무 크게 달라진 점도 문제임에 틀림없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미국에서의 활동과 발언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국내에서 사전 조율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정책은 결국 현실적 선택에 의해 평가될 수밖에 없다. 북쪽의 ‘헤아릴 수 없는 재난’ 발언 파문에도 불구하고 제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결렬되지 않은 것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첫 시험대를 통과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NSC 당국자는 “핵과 경협 연계 등은 정확하지 않은 해석임을 현실 남북관계에서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엔 변화가 없으며,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남쪽은 경추위를 통해 “추가적 조치가 군사적 행동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주장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북쪽에 설명했다. 하지만 ‘추가 조치’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의 조율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당장 5월24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선 북한이 핵문제로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더 강경한 조치들”을 취하겠다는 경고가 보태졌다.

미-일 정상은 “더 강경한 조치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제제재와 해상봉쇄 등이 검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칫 노 대통령이 열어놓은 ‘추가적 조치’의 길 위로 해상봉쇄를 위한 미국과 일본의 항모 선단이 지나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은 “제재는 곧 선전포고”라고 경고하고 있다. ‘노무현의 변신’을 판단하기까진 더 지난한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다.

손원제 기자/ 한겨레 정치부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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