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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매파는 ‘재 뿌리기’에 바쁘다 김정일 정권 붕괴를 최종 목표로 북-미 대화 ‘악의적 방치’…최근 ‘전투상황’은 온건파의 우세
‘대화는 없다. 판을 깨라.’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 안팎에 포진한 대북 강경파의 당면한 지상과제다. 북한과 미국의 끝없는 힘겨루기로 좀처럼 교착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북핵 논의는 이들 매파의 파상적 판깨기 공세로 좌초될 우려가 갈수로 커지고 있다. 미 행정부 강온파의 공방이 암투 수준을 넘어서 ‘난투극’으로 치달으면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어디로 튈지조차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험난하기 짝이 없는 평화적 북핵 해결 과정의 최대 걸림돌이 바로 미국의 매파인 것이다.
미 행정부 강온 양면정책으로 선회
3자회담 추진상황만 지켜볼 뿐 달리 손을 쓸 수 없었던 럼스펠드는 부시의 승인이 나기 며칠 전 북한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주장하는 비밀메모를 행정부 최고위 인사들에게 돌려 재뿌리기를 시도했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회담 개최가 확정된 뒤에는 자신이 국무부에 심어둔 골수 강경파인 존 볼턴 국제안보담당 차관에게 회담 대표자리를 넘기도록 파월에게 압박을 가했고, 지난달 하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첫날 회의에서 북한이 핵보유 주장을 펴자 곧바로 회담을 걷어치울 것을 요구했다. 이어 회담이 냉랭한 분위기에서 막을 내리기 무섭게 ‘결렬 딱지’를 붙였다. 미국 등의 안전보장·경제지원과 북한의 핵개발·미사일수출 포기를 단계적 맞교환하는 북한의 이른바 ‘대담한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북한이 요구사항을 모두 쏟아놓아 회담이 유익했다며 북-미 대화를 이어가려는 온건파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이었다. 럼스펠드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행정부에서 베이징 회담 후속조처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4일 극우성향 케이블텔레비전 <폭스뉴스>에 출연해 “북한은 이라크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미국은 어떤 선택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사공격 가능성을 다시금 내비쳤다. 미국 주요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흘리고 있는 대북 제재나 봉쇄 협박은 대화 분위기를 얼려놓기 위한 매파의 고단위 냉각제나 다름없다. 매파의 대화 방해책동으로 미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상당히 뒤틀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화 우선으로 가닥을 잡았던 미국의 대응이 대화와 제재의 동시 추진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 행정부는 강온파의 격돌로 합의도출이 어렵게 되자 일단 강온 양면전략을 편다는 선에서 봉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강경 조처로는 마약거래와 위조지폐 제조 등 북한의 위법적 행위 철저단속, 이란 등 북한 미사일 수입국에 대한 외교적 압력 강화와 같은 ‘초기 단계’ 제재 방안들이 거론된다.
대화는 양보일뿐?
매파가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 자체를 봉쇄하려는 이유는 극도의 대북 불신감에서 찾을 수 있다. 경수로 제공 등과 북한 핵계획 포기를 맞바꾼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빌 클린턴 전 행정부의 대표적 외교 실패사례로 꼽는 이들은 북한이 협상을 통해 핵개발을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대화는 곧 북한에 대한 양보이며,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말려들어 합의란 이름으로 김정일 정권에 돈다발을 안겨 체제유지를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매파의 이런 신념은 지난해 북한의 우라늄농축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더욱 확고해졌고, 이라크 침공 승리는 이른바 ‘불량국가’는 협상이 아닌 힘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이들의 확신을 강화시켜주었다. 그렇다면 매파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북핵 문제의 종착역과 그 이정표(로드맵)는 어떤 것일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게 분명하므로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선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필수적이라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럼스펠드의 최근 비밀메모도 매파 인사들이 늘 논의해온 이 문제가 행정부 핵심인사들 사이에서 공론화됐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미국이 이라크 전략을 은근슬쩍 대량살상무기 폐기에서 사담 후세인 축출로 바꾼 것처럼 대북정책 목표도 언제든지 북핵 폐기에서 김정일 축출로 옮겨갈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 붕괴를 위한 첫 단계 작업이 북-미 대화 저지다. 2004년 재선 도전을 앞두고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는 게 부담스런 부시는 아직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미련을 두고 있지만 대화가 막히면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대화에 매달리고 있는 북한은 미국에게 외면당할수록 폐연료봉 재처리 등 핵개발에 가속도를 높이면서 벼랑끝으로 달려갈 게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북핵 논의가 자연스레 북-미 대화에서 유엔을 통한 제재쪽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매파가 전개하는 ‘악의적 방치’ 전략의 노림수다. 매파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럼스펠드는 북한이 핵무기를 한두개 ‘갖고 있을지 모른다’에서 ‘갖고 있다’, ‘몇개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수위를 높여가면서 북한을 봉쇄의 대상으로 몰아가려 애쓰고 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데 폐연료봉 재처리 협박에 휘둘려 쫓기듯이 대화에 나설 이유가 없으며, 핵무기의 수출을 봉쇄하는 데 주력하고 당장 제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핵보유는 일본·대만 등의 핵무장을 부추기는 강력한 인화성을 띠고 있고, 핵개발보다 핵유출 포착이 훨씬 힘든데도 미 행정부가 이를 수용키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도 봉쇄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한 매파의 언론플레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온건파와 주도권 다툼 치열
그렇다고 매파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까지 강행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94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실행 직전단계까지 갔던 북핵 시설에 대한 ‘외과수술형’ 공습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군사공격 엄포는 대북 압박과 협상 교란용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매파의 핵심세력인 신보수 인사들의 근거지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부의장 엘런 보크는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쓸 만한 군사적 선택안이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그 대신 대화를 통한 해결의 환상을 깨고, 한반도 주변 군사력 증강이라는 전통적 억지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매파 인사인 폴 월포위츠 국방 부장관 또한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 부장관과 함께 99년 3월 작성한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깔끔하고 안전한 군사작전”의 가능성이 없다며 영변 핵시설 공격이라는 발상을 일축했다. 물론 북한의 대규모 보복공격에 따른 한반도 전면전 우려와 한국 정부의 반대 등이 가장 큰 이유다. ‘북한 말려죽이기’로 요약할 수 있는 매파의 구상이 어느 정도 관철될 것인지는 일차적으로 행정부 내 강온파의 격전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양쪽은 현재 이라크 점령 이후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혈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온건파는 국제사회의 반미감정 악화를 막고 지도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매파의 힘 자랑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곤란하다며 이라크 침공이 끝나자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반면 매파는 침공 승리의 여세를 몰아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려 온건파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매파는 온건파 무력화를 위해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파월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럼스펠드와 막역한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이라크 침공에 대한 다른 나라의 지지를 많이 이끌어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추궁하면서 파월을 ‘무능력자’라고 몰아붙이는 등 총대를 멨고, 일부에선 파월 교체를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은밀하게 펼치고 있다.
“이란 길들이기가 먼저다”
최근까지의 ‘전투상황’을 보면 온건파쪽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파월은 다음 제물을 찾고 있던 럼스펠드 등이 시리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자 재빨리 시리아 방문을 추진해 김 빼기에 나섰다. 이어 시리아로 넘어간 이라크 고위관리 추방 등 시리아 정부의 협력에 대한 부시의 우호적 발언을 이끌어냄으로써 충돌의 뇌관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온건파는 이라크 재건사업을 둘러싼 다툼에서도 판정승을 거뒀다. 국방부가 임명한 예비역 장성 제이 가너 대신 외교관 출신인 폴 브레머를 재건 최고책임자 자리에 앉힘으로써 국방부의 전권행사를 막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온건파의 성과는 매파의 공세를 막아냈다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9·11 동시테러 이후 공룡처럼 비대해진 국방부가 원래 국무부가 주도하게 돼 있는 대외정책 분야까지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차단하고 정상 상태로 되돌리고 있을 뿐이어서 온건파의 확고한 우위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국무부 관리들은 국방부에서 사사건건 보내오는 ‘러미그램’(럼스펠드의 지시)이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북핵 문제가 매파의 21세기 세계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도 주요 변수다. 그 비중에 따라 매파가 선택할 대응수단의 폭이나 강도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신보수 최고 이론가로 꼽히는 빌 크리스톨 <위클리스탠더드> 편집장은 이 잡지 최신호 사설에서 이라크 다음에 ‘손볼 대상’으로 이란을 지목하고, 이란 길들이기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97년 초 이라크 침공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기해 6년 만에 목적을 달성한 그가 ‘미 제국’이 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북한은 위험하긴 하지만 충분히 봉쇄될 수 있고 △북한의 국제적 위협도 뜯어보면 치명적 무기가 거의 대부분 중동에 있는 테러단체나 국가에게 넘어가는 것이므로 중동을 단속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란에 집중하면서 북핵 문제가 또다시 후순위로 밀려 북-미간의 장기적 대치상황이 전개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그의 견해가 아직 매파의 공통된 방침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우파 논리 전파력에 비춰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박중언 기자/ 한겨레 국제부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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