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5월08일 제458호 

“한나라당 개혁파여 결단하라”

정동영 의원에게 들어본 신당 진행 상황…“리모델링 수준에서 멈추지 않겠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4년여 전 새천년민주당 창당의 ‘숨은 주역’이었다. 이만섭 의원 등 공식 라인과는 별도로 김대중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정균환, 최재승, 정동채 의원과 김민석 전 의원 등이 참여한 준비팀에 소속돼 신당의 밑그림을 그렸다. 1만여명에 이르는 전국 인재를 놓고 외부 수혈 대상을 점검했고, 때로는 밤늦게 산간벽지까지 찾아가며 삼고초려하기도 했다.


사진/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4년전 새천년민주당 창당의 ‘숨은 주역’이었다. 그는 이제 민주당의 해체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이용호 기자)


정 의원은 이제 자신의 손때가 묻은 민주당의 해체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바른정치실천모임 소속 의원으로 신당 창당을 선도할 뿐만 아니라, 정대철 대표 등 6인 중진모임에 참가해 신당 창당에 정치적 무게를 더하고 있다. 5월2일 의원회관에서 정 의원을 만나 신당 진행 상황을 들어보았다.

이제는 4세대 정당

-민주당 신당 창당 작업이 예상 밖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우리도 이렇게 빨리 진행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대선 직후 민주당 의원 23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했을 때만 해도 다들 화들짝 놀랐고 당 안팎으로 역풍도 많이 맞았다. 그래서 발전적 해체를 창조적 건설 등으로 표현을 누그러뜨리는 방안 등이 거론됐으나, 이제는 신당 반대론자도 발전적 해체를 얘기하기에 이르렀다. 4·24 재보선 직후 다시 얘기를 꺼낼 때도 당내 투쟁과 갈등이 불가피해 5월 중순 이후에나 가닥이 잡힐 것으로 판단했는데, 일종의 밴드왜건 현상인지 다들 신당행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재보선 결과가 영향을 미친 것인가.

=그보다는 민주당이 당 개혁안을 둘러싸고 계파간 갈등을 빚으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이 크다. 그 영향이 재보궐 선거 결과에 투영됐다. 재보선 결과를 놓고는 구주류건 신주류건 해석의 차이가 없다. 민주당이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당이고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국민적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4년여 전 민주당 창당을 주도했는데, 신당은 그때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때는 선거를 코앞에 둔 급조 정당이었고, 신당 창당이 외부인사 수혈을 위한 선거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 어느 학자가 이승만 시대를 1세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를 2세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대를 3세대라고 했는데, 이제는 4세대 정당이다. 과거 많은 정당들이 카리스마를 가진 1인 지배자가 있는 오너 정당이었다. 3김이 만들고 부순 정당이 12개에 이른다. 3김 시대는 물리적으로 세분 다 거의 퇴장했으니 끝났지만, 3김 시대를 뒷받침하고 있던 지역정당 구조는 그대로 있다. 심각한 불일치다. 4세대 정당은 그 불일치를 뛰어넘어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에 동참하는 범개혁세력의 단일 신당을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당연히 신당 창당의 시나리오는 없다. 과거에는 위에서 지시한 대로 실무기획단이 꾸려져 각본대로 차곡차곡 진행됐다. 그러나 이제는 예정된 수순이 없다. 상황마다 국면마다 의견을 모아 신당의 청사진을 만들어가고 있다.

후단협 의원 참여 놓고 고민 중

-문제는 신당의 내용인데.

=당내에 민주당의 리모델링을 얘기하는 분이 있다. 좀 좁게 말하면 인테리어 공사 정도로 그치자는 얘기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당 밖의 광범위한 개혁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 지역분열 구도와 낡은 정치의 틀을 깨는 데 민주당이 앞장서 부서질 때 그 공간에서 새로운 정치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사진/ “지역구도와 낡은 정치의 틀을 깨야 한다.” 민주당 쇄신파 의원들의 모임.(이용호 기자)


당내 권력의 핵은 공천권에 있다. 그 권력을 3김 시대에는 총재가 독점하고 있었다. 설사 상향식으로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임명한 대의원이 자기를 다시 뽑아내는 형식적인 구조, 결국 국민과 당원들은 소외되고 객체로 전락하는 제도를 바꾸어서 국민을 주인의 자리에 복원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지구당위원장의 기득권을 내놓으라는 것이 신당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정치가 욕먹어온 것은 첫째 돈, 둘째 지역주의, 또 하나는 기회주의다. 특히 기회주의와 관련해서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원칙 없이 이쪽저쪽 눈치를 보는 행태가 두드러져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민주당 내 후보단일화협의회 의원들을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과도 신당을 같이하는가.

=고민이다. 애초 신당을 추진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내 계파 통합과 정당과 정파를 뛰어넘는 국민통합과는 서로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있다. 계파 통합을 강조하면, 당 밖의 개혁세력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인요소가 적어진다. 또 민주당 의원 100%가 신당으로 가면 ‘도로 민주당’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당내 여러 의원들을 만나 보았는데 의견이 다르더라. 이만섭 의원 같은 경우 ‘신당이라면 30~40명만으로 시작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반면, 김상현 의원은 ‘정치는 천사만 하는게 아니라 세력의 문제’라고 얘기한다. 김근태 의원의 경우도 ‘일단 당내 모든 인사를 참여시킨 뒤 나중에 상향식 공천 때 제도개선 등을 통해 커트라인을 높이자’고 얘기한다. 좀더 고민하고 논의할 대목이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과는 접촉하나.

=한나라당이 국정원장 사퇴권고 결의안을 제출하는 데서도 드러났듯이 한나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간극은 너무 크다. 극우와 재야출신이 혼재돼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재야출신 의원들이 왜 정치를 시작했는지 되돌아볼 때이다. 그들이 언제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신당의 성격과 규모도 많이 달라진다. 관망만 하지 말고 지금 결단을 내려주면 신당의 규모와 단위가 질적으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영남 개혁세력은 신당에 참여하게 되나.

=오늘 경남지역의 ‘정치개혁을 위한 참여운동본부’ 창립총회에 내려간다. 서울에서 신당 창당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 지역에서 먼저 준비한 뒤 신당이 만들어지면 조속히 결합하자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이런 조직이 경북, 부산, 강원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조직들은 과거 대선기간 동안 지역에서 민주당 조직이 와해되면서 그것을 대체하려고 만든 국민참여운동본부가 토대이다. 그때 활동이 신당의 밀알이 되고 씨앗이 되고 있다.

추미애 의원도 결국 이해할 것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 원칙을 얘기하고 있다.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과는 직접 만나기도 하고 수시로 연락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나 유 수석과는 지역구도 해체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을 맞춰온 견고한 동지적 관계다. 신당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누지는 않더라도 서로 이심전심 통하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온 추미애 의원은 요즘 신당에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

=추 의원과는 최근 대화가 부족했다. 주로 아침에 모여서 얘기들을 나누고는 했는데, 추 의원이 가정주부라 아침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결국은 우리들을 이해하고 같이 가리라 본다. 그리고 그렇게 소신 있게 얘기하는 것이 추 의원의 매력이다.

-정 의원은 대선 이후 한동안 전면에 나서서 발언하는 것을 꺼렸다. 주위에서는 내부견제를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는데.

=정치인으로서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나설 필요가 있을 때는 회피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때는 식견을 넓히고 정치적 전망을 갖추는, 속을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가만히 있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행동이다. 이라크 파병안에 대해서도 속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주위에서 ‘왜 가만히 있느냐’고 질책해 할 수 없이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당이 만들어지면 대표에 나설 생각이 있나.

=그런 문제로 신당 창당의 본질을 훼손할 생각은 없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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