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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3.04.17(목) 제455호

[표지] [기자가 뛰어든 세상] 엉덩이야 미안해…

인라인 완전초보 이춘재 기자, 창동교에서 군자교까지 10km 중랑천 종주에 도전하다

“당신, 정말 할 수 있겠어?”

인라인 스케이트로 중랑천 종주(!)에 도전하기로 한 4월12일 오후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날은 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어본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내 인라인 동호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인라인 체험에 ‘간택’됐지만, 사실 나는 ‘완전 초보’였다. 내 딴에는 달린다고 달리는데 시원스럽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발만 구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3일째 되던 날 아내가 보는 앞에서 주제넘게 시범을 보인다고 설쳐대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으니 그녀의 걱정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때 새로 산 면바지 하나를 해먹어서 아내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던가. 그러나 나는 용감하게(!) 스케이트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아파트 주차장까지 따라 나온 그에게 “너무 걱정 마라”고 큰소리를 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창동교 부근 골목길에 주차하고 난 뒤 나는 한참 동안 차 안에서 머뭇거려야 했다.

“주말엔 접촉사고 많아요”

가까이서 보니 중랑천도 만만치 않은 ‘강’이었다. 평소 자동차로 지날 때는 잘 몰랐는데 시커먼 물이 제법 위협적이었다. 자전거도로는 강과 불과 5m 정도 떨어져 있어서 물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졌다. 숨을 한번 크게 내쉰 뒤 가방에서 장비를 꺼냈다. 스케이트부터 손목보호대까지 완벽하게 차려입고 나니 가슴 한구석에서 자신감이 솟아나는 듯했다. 강습 시간에 배운 대로 자세를 낮추고 기세 좋게 앞으로 전진했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마주 오는 자전거를 피하려다 무게중심이 뒤로 쏠려버린 것이다. 얼른 일어나려다 나는 또 한 차례 엉덩방아를 찧었다. 침착해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내 다리는 머리와 따로 놀았다. 마침 퀵보드를 타고 지나가던 꼬마들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해보자. 끝까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오는 것 같다.

녹천교 밑을 지날 때쯤 나는 안정감을 찾았다. 비로소 주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강 양쪽으로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내가 달리는 자전거도로 옆의 동부간선도로(군자교 방향)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반대편(의정부 방향)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지금쯤 이쪽에서는 수락산이 보여야 한다. 하지만 산은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때문이다. 건너편(의정부 방향)에서는 북한산이 보여야 하지만 역시 안 보일 것이다. 상계동 소각장 부근에 이르니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중랑천에 분류하수관이 설치됐다던데 워낙 썩은 물이라 감당하기에 역부족인가.

하지만 도로의 노면 상태는 괜찮았다. 포장한 지 얼마 안 됐는지 크게 파인 곳 없이 평탄했다. 그러나 월릉교 밑을 막 지날 무렵 나는 엄청난 복병(!)을 만났다. 이곳에서부터 이화교를 약 500m 앞둔 지점까지 1km 정도의 도로가 뚝 끊긴 것이다. 건너편에서는 레미콘 차량 2대와 인부들이 열심히 콘크리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중랑천 자전거도로 공사 중’이라고 씌어 있었다. 아직 절반도 오지 않았는데 이를 어쩐다. 강 건너편은 자전거들이 유유히 달리고 있었다. 어째 건너편 도로가 더 좋아 보이는 것 같더니만…. 할 수 없이 신발을 꺼내 신고 스케이트는 벗어서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는 흙더미 사이로 온갖 생활 쓰레기가 널려 있는 땅으로 내려섰다. 각종 오물을 피해 걷다 보니 발바닥이 간지럽다.

다시 자전거도로로 올라섰다. 이번에는 다리 힘이 풀린 탓인지 스케이트 신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마침 이화교 부근에 조그만 공원이 하나 있다.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도 볼 겸 쉬어가기로 했다. 벤치에 앉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이 나왔다. 옆자리의 할아버지께서 안됐다는 듯 한 말씀 하신다. “그러길래 왜 그렇게 힘든 걸 타나.” “….” “요즘 그것 때문에 자전거도로가 엉망이야. 도대체 제대로 뛸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이건 무슨 말씀인가. “이것보다 자전거가 더 위험하지 않나요” “자전거는 똑바로 가니까 상관없어. 그런데 그놈의 것은 좌우로 움직이니까 피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 아하, 그렇구나. 인라인은 다리를 교대로 밀면서 몸을 좌우로 움직여야 앞으로 나간다. 그러니 조깅하는 사람이나 자전거 탄 사람은 길을 잡을 때 헷갈릴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떠난 뒤 내 또래쯤 돼보이는 인라이너가 말을 걸었다. “여기는 그래도 한가한 편이어서 괜찮아요. 한강 둔치나 올림픽공원은 주말에 가면 난리예요. 조깅에다 자전거, 인라인이 한꺼번에 몰리니까 접촉사고가 끊이질 않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면 피할 수 있을 텐데….” 갑자기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달리기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흩어진다. “저렇게 자기만 생각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잖아요. 이곳은 오토바이 다니는 길이 아닌데.” 착잡함을 달래며 스케이트 끈을 질끈 동여맸다.

다음에는 한강 둔치에 도전

중랑교 밑을 지나니 오른편으로 벚꽃 나무가 보인다.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 그런 대로 운치가 있었다. 이곳은 상계동 지역보다 경치가 좋고 시궁창 냄새도 덜 나는 것 같다. 맞은편에서 한쌍의 연인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다. 나는 속도를 줄이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들도 속도를 줄이면서 천천히 내 옆을 지나간다. 바로 이거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니까 훨씬 편하게 달릴 수 있다. 그 뒤로 나는 넘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뒤쪽도 가끔씩 쳐다봤다. 어느새 군자교가 보인다. 아내의 걱정을 뒤로 하고 나선 ‘장도’의 절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간다. 창동교에서 군자교까지 약 10km를 큰 탈 없이 달린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한강 둔치에도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욱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달림이’들끼리 서로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코스라도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4시간 동안의 종주가 끝나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 개운하다. 역시 봄은 봄이다.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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