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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3.04.10(목) 제454호

[표지] 포화가 물어뜯은 유년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전쟁터의 어린이들, 누가 그들을 치유할 것인가

“지난 4월3일에도 이라크 북부 도후크 지방의 한 지뢰 매설지역에서 어린이 3명이 폭발사고를 당했다. 6살과 5살난 형제는 각각 양손과 한쪽 눈을 잃었고, 이들의 6살난 사촌은 오른쪽 팔과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이들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삶은 결코 예전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4월6일 유엔아동기금(UNICEF) 캐럴 벨라미 사무총장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과 뉴욕에서 동시에 발표된 성명에서, 미·영 연합군의 폭격으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희생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다. 벨라미 사무총장은 “전쟁의 상흔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육체적·심리적 충격과 공포,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은 두고두고 살아남은 이들의 삶을 얼룩지게 한다. …단 한명이라도 어린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결코 전쟁의 불가피한 결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하루 5천여명의 어린이가 난민으로

전쟁터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린이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유년시절을 박탈당한 어린이는 전쟁의 단순한 구경꾼일 수 없다. 민간인을 상대로 한 무차별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치밀하게 계획된 학살의 대상이 된다. 폭력의 대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도구로 강제로 내몰린다.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거나, 배고픔과 빈곤·질병으로 만성적 고통을 겪기도 한다. 국제법이 보장한 교육받을 권리, 사랑받을 권리, 보호받을 권리는 전쟁에 휘말린 어린이들에게는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야만과 광기로 점철된 20세기의 극단은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외무부가 지난 2000년 9월 펴낸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란 자료를 보면, 1990년부터 10년 동안 전쟁과 무력분쟁으로 약 200만명에 달하는 어린이가 숨졌고, 400만~500만명에 달하는 어린이가 장애를 겪고 있다. 100만명의 어린이가 부모를 잃었고, 1200만명의 어린이가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18살 이하 청소년과 어린이 30여만명이 무력분쟁의 당사자로 전투현장에 투입됐다. 이들 가운데는 10살 남짓부터 전장으로 내몰린 어린이도 적지 않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과 무력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2300만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했다. 이들 가운데 50% 정도는 어린이다. 지금도 하루 5천명의 어린이가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매달 800명의 어린이가 지뢰 폭발사고로 숨지거나, 신체 일부를 잃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 정부는 국방예산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지난해 펴낸 연차보고서를 보면, 2001년 현재 전 세계 국방비는 8390억달러다. 이는 지구촌 인구 1명당 한해 137달러씩을 부담하는 꼴이다.

전쟁이 어린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이라크 어린이들이 겪어야 했던 지난 20여년 세월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때 이라크는 중동지역의 대표적인 선진국가였다. 막대한 원유 매장량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정부는 1975년부터 1985년까지 광범위한 사회 기반시설 투자에 나서 삶의 질을 크게 높였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판이하다. 2차례의 파괴적인 전쟁은 이라크 사회의 기초를 뿌리째 흔들었고, 12년여 동안 이어진 경제제재는 의료·복지 제도를 포함한 사회 각 분야의 투자와 재건을 가로 막았다.

이라크 100만명 어린이 영양실조

1999년 유엔아동기금이 내놓은 이라크 어린이 및 임산부 사망률 결과는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유엔아동기금은 “이라크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사회부문 투자를 지속할 수 있었다면, 약 50만명의 어린이가 5살 생일을 넘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잇단 전쟁과 가혹한 경제제재는 어린이의 생존을 위협했다. 2003년 현재 이라크 어린이 8명 가운데 1명이 5살이 되기 전에 숨진다. 식량난이 최고조에 달한 1996년 5살 미만 어린이 가운데 11%가 영양실조 상태였다. 1996년 이후 유엔이 이른바 ‘식량-원유 교환 프로그램’을 허용한 뒤 이런 수치는 4%대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이라크에서는 지금도 100만명에 달하는 5살 미만 어린이가 만성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출산 도중 숨지는 산모는 10만명당 294명에 달하고, 전체 신생아의 24.7%가 미숙아로 태어난다. 전체 어린이 사망원인의 70%가량이 설사와 호흡기 질환인 현실은 무너진 보건·의료 체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 이후 예방접종을 통해 막을 수 있는 질환만 100%가량 증가했다. 세계 제2위의 원유 보유국임에도 이라크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0달러에 불과하다.

교육환경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2450만 인구 가운데 절반가량이 18살 이하인 이라크에서, 2003년 현재 취학연령 어린이의 25%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남자 어린이보다는 여자 어린이의 교육기회 박탈 현상이 심각하다. 농촌 지역에서는 취학연령 어린이의 39%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반면, 도시 지역에서는 16.2% 어린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농촌 지역 여자 어린이는 절반가량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데 반해, 도시 지역에서는 20% 정도가 교육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는 의무교육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 만연한 빈곤으로 인해 상당수 어린이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된 탓이다.

운좋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도 낙후된 시설 등으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 이라크 전체 학교시설의 약 70%가 개보수가 시급한 상태다. 무기로 전용 가능한 이른바 ‘이중사용 가능 물품’에 대한 금수조처는 뜻밖에도 학용품 부족사태로 이어졌다. “연필에서 탄소를 추출해 비행기에 덧칠하면 레이더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며 연필 수입조차 금지하고 있는 터다. 게다가 이라크 화폐(디나르) 가치가 급락하면서, 교사의 월평균 수입은 5~8달러선에 불과한 실정이다. 저임금에 허덕이는 교사 대부분이 부업전선에 뛰어들면서, 가뜩이나 취약한 교육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전쟁은 어린이들이 존엄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모든 권리를 부정한다. 생명권과 건강권, 가족과 공동체와 함께 살 권리, 성격을 개발할 권리와 양육받을 권리, 보호받을 권리 등 국제법 질서가 어린이에게 부여한 모든 권리가 부인된다. 어린이가 더 이상 어린이로 살아갈 수 없을 때, 인류의 미래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전쟁과 무력분쟁 과정에서 민간인, 특히 여성과 어린이를 공격 목표로 삼는 현상이 매우 체계적이며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는 국제 인권법 위반이자,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지난 2000년 4월1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쟁과 무력분쟁에 휘말린 민간인 보호 규정을 뼈대로 하는 결의안 제1296호를 채택했다. 그로부터 불과 2년여가 흐른 지금, 이라크 어린이들은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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