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4월30일 제457호 

“그것만은 아니되옵니다”

14년차 학부모인 학교운영위원이 겪은 교장 이야기… “아이들을 위해 변해주세요”


사진/ 김정명신(함께 하는 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씨네21 손홍주 기자


나는 올해로 4년째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지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부모 노릇은 14년차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계보다 ‘관행’이라는 말이 자주, 그리고 당연하게 먹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관행’이란 말로 용서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 허용되는 변화의 폭은 무척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들 하지만, 학교가 싫다고 모든 학생이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학교가 변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절이 싫으면 절이 변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교의 잘못된 관행의 중심에는 대부분 교장 선생님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도 일선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은 군림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일파만파를 가져온 충남 예산의 한 초등학교의 사건도 ‘차 한잔’이라는 관행에서 비롯했다.

내가 학부모 노릇을 하며 만나본 교장 선생님들 가운데도 때로는 학부모가 감동할 만큼 훌륭한 교육철학을 가진 분들이 더러 있었다. 우리 교육현장이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그분들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변화의 중심에 선 교장 선생님들 수가 학부모들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우리 사회가 교장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을 위해 교장 선생님도 변하라!’거나 ‘기득권 지키기에 보수를 악용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기존 관행이나 지역 교장단 회의에 얽매이거나 시범학교 지정을 통한 점수따기 등에 매달려 본인도 자유롭지 못하고, 학교 전체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일에 문제가 생겨 한바탕 분주하게 뛰어다닌 적이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를 더욱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운영한다는 목적에서 구성된 기구로, 여기에는 교육의 각 주체인 교사, 학부모, 지역위원이 참여하도록 돼 있다. 교육자치를 실현한다는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졌음에도 시행 초기에는 구성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운영위원회에 대한 학부모의 인식과 참여도가 낮았고, 교장 선생님들은 그들대로 ‘학교 운영은 오로지 학교의 권리이며 몫’이라는 기존의 비민주적 발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으로 아이 학교가 시끄러워진 것은 운영위원회 제도를 시행한 지 3년째 되던 해로 학부모위원 선출 규정과 방식이 문제였다. 전교생 학부모를 상대로 후보 등록을 받은 뒤 학부모 대의원회의를 통해 학부모위원을 선출하는 것이 원칙인데, 아이 학교에서는 ‘5개 학부모 임의단체(학부모회, 예절실 명예교사회, 도서실 명예교사회, 지역사회학교 어머니회, 녹색 어머니회)의 회장만이 학부모위원을 할 수 있다’고 아예 자체 규정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 뒤 잘못된 규정을 고집하는 교장 선생님, 그를 엄호하려는 교감 선생님과 여러 갈등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규정을 적법하게 바꿨지만 한동안 학교는 떠들썩했다.

인성교육과 입시교육 사이…


사진/ 서울 한 초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 모습. ‘학교 운영은 오로지 학교의 권리이며 몫’이라는 발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교장과 학부모들이 마찰을 빚기도 한다.(류우종 기자)


내가 속한 학부모 모임에서 학교 화장실에 비누 달기 운동을 벌이려다 교장 선생님과 맞선 일도 있었다. 일반비누를 설치하면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벽에 붙이는 고정식 비누를 선택했다. 그런데 비누를 익명으로 기증받아 설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교장 선생님과 행정실에서 학교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학부모 모임에서 기증한 비누를 다 쓰면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우리는 못 받겠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게 비누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시범적으로 설치할 필요도 없다.” “비누 때문에 하수구가 막힐 수 있고, 또 분실사고가 잦으면 괜히 골치 아파진다. 우리는 안 하겠다.”

다양한 이유를 들어 비누 달기를 거절하는 교장 선생님의 반응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학생 1인당 1년 비누값이라고 해봤자 고작 200~300원 정도여서 1천명일 경우 30만원 정도의 예산이 쓰인다. 학생들의 위생에 무관심한 학교를 학부모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런 어려움은 교복 공동구매 문제에 오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교복을 반값에 구입하자.’ 몇년 전 대구에 사는 한 학부모의 노력으로 시작된 교복 공동구매 운동은 불과 2, 3년 만에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위력을 발휘했다. ‘교복값 20만원을 10만원으로 낮출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똘똘 뭉친 엄마들의 힘이 전국적인 소비자운동으로 번져나갔다. 지금은 초기의 부정적 인식이 변해 공동구매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교육청 지침과 학교 규정도 바뀌고 있다. 그러나 교복 공동구매를 해보겠다며 엄마들끼리 뜻을 맞추어 학교에 찾아가도 막상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자리나 교장 선생님 앞에 가면 쉽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못하고 돌아와 후회한다. 학부모들의 노력에 비해 교육청과 교장 선생님들은 교복 공동구매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건강한 학교교육 참여가 이뤄지는 학교사회는 정녕 기대하기 어려운가

최근 교단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교육현장의 ‘소통부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부 학부모는 인성교육을 중시하고, 일부 학부모는 입시교육을 중시한다. 평교사는 수평적 의사수렴을 요구하고, 관리자는 수직적 명령체계를 선호한다. 교육현장은 각기 이해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고, 단위학교는 갈등의 최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교무회의를 의사소통의 장으로


사진/ 꿈이 자라는 초등학교 교실. 이 아이들을 위해 교장 선생님도 변해야 한다.(이용호 기자)


교장 선생님과 교사, 학부모들의 많은 어려움이 여기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통의 부재 속에 표면적으로 유지되던 ‘평화’는 외부의 충격에 매우 약하고,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속의 단위학교는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하다. 이렇듯 산적한 교육 내외적 문제가 많은 곳에서 크고 작은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학부모로서 바람이 있다면 이런 갈등상황에서 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오랜 교육 경험과 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의견 차이를 지혜롭게 조율하며 새로운 원칙과 관행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변하면 역할도 변하는 것이다. 이는 제도의 민주화에 이은, 내용의 민주화 시기를 맞아 꼭 필요한 덕목이다. 교장 선생님들은 교원노조 세력을 탓하기 전에 교무회의 시간을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또 사립학교 재단 이사회의 부당한 교육정책이 상습적으로 교사들을 괴롭힐 때, 아이들이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며 자살을 시도할 때, 하루 10시간 이상 과도한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볼 때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솔직한 답을 듣고 싶다.

어떤 사회든 위기는 올 수 있고, 교단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으며 성숙하는가로 귀결된다. ‘소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가는 학교의 모습을 보고싶다.

김정명신/ 함께 하는 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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