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4월30일 제457호 

‘교장왕국’을 바꾸자

교사간 경쟁 조장하는 현행 교원승진제도는 ‘교장 눈치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구조

“학교가 얼마나 민주화됐는지 아느냐. 교장이 학교를 위해 뭘 하려고 해도, 평교사들이 반대하고 나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가부장이네, 권위주의네 비판만 한다. 답답할 뿐이다.” (교장)

“40대 중반이 넘어서도 부장교사로 승진하지 못하면, 무능하고 한심한 인간 취급을 받는다. 50대 전후로는 어떻게든 교감 타이틀을 따내려고 발버둥친다. 교감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교감의 인사평정을 메기는 유일한 존재가 교장이다. 당연히 교장이 하는 말이면 뭐든 옳다고 우기고 나올 수밖에 없다.” (평교사)

공무원보다 더 단순한 승진제도

학교운영위원회 제도가 도입되고, 교직원 노동조합이 합법화한 지도 4년여가 흘렀다. 그럼에도 교육계 안팎에서는 “모든 권력은 교장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는 여전히 ‘교장왕국’이라는 쓴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학교 현장에서 경직된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상명하복의 행정관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뭘까 교육전문가들은 “교장에게 학교운영의 절대 권한을 부여하는 현행 교장제도와 그런 교장이 되기 위한 교사 간 경쟁을 조장하는 교원승진제도가 낡은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핵심장치”라고 지적한다.

현행 교육공무원 승진제도는 일반 기업은 물론 여타 공무원보다 단순하다. 대개 사범대나 교육대 또는 정규대학의 교직과목을 이수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고 교사로 임용된다. 임용 뒤 3~5년 정도 교육경력을 거친 뒤 일정한 자격연수를 받고 나면 누구나 1급 정교사가 된다. 이때부터 교장이 되기 위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교감 승진에 필요한 가산점을 받으려면 7년 동안 부장교사 경력을 쌓아야 한다. 부장교사 임명은 교장에게 전권이 맡겨져 있다. 부장교사가 되면 담임이 면제되고 수업을 적게 하는 등의 ‘특혜’가 따른다. 때문에 현 임용구조 속에서 부장교사들은 임명권자인 교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학교장의 지시나 교육청의 공문을 처리하는 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게 마련이다.

평교사에서 시작해 교감·교장까지 승진하기 위해선 10년 이상 인사평점 점수를 각별히 관리해야 한다. 교장·교감 자리는 한정돼 있고, 경력 3년 이상의 1급 정교사는 모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교직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제한돼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교사들은 치열한 점수따기 경쟁에 몰입한다. 인천지역의 한 현직교사는 “교장이 되려면 최소한 30대 중반부터는 근무평정 점수를 소수점 단위까지 계산해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대학입시 경쟁으로 내몰리는 사이, 교사들도 교장이 되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승진점수를 채우기 위해선 다양한 노력을 벌여야 한다. 1급 정교사 연수나 일반연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이 때문에 각종 교사 대상 직무연수 현장에서 승진을 바라는 나이든 교사들이 은 강사들을 ‘접대’하는 등 점수를 구걸하다시피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도 또는 전국 단위의 연구대회에서 수상경력을 쌓아야 하고, 도서벽지 학교나 농·어촌 지정학교·특수학교 근무를 통해 가산점도 얻어야 한다. 연구·시범 학교 운영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빼놓을 수 없는 기회다. 대학원 진학도 승진의 사다리를 오르는 데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코스다.


사진/ 전교조는 2년전부터 교장제도 전면개혁을 요구해왔다. 전교조 주최로 열린 교장선출보직제 공청회(왼쪽,전교조교육희망제공), 한 초등학교의 스승의 날 행사(오른쪽,박승화기자). 교사,학생,학부모는 교육적소신이 뚜렷하고 덕망있는 교장을 원한다.

결국 학교교육 부실화로 이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엄숙한 교무실에서는 간혹 낯뜨거운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학기 초에는 수업을 적게 맡으려고 얼굴을 붉히는가 하면, 수업시간에 학생들 자습을 시킨 뒤 급한 공문을 처리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경기지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ㅇ씨(35)는 “얼마 전부터 담임교사를 맡으면 인사평정에서 특별점수를 받게 됐다. 그 뒤로 관례적으로 담임을 맡지 않던 교무부장·학생부장 등 ‘잘나가는’ 부장교사들도 담임을 맡겠다고 나서고 있다. 만약 추가점수가 부여되지 않는데도 이들이 담임을 맡는다면 그야말로 신문에 날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승진제도가 교사들을 이른바 ‘점수가 되는’ 보여주기식 활동에 매달리게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교육적 소신보다는 교장이나 교감의 지시에 충실해야 하고, 수업이나 학생지도 등 교직 본연의 업무에 힘을 쏟기보다는 승진에 필요한 점수 관리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이는 고스란히 교원의 자질향상을 가로막아, 학교교육의 부실화를 부추긴다.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이 지난해 서울시내 14개 초·중·고등학교 교사 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행 승진제도에 대한 교직사회 내부의 반응이 쉽게 읽힌다.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76.4%는 현행 교원 승진제도 때문에 ‘수업과 생활지도에 충실할 수 없다’고 답했다. 승진경쟁에 내몰려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펴지 못한다’는 견해도 76.1%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의 68.4%는 ‘근무평가 등의 통제체제가 창의적인 교육활동과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방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72.9%에 달하는 교사들은 현행 승진체계 때문에 ‘교장이나 교감을 견제할 수 없어 합리적인 학교운영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1년 2월에는 교육공무원법을 바꿔 교장 임기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교장의 임기를 4년으로 제한하되, 한 차례에 한해서만 중임할 수 있도록 했다. 또 1995년 나온 이른바 ‘5·31 교육개혁’에 따라 학교장초빙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교장이 정년을 앞두고 있거나 임기가 끝난 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가 교장 초빙을 희망하면 교장자격증이 있는 교사를 상대로 공모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교장의 위상과 역할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교장임기제는 정년 등의 이유가 없는 한 거의 대부분의 교장들이 연임을 하면서 빛을 발했다. 학교장초빙제 역시 대상자를 일반교장과 동일한 자격조건을 요구하는데다, 인사권이 축소된 시·도 교육감과 임용 차례를 기다리던 교장 자격자의 반발로 확대 시행되지 못했다.

‘수석교사제’와 ‘교장선출보직제’

이에 따라 교직사회 내부에서 현행 교원승진제도 개혁을 위한 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한국교총에서는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교사들 가운데 일정한 교사들을 우대해주는 수석교사제 신설을 제안한다. 교사를 관리직(교장·교감)으로 승진할 사람과 교수직(수석교사)을 유지할 사람으로 분화해 승진적체를 해소하자는 주장이다.

반면 전교조는 2년여 전부터 교장제도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하며, ‘교장선출보직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교장 자격제도를 없애고, 새로운 교장을 임용할 때 교사회의에서 복수추천을 한 뒤 대상자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직사회를 황폐화하는 소모적 승진경쟁을 막고, 교장 중심의 관료주의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전교조의 주장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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