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4월24일 제456호 

국제 인권단체들은 시큰둥

‘남북한 인권외교의 완패’로 끝난 유엔인권위 북한 결의안,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까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59차 유엔 인권위는 지난 4월16일 찬성 28개국, 반대 10개국, 기권 14개국, 불참 1개국으로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일부 국내외 인권단체 차원에서 논의되던 북한 인권문제가 유엔의 공식의제로 포함되게 됐다.


사진/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한 제59회 유엔 인권위. 이번 결의안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국내외 북한 인권단체가 주도했다.(이성훈)


왜 북한인가?

북한 이외에도 이번 회기에서는 모두 10여개국에 대한 인권결의안이 상정됐다. 그 가운데 수단, 짐바브웨 및 체첸 결의안은 상정됐지만 표결에서 부결됐고, 투르크메니스탄, 쿠바, 벨로루시, 버마(미얀마), 부룬디 등 국가에 관한 인권결의안이 채택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올해 처음 등장한 세 나라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그리고 벨라루스 결의안은 모두 다수결에 의해 채택됐다.

나라별 결의안은 한 국가 내의 인권침해가 매우 심각해 국제적 관심과 협력이 요청되는 경우 유엔 인권위에서 채택한다. 이 제도는 인권의 보편성, 즉 인권이 더 이상 주권국가의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관심사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유엔은 이 제도를 통해 1979년 아르헨티나를 필두로 이후 칠레 등 여러 남미 군사정권이 자행한 대규모 인권침해를 비판하고 압력을 가해왔다.

절대다수의 인권단체는 나라별 결의안을 국제사회의 압력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유용한 제도로 환영해왔다. 반대로 상당수 국가들은 이를 정치적으로 부담스럽게 여겨왔고 해당 국가들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명단에서 빠져나가고자 노력해왔다.

이 과정에서 인권 특별보고관 등 유엔의 인권기구와 인권단체는 인권 피해자를 대신한 검사의 역할을 하고 해당 국가는 피고의 입장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피고가 동시에 변호인과 배심원의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이 제도의 정당성과 효율성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올해는 나라별 인권결의안과 관련해 배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적지 않은 논란과 시비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네바에 근거한 대다수 국제 인권단체들은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즉각적 환영보다는 다소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회의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퀘이커교 유엔대표부의 레이첼 브렛 교수는 북한 결의안 채택에 대해 “원칙의 측면에서 반대하지 않지만 최근 이라크 사태와 이후의 정세를 고려할 때 이번 북한 결의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다소 걱정된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위에 10년 넘게 참석한 한 캐나다 인권 전문가는 “왜 올해 북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북한, 투르크메니스탄과 벨라루스가 이번에 새로운 국가로 선정된 것은 부시 정권의 이라크 사태 이후 외교정책 방향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정황을 의식한 듯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앰네스티 국제사무국은 예상과 달리 북한 결의안에 대한 성명서를 즉시 발표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한국담당관 라지브는 “공식 성명서는 결의안의 내용에 대한 검토와 북한의 반응, 그리고 한국사회 내에서의 파장 등을 고려하면서 준비 중이다”고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별로 열기 없어 보이는 반응의 원인은 이번 북한 결의안의 내용과 이를 추진한 인권단체들의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다. 먼저 내용의 경우 미국에 의한 경제봉쇄 정책이 북한의 발전권과 식량권 등 경제적 권리에 미치는 영향, 미국과 일본 등 에너지와 식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문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모든 것을 북한 정부의 문제로만 몰아가는 것은 균형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사진/ “유엔 인권위의 표결 결과는 북한 인권외교의 완패다.” 지난해 8월 중국 외교부 앞에서 시위하는 탈북자들.(연합)


중국 자극 안 하려는 정치적 고려도

이번 결의안은 국내에서는 북한인권시민연합, 해외에서는 영국에 본부를 둔 세계기독교인연대와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가 주도했다. 보통의 경우 국제 인권단체의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연대틀을 구성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시도 없이 일부 국가, 특히 미국과 영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추진됐다. 결의안 전에 개최된 북한 인권공청회는 국제 인권단체는 거의 없이 유럽연합, 한국 및 유엔의 북한 인권 관계자들이 주로 참석한 상태에서 열렸다.

이번 결의안의 내용에 깊이 관여한 미국의 인권 전문가 데이비드 호크는 “올해는 인권위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와 직접 관련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의안 내용에 탈북자 문제의 당사자인 중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결의안 통과를 위해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다”며 정치적 고려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제네바의 한 북한 전문가는 이번 표결 결과를 북한 인권 외교의 완패로 해석한다. 북한의 한 외교관은 결의안 통과 전 “유럽연합 대표자를 만나 결의안에 대해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미국과 유럽연합의 음모에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며 결의안에 대해 협상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즉 결의안의 내용을 협상을 통해 바꾸기보다는 결의안 자체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외교에 익숙한 제네바의 한 외교관은 “북핵 위기와 경제난으로 체제생존 문제에 직면한 북한 정부는 최근 재개하기로 합의된 북핵 협상의 결과에 따라 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정할 것이다”고 예상했다. 즉 인권은 체제의 생존에 비해 부차적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이번 결의안이 어떻게 북한의 인권개선에 실질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제네바의 북한 외교관은 “구체적 대응조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곧 행동을 통해 보여줄 것이다”고만 말했다. 일부에서는 올해 11월로 예정된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보고서와 내년 1월의 아동권리조약에 관한 정기보고서 심의를 일방적으로 연기 또는 거부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한국 정부의 모호한 침묵

이에 대해 이번 결의안을 주도한 유럽연합의 한 외교관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며 “그동안의 관례를 볼 때, 겉으로는 부정하지만 결의안에서 지적한 내용에 대해 나름대로 개선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2001년 5월 페르손 스웨덴 총리를 단장으로 한 유럽연합 대표단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과 인권에 관한 대화를 시작했지만 실질적 개선이 거의 없었다”며 간접적으로 이번 결의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알려진 대로 아무런 공개적 입장표명 없이 표결에 불참했다. 올해 초 유럽연합이 북한 인권결의안 추진의사를 알려왔을 때 노무현 정부는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묵인했다.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이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라크 사태가 조기에 마무리되고 다시 북핵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제기되는 맥락에서 북한 결의안이 제출됐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한국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현실적·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의안 협의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은 ‘한국 정부의 입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다수 국가가 표결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 대표단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모호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우유부단함으로, 북한은 경직성 때문에 결의안의 내용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위원국이지만 표결에 스스로 참여를 포기했고 북한은 위원국이 아니어서 표결에 참여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 정부 모두 이번 결의안의 논의와 채택과정에서 ‘구경꾼’ 신세로 전락했다. 특히 한국 정부 대표단은 자신의 집안일에 객들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주객전도 현상을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참여정부’의 인권외교 역량의 한계와 미숙함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제네바=이성훈 전문위원 almole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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