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04월10일 제454호
‘사막의 꽃’들을 기억해다오

소설가 김남일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전쟁 이야기… 바그다드 아이들의 꿈을 잊어선 안된다


승래야,

담장 너머 하얀 목련꽃에 눈이 다 부시다. 다음 주면 아마 벚꽃놀이가 시작되겠지. 하지만 올해는 도무지 꽃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구나.

짐작하겠지만 그건 바로 전쟁 때문이란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 그러나 그건 이미 남의 전쟁이 아니게 돼버렸어. 며칠 전 국회는 결국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켰지. 그게 무슨 뜻인 줄은 알겠지? 이제 싫든 좋든 너와 나도 추악한 전쟁의 공범자가 되고 만 거야. 미안하다. 이건 아빠 세대가 너희 세대에게 두고두고 엄청난 마음의 빚을 지게 했다는 뜻이기도 해. 지난날 아빠의 아빠 세대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아빠 세대에게 두고두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든 것처럼.

‘국익’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단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지. 참전함으로써 얻는 게 많을 거라고. 그래, 그럴지도 몰라. 북한 핵문제를 푸는 데 미국더러 좀 잘 봐달라고 할 수도 있을 테고, 이라크의 전후 복구사업에서 당당히 한몫을 차지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빠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단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참전한다는 말, 믿을 수가 없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이 ‘악의 축’ 북한을 그냥 놔둘 거라고 믿을 수도 없지만, 정작 미국이 북한을 위협할 때 무슨 말로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는지…. 봐라, 너희는 이미 평화 대신 전쟁을 선택한 나라가 아니냐? 그런 비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답변이 무엇일까 게다가 폐허가 된 이라크에서 돈 챙기기에 눈이 벌게진 우리의 모습이라니….

국가의 이익이니 어쩔 수 없다고? 천만에! 그런 게 국익이라는 말, 아빠는 믿고 싶지 않단다. 남의 나라 침략에 동조해서 얻는 이익을 용납한다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과거의 역사는 어찌 해석해야 할까?

승래야,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텔레비전은 생방송으로 현지 상황을 보여주었지.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미사일, 굉음과 함께 치솟는 화염, 그리고 시시각각 사막을 가로지르며 이라크 영내로 깊숙이 진격하는 미·영 연합군의 탱크들…. 우리나라 한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했지. “아군은 개전 이틀 만에 벌써 움카스르를 점령하고 적군의 요충지 바스라를 향해….”

아빠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도대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이란 말이냐? 그뿐인가, 3차원 컴퓨터 그래픽까지 동원해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황을 보여주지를 않나? 그것도 모자라 미국과 영국이 이번 전쟁에서 사용할 가공할 위력의 첨단무기들을 또 얼마나 열심히 소개했니?

미국과 영국은 이번 전쟁에 막대한 비용을 들였어. 언뜻 그게 상당한 손해인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그들이 장악한 세상은 허술하지 않단다.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은 쌓인 재고품들을 순식간에 팔아치웠고, 이제는 각국에서 몰려드는 주문을 못 맞춰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미·영 연합군이 점령한 지역의 막대한 석유는 누구 몫이 될까?

누가 후세인을 쫓아내야 하겠니?

너도 알다시피 이라크는 사막의 나라야. 그러나 사막에도 꽃은 피어난단다. 이라크 어린이들이 바로 꽃이겠지. 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듯 너와 내가 〈CNN〉 화면을 보고 있을 때 사막에서는 그 꽃들이 무수히 지고 있었어.

“〈CNN〉의 전쟁 중계가 게임보다 재미있어요.”

너보다 어린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는 벌써부터 이런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있다지 때를 놓칠 새라 수입업자들은 이라크가 배경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C&C 제너럴스’에 이어 북한을 배경으로 한 게임을 들여올 날만 노리고 있고….

그러나 승래야, 이건 결코 컴퓨터 게임이 아니란다.

물론 ‘사악한’ 후세인을 없애야만 지구에 평화가 온다는 부시 대통령의 말을 아빠도 믿고 싶단다. 후세인이 자기 나라 국민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익히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를 쫓아내는 건 이라크 사람들의 몫이어야 한단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곁에서 도와줄 수 있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란 자기들 힘으로 얻어내는 것이기 때문이야. 미국은 국제사회가 그런 압박을 가하는 기회조차 제멋대로 없애버렸어. 인류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를 이라크가 갖고 있다면서 말이야. 그런데 지구를 몇백번도 더 파괴할 엄청난 양의 대량살상무기를 지니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현실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이라크 출신의 한 작가가 이렇게 말했단다.

“(서방 세계는) 이라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들과 같은 존엄성을 갖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후세인 정권에 봉사하는 한 덩어리의 ‘종교집단’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이라크 희생자들은 얼굴도 이름도 없는 민간인 아니면 공화국 수비대, 또는 민병대로 보일 뿐이며 전과를 계산하기 위한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는 없다.”

슬프게도, 그런 말이 부시 대통령의 귀에 들어갈 리는 없지.

이 글을 쓰는 지금, 미군이 바그다드 중심부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는 속보가 들어오고 있어. 이라크군은 거의 저항다운 저항 한번 못하고 있다지. 이런 상태라면 바그다드 하늘에도 곧 성조기가 휘날리겠지. ‘사악한’ 후세인의 추종세력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항복하고,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해방자’ 미군을 환영하는 장면이 나올지 몰라. 부시 대통령은 감격에 벅차 눈시울마저 뜨거워질 미국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아버지 부시에 이어 또 한명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며 재선에 성공할 것이다.

이런 그림…. 이것으로 전쟁은 끝일까? 하지만 아빠의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과정에서 애꿎게 희생당한 아이들과 엄마들, 부상당한 채 울부짖는 가족들, 그리고 형체도 없이 무너진 집과 건물들…. 1천년을 버텨온 역사적 유물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 그와 더불어 머나먼 땅에 사는 우리의 기억도 사라지지. 아라비안 나이트의 도시 바그다드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 티그리스 강변에서 싹텄다는 인류 최고 문명에 대한 기억…. 그래, 아마 너희 아이 세대에 가면 융단을 타고 하늘을 날던 신밧드의 모험을 더 이상 사라진 그 도시와 연결시키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서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할까?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봐라, 결국 강자가 이기는 거야. 그러니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해.”

그러나 이번 전쟁은 후세인이 죽어도, 부시 대통령이 “정의의 군대가 사악한 악의 무리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내쫓았다”고 선언해도 미국이 이긴 전쟁이 아니야. 결코 그럴 수는 없단다.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강자만이 살아남고 무기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논리가 아니야. 너는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추악한 전쟁을 치러 20세기를 모독했듯, 네가 살아갈 21세기도 추악하기 짝이 없는 전쟁으로 모독했다는 사실을!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고?

승래야, 미안하게도 그건 아빠가 아니라 바로 네 몫이란다. 탱크와 미사일과 스텔스 전폭기로 얻어낸 승리는 결코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이미 너와 네 아이들이 짊어져야 할 빚으로 주어졌기 때문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공포에 떨며 엄마 품을 떠나지 못할 바그다드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먼 뒷날 그 아이들이 행여 살아남아 갖게 될 추억이 오직 미사일과 포탄 소리라면…. 부탁하건대, 아들아, 너는 결코 바그다드의 그 아이들이 진정으로 갖고 싶어했을 꿈을 잊지 말아다오.

김남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