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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북한인가 미국의 ‘공격 의사 없음’ 표명에도 불안감 고조… 이라크와 다른 접근법 정말 안심할 수 있나
3월26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선 남한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10기 6차 회의가 열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 때부터 지난해 5차 회의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러나 이날 김 위원장은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2월12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연회에 참석한 이후 지금껏 공식석상에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뿐이 아니다. 북한의 사실상 2인자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총정치국장과 김영춘 군 총참모장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북한이 내세우는 ‘선군’(先軍)정치의 핵심인물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유린하고 있는 지금,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는 북폭 시나리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미국이 이라크를 패배시키면 그 다음엔 이란, 시리아, 북한을 ‘손봐주겠다’(deal with)”. 미 행정부의 대표적 매파 존 볼턴 국무차관이 이스라엘 관리들한테 한 말이라며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가 지난 2월 보도한 내용이다. 이보다 직접적인 것도 있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뉴욕타임스> 2월28일치에 실린 칼럼에서 미 국방부 관리의 말을 따서 국방부가 최근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군사공격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외과수술적 미사일 공격부터 집중폭격, 심지어 전술 핵무기를 쓰는 방안까지 모두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매파들은 미국이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도 최후 수단으로 북한을 공격할 수 있으며 (그렇다 해도) 김정일이 보복적 자살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심장이 멎을 일이다. 북한 폭격은 제2의 한국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조지 부시 대통령 등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밝혀왔다. 노무현 대통령도 “전쟁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3월2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미국의 북한 공격설을 일축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책임 있는 당국자가 여러 번 나를 만나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며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구난방식 추측으로 북한 핵위기에 대한 평가분석을 해선 안 되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이야기를 존중해야 한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도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외교적 방법을 통해 풀어가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그 부분은 국민이 안심해도 좋다”(3월19일 문화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북한 폭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메시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부시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모든 방안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말을 한다. 온건파로 불리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선택 가능한 옵션을 완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2월25일 노 대통령 취임식 참석 뒤 연 기자회견에서)라고 말했다. ‘모든 방안’ 또는 ‘선택 가능한 옵션’에 ‘군사적 대응’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고립압살책동’이라고 비난해온 북한의 대미 위기의식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의 이런 위기의식은 지난해 10월, 2차 핵위기가 불거진 이후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는 미국의 대북 강경책, 이라크 침공, 최근의 한-미 합동군사연습 따위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이 우리나라(북)를 반테러전쟁의 다음 번 공격목표로 내정하고 있다”(2월13일 외무성 대변인), “(한-미 합동군사연습은) 북침 전쟁연습”(3월4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 “미국이 남조선에서 벌이는 독수리연습과 연합전시증원(RSOI)연습은 조선반도의 핵문제를 군사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침략적이고 모험적인 군사행동의 계단식 확대다”(3월18일 관영 <조선중앙통신>). 관영매체에 드러난 북한의 상황인식은 바로 ‘전쟁 전야’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엔 평양 시내에서 방공연습도 있었다(3월22일 중국 <신화통신>).
북한은 미국의 주요 핵 선제공격대상
정말 ‘이라크 다음엔 북한’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미국의 세계전략과 지역전략의 관계, 북한과 이라크의 차이, 중동 정세와 동북아 정세의 차이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외교안보 정책에서 일방주의적 접근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월29일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지목했다. 지난해 국가안보 보고서에선 “정당방위를 위한 무력 선제사용 불배제” 입장을 밝혔다. 또 미국 국방부가 지난해 의회에 비밀리에 제출한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는 북한·중국·러시아·이라크·이란·시리아·리비아 등 7개국을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로 꼽고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하는 긴급대비책을 수립해놓고 있음을 밝혔다. 요컨대 논리상 북한은 유사시 미국의 주요 핵 선제공격대상인 것이다. 1994년 10월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3조1항엔 “미합중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하지도 않는다는 공식담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미국한테서 체제안전보장을 받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여온 북한은 이 조항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해왔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를 단칼에 무시한 셈이다. 그러니 부시 행정부 등장 뒤 북한의 불만과 불안감이 오죽할까. 그러나 정부 핵심 관계자는 “악의 축 규정이나 핵태세 검토보고서 내용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바로 추론하는 것은 무리다. 세계전략과 지역 차원의 접근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는 지적은 한국과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줄기차게 제기해온 화두다.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 대사는 3월17일 이렇게 설명했다. “이라크 무장해제 추진과정은 10년 넘게 진행돼온 반면 북한 핵문제의 다국적 해결방식 추진은 방금 시작된 것이다. 북한에 대한 다국적 외교노력은 갓 시작된 것이나 진배없어 북한 문제는 시간이 있다.”
북한이 미국에게 매력 없는 나라일지라도
반기문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은 3월2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같은 맥락에서 좀더 강하게 말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이란과도 전쟁을 벌였으며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재 이라크 주변국 가운데 이라크를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유엔 안보리 결의도 없었고,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등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북한은 이라크와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고, 지난해 멕시코 로스카보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한국과 협의 없이 일방적 행동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좀더 들어가보자. 미국이 왜 전 세계적인 반대 여론에도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는지를 살펴보면, 미국의 북한 공격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미국은 왜 이라크를 침공했나 해답은 세 단어로 요약된다. 제국주의와 이스라엘, 그리고 석유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이런 자문자답은 갖은 논의의 표준적 해석에 가깝다. 요컨대 미국의 대중동전략은 ‘현상 변화’다. 이를 위해 세계 2위 원유자원 보유국이면서 철두철미 반미적인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데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동 원유 자원에 대한 확실한 통제력의 행사는 중동의 분할통치는 물론 21세기 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르는 유럽연합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다. “미국은 군사패권을 사용해 화폐 패권을 보호하려 한다. 미국의 전략은 ‘유럽 교란, 아시아 안정’이다”라는 리둔추 중국조선반도사연구회 대표의 지적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능하다. 이라크만을 놓고 보자면, 미국의 실제 관심사는 대량살상무기 비확산보다는 석유자원 확보와 친미정권 수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엔 ‘석유’도 ‘이스라엘’도 없다. 확실히 이라크와는 달리 ‘매력 없는 나라’인 셈이다. 더욱이 미국은 동북아에서 일본·한국과 확고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마음을 바꿔먹고’ 확실한 미국편이 될 가능성은 적어도 중단기적으론 없다. 역내 국가 간 유럽과 달리 지역협력안보틀도 없다. 그러니 지금껏 동북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의 이 지역 전략이 ‘현상 유지’라는 지적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북한 붕괴’ 또는 한반도 통일은 미국에 그리 매력적 변화가 아니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주일미군과 함께 주한미군 존재가 필수적인데, 이런 변화는 주한미군의 존재 근거를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MD체제 추진 위해 북한 위협은 필수적
지금 동북아에서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는 ‘잠재적으로 팽창주의적’인 중국의 견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는 “중국의 지역패권국화는 미국이 좌시할 수 없는 사활적 국익과 관련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이를 위해 미-일, 한-미 동맹을 내실화하고 강화하며, 미사일방어(MD)체제를 매개로 ‘(3각)안보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한다. 반면 ‘불안정하고 위험한’ 북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미국으로선 핵과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 문제가 중요하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의 발언은 시사적이다. “사담 후세인이 걸프전에서 미군의 피를 흘리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무기는 탄도미사일이었다.” 그러니 이런 탄도미사일을 이른바 중동의 불량국가들에 제공하는 국가가 북한이라면, 미국으로선 이를 저지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더욱이 주한·주일 미군을 대량파괴무기로 위협·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을 무력화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한편 미국은 MD체제 추진 구실의 하나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MD체제의 진짜 대상이 중국이라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컨대 미국이 중국과 정면충돌하지 않으면서 MD체제를 추진하기 위해선 적당한 수준의 ‘북한발 위협’이 필요불가결하다. 이 점이 최근의 핵위기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 지점이다. 어쨌든 미국이 이라크처럼 북한을 공격하는 일은 남한의 존재와 북-중 관계를 고려할 때 선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남한의 국민여론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크게 엇갈리지만, ‘또 다른 한국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는 데는 일치한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이 곧바로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폭’을 심각하게 고려하던 1994년 5월19일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이 군통수권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한테 보고한 내용은 이렇다. “최초 3개월간 미군 사상자 5만2천명, 한국군 사상자 49만명은 물론이고, 여기에 더해 엄청난 수의 북한군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했고, 군사비는 61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고했다.”(<두개의 한국>, 돈 오버도퍼 지음, 길산 펴냄) 더욱이 북한과 중국이 1961년 맺은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 2조는 “서명국은 상대국이 특정 국가 또는 동맹의 공격을 받을 경우 즉각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대항한다”라고 명기해놓았다. 논리상 미국의 북폭은 한국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개입’을 불러오게 돼 있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해 ‘외과수술적 폭격’을 감행할 경우 중국이 이 조약에 따라 자동개입할지는 불투명하다. 이렇게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 “북-미 간 갈등은 비등점 근처까지 갈 것이다. 그러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직전 극적 타협을 할 것이다.” 1994년 1차 핵위기 대응책 마련에 관여한 핵심 관계자의 전망엔 ‘미국의 북폭’이 들어 있지 않다.
미국의 북폭 가능성 배제할 수 없는 까닭
그러나 역사는 현실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갈 때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북폭’ 또는 북한 공격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의 북폭 가능성이 매우 낮더라도 핵위기의 지속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다. 북-미 간 ‘겁쟁이 게임’이 격화하면서 남북한 경제와 7천만 겨레의 삶은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핵위기는 개방경제인 한국경제를 흔들며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북한도 ‘자력갱생과 내부예비의 총동원’을 강조하며 움츠러들고 있다. 미국의 당국자들은 3월2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무장관회담 과정에서 “북한과 이라크는 상황과 조건이 다르고 다른 접근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며 ‘군사적 대응’을 배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위기감을 낮추는 변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미 양쪽의 접근법엔 아직 절충점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다자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대화는 하되 협상은 없다’며 북한에 선 핵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일관되게 양자협상에 의한 포괄적 일괄타결을 촉구하고 있다. 남한으로선 절벽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제훈 기자/ 한겨레 남북관계부 noma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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