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3월27일 제452호 

미국은 결코 이기지 못한다

스스로 민주주의 정통성 훼손… 군사적 승리 거두어도 장기적으로는 국제사회 왕따 될 것

미국은 이라크 전쟁 개전의 대의명분으로 반테러전쟁과 대량살상무기 확산의 규제, 이라크의 민주화를 제시했으나 대의명분과 실질적인 개전 의도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넓은 강물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실제적 원인은 무엇인가

무기개발 위해 적을 상정하다


사진/ 프랑스 파리의 반전시위. 미국은 국제 비정부기구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지는 반전평화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GAMMA)


먼저 국제체제 차원의 설명을 살펴보자. 미국은 경제적 패권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유럽연합의 등장으로 현저하게 흔들리는 상황을 상쇄하기 위해 군사적 분야에서 독보적인 패권을 더욱 공고화하고 영속화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이러한 노력은 미사일방어망(MD)의 추진과 유라시아 대륙에서 미군 주둔의 확산이라는 두 가지 전략으로 표면화되었다.

첫째, 미국은 핵과 탄도탄미사일 기술력 그리고 군사비 지출의 압도적 우위를 기반으로 MD체제를 구축하여 패권 연장을 추구해왔고, 이라크와 북한 그리고 시리아와 같은 이른바 ‘악의 축’ 국가들은 MD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적국으로 상정되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으로 먼저 적이 있어서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적을 이후에 상정한 것으로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 공고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적 방안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둘째,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반테러리즘 전쟁과 테러리즘의 예방이라는 명분아래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적 주둔을 확대해왔는데, 아프가니스탄과 코카서스 지역의 그루지야,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인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그루지야는 카스피해의 석유 및 가스 자원에 접근하기 위한 요충지인데 미국은 이러한 지역에 주둔하게 됨으로써 이 지역 석유자원 관리에서 미국의 국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코카서스 지역, 카스피해의 자원,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원래 옛 소련의 영토로 미국은 자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투영시켜본 역사가 없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즉, 하나의 대륙섬 국가로서 해양세력인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금껏 철저하게 소외돼온 지역에 미군을 주둔시켜 처녀지를 개척한 지정전략적 대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따라서 미국의 대유라시아 전략이 낳은 하나의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 깊숙이 존재하는 미군의 존재는 미국에게는 대유라시아 지정전략의 획기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기존의 봉쇄정책이 직접적인 개입전략으로 성격전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미 가시화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중동부 유럽 국가로의 확대는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 동맹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으로 확산돼가는 것이라면, 이라크 전쟁에서의 승리는 아라비아해를 봉쇄해오던 미국의 영향력이 유라시아 대륙의 남쪽에서 하나의 확고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무시하다


사진/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한 프랑스, 러시아, 독일, 중국(맨 왼쪽부터)의 외무장관들.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GAMMA)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 석유자원에 대한 직접적 개입인 동시에 카스피해 자원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공고화하는 측면도 있다. 세계 각국에게 카스피해의 자원은 중동지역에 대한 에너지의 절대적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발생한 이라크 전쟁은 전쟁 명분의 빈곤과 함께 비인간적 전쟁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비판에 노출돼 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반테러리즘 전쟁, 그리고 이라크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을 제시했으나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양산하고 있다는 물증도, 알카에다와 이라크의 연계에 대한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으며 타국의 민주화를 위해 그 나라를 침공한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억지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무고한 이라크 시민과 희생될 미군과 영국군의 가족들 그리고 국제경제의 심각한 불안정이 불러올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타격을 생각해보면 이번 전쟁은 미국 문명의 비인간적인 광기이며 ‘제국의 폭거’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민주주의의 결핍’을 넘어 반민주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은 지구촌 대다수 국가가 참여하는 유엔의 사전 승인 없이 전쟁을 강행했으며, 이는 최소한의 절차상의 민주주의조차 무시한 민주주의의 결핍을 드러냈다. 미국은 유엔의 승인이란 최소한의 절차적 과정도 생략했다. 이런 미국의 행동은 군사력에 대한 과신과 ‘내가 곧 정의’란 독선이 빚은 일방주의의 극단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난해 10월 노르웨이 크리스틴 크론 국방장관 등 유럽 대표단은 미국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 공격을 감행해 NATO의 정통성을 훼손할 경우, NATO는 미국에 협력하지 않아야 한다고 못박았을 정도로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셌다.

국제법상 무력의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물론 무력 사용이 가능한 두 가지 예외사항을 고려하더라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다. 무력 사용이 가능한 예외적 사항은 일국이 자기 방어를 위한 경우와 유엔헌장 제7조에 의해 유엔 안보리가 무력 사용을 승인한 경우에 한정된다. 이 경우라도 무력의 사용은 모든 평화적 수단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가능하며, 자기 방어라 하더라도 적의 공격이 실제적이거나 임박했을 때로 한정짓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두 가지 사항에 모두 해당되기 어렵다.

패권의 정당성이 뿌리째 흔들릴 것

게다가 미국은 국제 비정부기구(NGO)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지는 반전평화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국제 NGO 중심의 국제사회운동은 세계적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현으로, 미국이 이를 묵과했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무시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장기적으로 ‘세계 민주주의 수호자’임을 자임해온 미국의 도덕적 정당성의 뿌리를 흔들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이라크 전쟁이 국제체제와 국제사회에 하나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촉발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게 해준다.

물론 압도적으로 군사력이 우세한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지정전략적 실익과 석유자원 관리에서 국익을 관철시키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타격을 받을 것이다. 패권의 행사는 군사력에 기반한 강제력뿐만 아니라 패권국의 정치·경제·사회 및 문화적 우위에 대한 나머지 국가들의 자발적 ‘동의’와 ‘동화’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 각국의 동화현상은 미국의 패권 행사에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미국의 민주주의 결핍과 반민주적인 일방주의 외교는 미국 스스로의 민주주의 정통성을 훼손시켰으며 미국 패권에 대한 나머지 국가들의 자발적 동의를 절대적으로 약화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장기적 대차대조표는 소탐대실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NGO 중심의 국제사회운동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구촌 전역에서 강도높게 전개되고 있는 국제사회운동의 활성화는 미국 군사적 패권의 일방적 행사를 견제하는 가장 민주적 영역이다. 이라크 전쟁은 이런 반전·반패권 성향의 민주적인 국제사회운동이 활성화되고 공고화될 전환기적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뒤 예상되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대한 동의의 약화와 반전·평화 세계사회운동의 활성화는 권력과 힘 중심의 기존의 국제관계가 서서히 장기변동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하나의 서곡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진시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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