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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에 빠진 단기전 기상악화와 항전의지로 인해 속전속결 어려워져… 개전 초기 조심스러운 공습은 모래폭풍 때문
3월20일 새벽 5시35분(한국시각 오전 11시35분) 바그다드에 공습 사이렌이 울렸다. 크루즈 미사일이 여명이 터오던 바그다드 상공에 화려한 불꽃을 안겨주었다. 이라크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충격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고편과 다른 형태의 충격과 공포였다. 미국은 ‘이라크의 자유’ 작전을 개시하면서 이라크인들과 병사들에게 충격과 공포가 엄습하고 이내 투항이 이어져 미군 진입을 이라크인들이 더욱 환영하리라 기대했다. 전쟁도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모든 것이 뒤틀리고 있다. 오히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것은 이라크가 아니라 미·영 연합군으로 보인다. 때문에 향후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헬기의 이착륙도 불가능한…
크루즈 미사일이 미국식 ‘이라크의 자유’의 염원을 담고 바그다드에 발사된 첫날, 대규모 공습으로 이어질 것이라던 애초 예상을 뛰어넘어 의표를 찌른 부시의 히든 카드였다고 극찬한 언론도 있었다. 그러나 속사정이 있었다. 개전일 직전 요르단과 쿠웨이트 접경지역에 불어닥친 강한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3월16일 이후 요르단의 동부사막 지역도 강한 모래바람으로 시계가 고작 10여m밖에 되지 못했다. 요르단 주둔 미군들은 개전을 기다리며 진격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밤에 미군의 장갑차, 군장비, 병력이동이 평소와 달랐다. 이들에겐 대규모 지상전의 길을 열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즉, ‘섬’이라고 불리는 바그다드 심장부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 이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악천후를 만나서 특수부대 진입에 반드시 필요한 헬기 이착륙이 불가능했다. 작전은 그래서 바뀐 것이었다. 크루즈 미사일은 부시가 허를 찌른 새로운 전략이 아니라 허를 찔린 부시의 궁여지책이었다는 것이 현지 반응이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곳곳에서 예상 밖의 역풍과 돌풍을 만나고 있다. M-1A2 에이브럼스 탱크와 AH-64D 아파치 롱보 헬기 등 첨단장비로 무장한 미·영군 목표는 바그다드였다. 사막을 거침없이 파죽지세로 진군해 바스라 찍고 바그다드 찍고 사담 후세인 잡고…. 이렇게 하려던 것이 사막의 모래숲에 빠져버렸다. 개전만 되면 이라크군 투항자가 속출하리라던 애초 예상도 빗나갔다. 일부 이라크 병사들이 투항하고 포로로 잡힌 것도 사실이지만 예상치를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아군 피해를 극소화하라.”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치른다고 했지만 이미 100명이 넘는 연합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헬기가 떨어지고 전투기가 추락하는 등 안전사고도 일어났다. 부시 대통령조차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가고 민간 시설물이 공습과정에 파괴되고 있다. 아랍언론은 바스라 지역에서만 최소 80여명의 민간인이 죽은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들끓는 중동의 반전의지
개전 직후 이집트에서는 반미·반전 시위가 벌어졌다. 이슬람 세계 최고 대학인 알아즈하르대 총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주 금요일 이슬람 교도들의 금요기도회가 끝나자 암만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반전시위도 들끓는 아랍여론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다급해진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조차 전쟁이 시작된 것에 유감을 표명하고, 국민의 시위 자제를 촉구했다. 암만 시내에서 접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점점 격앙돼가고 있다. “이것은 인류에 대한 전쟁 범죄다. 무고한 시민들이 처참하게 죽은 모습이 부시의 범죄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30대 후반의 아흐마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 반응이다. 암만의 인터콘티넨털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들의 업무를 지원하던 관계자의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바스라에서 미국의 공습으로 죽었다고 보도된 머리가 깨진 한 어린소년의 처참한 사진이 깔려 있다. 요르단 암만에서는 3월22일부터 반미·반전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고 민간인 희생자가 늘수록 중동이 더욱 거센 반전여론에 휩싸일 것을 보여주는 징표다. 바그다드는 이제 첫날 공습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났다. 마을 곳곳의 공터에서는 공을 차는 아이들이 늘어간다. 문을 닫았던 상점들과 시장골목도 이전만은 못하지만 활기를 되찾고 있다. 거리의 차량 소통량도 늘었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바스라 함락설이 돌던 그때도 바스라 아이들은 공터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요르단 암만에 머물고 있는 이라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터지자 서둘러 암만의 이라크 대사관을 찾던 이라크인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잦아들었다. 이제 전쟁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영군의 공습이 제한된 ‘표적’이 대상이라는 점도 바그다드 주민들의 긴장감을 덜어주었다. 사실 전쟁 이전부터 바그다드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의 공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공습 표적이 될 만한 게 전혀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바그다드 시민들의 표정은 이방인들에게 또 다른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바그다드 시가전 양상도 예상 밖의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전쟁이 터지면 몰려나오리라 생각한 난민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까지 수백명 정도의 수단과 이집트, 동남아시아 출신 피난민들이 요르단 국경에 들어왔을 뿐이다. 오히려 빠져나오는 소수의 무리들 틈새로 바그다드로 돌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가족의 안부도 궁금하고 전쟁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바그다드로 돌아가는 이들 가운데는 이라크를 공격한 적을 무찌르겠다며 참전의지를 불태우는 이라크 청년들이 눈에 띈다. 수백대 가까이 가득 채워져 있던 바그다드와 암만을 연결하는 국경택시 정류장에는 고작 30~40대 정도의 국경택시만이 폭격을 맞은 듯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 오전 발걸음이 뜸한 바그다드행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켠에 자리한 국경버스에 오르는 이라크 청년들은 바그다드로 향했다.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바그다드를 지키고 이라크를 지킬 것이다.” 언론도 동원하지 않은, 어떤 이벤트성으로 무장되지 않은 순수한 의지를 가진 이라크 청년들이었다.
기온 상승까지 겹친다
다시금 이라크 전쟁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3월24일부터 이라크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사막에서 거센 모래바람이 점점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개전 직전 맛을 보여준 모래폭풍은 헬리콥터의 비행, 지상군의 바그다드 진격 등 여러 가지 군사작전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미군 지휘부에서는 오히려 미군의 첨단장비가 모래바람을 뚫고 진격할 수 있기에 보잘것없이 무장한 이라크군보다 전술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럼에도 모래바람은 확실한 복병이 될 것이다. 모래바람은 기온 상승으로 이어진다. 기온 32℃에 시속 80km의 강풍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것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했다. 이라크에 안겨주려던 ‘충격과 공포’가 다양한 역풍을 맞아 부메랑이 돼 미·영군에게, 그리고 지구촌에 돌아오고 있다. 다시금 불어닥친 강한 모래바람은 향후 전망 예측을 어렵게 한다. 최소한 전쟁은 애초 예상한 속전속결이 아니라 중장기화될 가능성만 커진다. 이 때문에 주변 아랍국들은 들끓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묘책이 필요한 상태다. 오늘도 일찍 다가온 모래바람로 인해 뿌옇게 된 하늘이 해를 가리고 있다. 이라크인의 자유를 위한다고 미·영군은 폭격을 가하고, 그 와중에 이라크인은 고통받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암만=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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