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3월19일 제451호 

지갑 꺼내든 정부, 그러나…

경기부양을 둘러싼 논쟁 불붙어…정부가 재정적자 감수해야 하나

투자와 소비뿐 아니라 수출까지 둔화하는 등 경기하강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경기부양을 둘러싼 논쟁에 불이 붙었다. 3월 초까지만 해도 경기가 하강하더라도 ‘인위적인 단기 경기부양’에 나서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정부 안에서 높았다. 3월2일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특별소비세 인하 등 인위적 경기부양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반기 2조5천억 조기 집행


사진/ 민간소비·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수출까지 둔화되자 경기부양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손님이 뜸해진 백화점 매장. (박승화 기자)


하지만 지금은 무게중심이 완전히 옮겨졌다. 인위적 부양에 나서지 않겠다는 발언이나 단기 부양에 나서지 않겠다는 식 얘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구동성으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에 재정적자가 포함되느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정부는 내수위축에 따른 급격한 경기하강을 막기 위해 올 2분기 가운데 재정집행 규모를 애초 계획보다 2조5천억원 더 늘리기로 결정한 상태다. 상반기 재정집행 규모는 애초 전체 재정 157조2천억원의 51.6%인 81조2천억원이었으나, 이를 53%인 83조7천억원으로 증가시켰다. 1분기 재정집행 규모가 애초 계획대로 37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이보다 9조여원이 많은 46조1천억원이 2분기에 집중 투입되는 셈이다.

정부가 상반기에 앞당겨 지출하기로 한 2조5천억원은 올해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정부가 일시차입 할 수 있는 한도인 5조원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올해부터 20년간 예산에서 2조원씩을 구조조정 과정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갚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사정을 감안하면, 2조5천억원은 현 상황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대규모라는 게 기획예산처 설명이다.

이런 재정 조기집행분은 사회간접자본과 중소기업 지원 등에 집중 배정되는 데 사용된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경기진작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교부세를 앞당겨 지급하는 데도 쓰인다. 조기집행의 효과가 빠르고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공사업체에 지급하는 공사대금 선수금에 부과하는 공사이행보증금을 크게 낮춰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 조기집행만으로 급속한 경기하강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이미 재경부 안에서는 올해 재정적자를 무릅쓸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김진표 부총리는 여·야·정 정책협의회가 열린 3월13일 “경기상황의 진행 등을 고려해 적자재정 필요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재정 조기집행으로 하반기에 재정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경기상황을 봐가며 필요할 때 재정적자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게 김 부총리의 요지다.

이에 대해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은 올해 균형재정 달성에 무게를 두며 “현재로서는 추경 편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재정 조기집행으로 충분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경제부처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 부총리는 하루 뒤인 3월14일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1997년 외환위기 직전과는 경제상황이 다르다. 현 시점에서 추경예산 편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애초 정부가 세운 5%대 경제성장 전망치를 낮출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경제부처 간 이견이 불거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총리의 이런 태도변화는 정부 안에서도 분명한 노선을 정하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은행은 경기부양에 부정적


사진/ 경제부총리와 경제5단체장 간담회. (박승화 기자)


하지만 김 부총리의 해명에도, 추경예산 편성은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 성장률이 1%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한국경제연구원이나, 마이너스 1%로 곤두박질칠 것이란 음울한 시나리오를 제시한 현대경제연구원은 과감한 재정적자 감수는 물론, 금리인하까지 주문하고 있다. 반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당장은 재정의 조기집행 등 제한적 범위에서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대내외 요인의 전개과정을 예의주시하면서 상황에 따라 금리인하 정책 등으로 대처하자는 쪽이다.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은 5조~10조원 정도의 추경을 편성해 지방대 기숙사 건설, 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 지원규모 확대 등에 사용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추경 편성에는 적어도 3~4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정부예산 가운데 연 70조원 수준인 경상비를 3%(약 2조원) 절약하는 모범을 보이고, 이 재원을 중소기업 제품을 구입하고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20대 청년들을 공공부문 인턴으로 채용해 일자리를 늘려주자고 맞서고 있다.

한국은행은 아예 경기부양의 ‘부’자도 못 꺼내게 하는 태도를 보인다. 박승 한은 총재는 3월6일 상당히 ‘용감한’ 주장을 폈다. “정부는 미시적 정책으로 경제적 고통을 최소화하고, 국민은 내핍으로 어려움을 감내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다”고 밝힌 것이다. 적자재정은커녕 가만히 참고 견디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공개적 선언이다.

한은의 이런 보수적 태도는 현재의 경기하강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가능성에 따른 유가급등, 북한 핵문제 등 외생변수에 의해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데 원인이 있는 만큼, 금융·통화 정책을 통한 부양책은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오히려 긍정적 효과보다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가격상승 등을 부추길 수 있는 부작용이 더 염려된다는 것이다. 2002년 말 가계빚은 국내총생산의 75%인 439조원으로 가구당 2915만원을 빚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3년인 현재의 가계대출 만기구조를 10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대응이 선행되지 않은 채 가계빚만 더 늘어나면 엄청난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한은은 중장기 재정의 건전성 차원에서도 재정 조기집행을 넘어서는 방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기업 투자 활성화도 독려

재정 조기집행 이외에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11월 전년 동기 대비 4.8%, 12월 1.8% 등 미미하게나마 늘어오다가 올 1월 마이너스 7.7%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와 이라크 사태 등으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이 높지 않던 지난해에도 기업들의 투자는 그리 늘지 않은 사정을 감안하면, 투자 활성화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가 당장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먼저 완화해 기업투자를 활성화하자는 재정경제부 시도가 “지방 발전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 없이 수도권 규제완화를 풀어서는 안 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고를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정책 역시 세수만 축낼 뿐 소비로 이어져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는 매우 적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경기가 더 하강할 경우 유일한 방법은 결국 재정적자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정책집단 사이의 중론이다. 정부는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1월 고꾸라지는 경기를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상승세로 돌려놓은 것과 같은 반등효과가 2분기에 나타나줄 것을 애타게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가계빚이 지금처럼 위험수위에 있지 않았고, 부동산 가격 거품이라는 조건이 없었다. 감소하는 수출을 정부지출을 매개로 한 내수증대가 떠받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조건은 민간소비에 의지할 수 없게 돼 있다. 둔화하는 수출을 유일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소비밖에 없다는 얘기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정부 지출이 부작용을 낳지 않으면서 민간소비를 부추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번에 대규모 이전지출을 하고, 이것이 즉각적으로 소비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준상 기자/ 한겨레 경제부 s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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