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3월06일 제449호 

사장님, 너무 힘세질까 무서워…

KT·하나로 등 소유· 경영 분리기업들 “최고경영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주요 화두로 등장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의 효율성과 기업가치에 큰 영향을 끼친다. KT 등 ‘민영화된 공기업’의 소유지배구조는 민영화 과정에서 특정 재벌이 지배주주로 등장하느냐 여부에 주로 맞춰져 있었다. 민영화 ‘이후’ 주인 없는 기업의 전문경영인이 경영권을 독점하거나 지배력을 확대하는 부작용은 민영화 논의에서 아예 배제돼왔다.

‘회장직 신설 구상’이 의미하는 것


사진/ 새 정부는 민영화된 기업 경영진에 대한 견제장치로 공익이사 도입을 검토 중이다. 민영 KT 출범 사진(위). 하나로통신 본사(아래).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20일 경제간담회에서 “민영화한 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CEO)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며 포스코와 KT 등을 직접 언급했다. 2월14일 전경련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도 “민영화된 기업의 지배구조가 민영화 취지에 맞게 설계돼 있는지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강하게 비판한 데는 재벌 오너의 전횡 못지않게 민영화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행태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국 재벌의 고질병인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대주주 없는 민영화 기업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와 함께 직접 거론된 KT(사장 이용경)를 보자. 지난해 민영화된 이후 KT는 그룹경영체제 구축을 추진해왔다. 그룹화 전략에는 ‘대표이사 회장제도’를 신설해 단일한 경영체제를 갖추고, 재벌의 비서실이나 구조조정본부와 비슷한 그룹경영본부(코퍼레이트 센터)를 두는 방안이 담겨 있었다. 당시 KT쪽은 “대주주가 곧 그룹총수인 재벌과 달리 우리는 오너가 없다. 사업부문도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 통신사업 하나뿐인 통신전업그룹이다. 따라서 재벌 총수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소유와 경영 분리구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KT쪽은 최근 “회장직 신설은 더 이상 검토하고 있지 않다. 자회사 통제를 위해 설치하려고 한 그룹경영본부도 따로 두지 않을 방침이다”고 말을 바꿨다. 대표이사 사장 위에 회장직을 새로 두는 것은 옥상옥이라는 새 정부의 비판이 제기되자 그룹경영체제 추진을 일단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KT노동조합은 “얼마 전 이용경 사장과의 면담 때 ‘새 정부에서도 문제삼는 판국이고, 회장직을 신설하고 그룹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노조의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KT의 한 사외이사는 “그동안 한국통신 시절부터 사장체제로 잘해왔는데 무슨 회장 자리냐”며 혹시라도 회장직 신설 안건이 이사회에 올라오면 반대할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정보통신기업 담당 일부 애널리스트는 KT의 그룹경영체제가 나중에 다시 가시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증권쪽은 “KT가 추구하는 지배구조 구상을 볼 때 언젠가는 회장직을 신설할 가능성이 높다. 회장직은 자리 하나 더 만드는 것뿐 효율성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내다봤다. 회장직이 생기면 전임 KT 사장으로 있다가 입각한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돌아올 공산이 크다.

KT의 회장직 구상은 민영화 이후 주주가치 중시를 표방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조직이기주의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여준다. 지난 1월 KTF와 KT아이컴 합병법인의 초대사장 공모 당시 KT 내부에서 인맥에 따라 서로 다른 후보를 미는 등 갈등이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외부인사 영입은 일찌감치 제쳐놓은 채 KT 사람만 놓고 사장으로 앉히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상철·이용경 전·현직 사장과 같은 경기고-서울대 라인인 남중수 KT 재무실장이 사장에 선임됐다.

일부 경영진이 장악한 이사회

KT는 민영화 이후 주식분산을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될 수 있는 토대를 갖췄다. 하지만 민영화를 통한 ‘소유구조’ 개편만으로 건전한 ‘지배구조’가 자동적으로 정착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독립적인 이사회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새 정부는 일부 민영화된 기업에서 주주권익을 대변하는 이사회를 경영진이 사실상 장악함으로써 이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사외이사들도 최고경영자의 측근들로 구성된 탓에 형식적이고 권한도 적다고 지적했다. 특히 참여연대 등에서는 KT의 사장추천위원회가 경영진의 입장을 지나치게 많이 반영할 위험을 안고 있다며 사장추천위 폐지를 제안하고 있다. KT의 사장추천위는 전직 사장과 비상임이사 3인, 민간위원 1인(이사회 위촉)으로 구성된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변호사는 “KT 사장 선임을 이사회가 주도하지 않고 별도의 사장추천위가 하는데 사장을 뽑은 뒤 문제가 생기면 사장추천위가 책임을 지기 어렵다. 이사회에서 직접 뽑아야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KT는 투명경영 감시체제로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15명의 이사 가운데 사외이사를 종전 7명에서 9명으로 늘리고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국제기준(글로벌 스탠더드) 면에서 크게 진일보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구체적인 운영이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들의 이사 선임권 보장이란 본래 취지보다는 소액주주들의 힘을 빌려 특정 대기업의 경영권 장악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주주들이 사장과 상임이사 후보를 추천할 기회가 없고, 사장이 상임이사 추천·해임건의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도 과도한 경영권 보호장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하나로통신도 최근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하나로통신은 LG·삼성·SK 등 재벌들이 지분을 골고루 나눠갖고 있는 전문경영인체제다. 창립 때부터 사장을 맡아온 신윤식 회장은 이달로 재임기간이 끝난다. 하나로통신은 2001년 정관에 회장직을 신설했는데, 신 회장은 지난해 10월 대규모 외자유치를 위해 자신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하고 회장에 올랐다. 후임 전문경영인은 외부에서 영입하겠다는 뜻도 여러 번 밝혔다.

정부 ‘시민단체 추천위 참여방안’ 고려

그런데 도중에 외자유치는 무산됐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이사회는 신 회장의 이사 임기를 3년간 연장하는 안을 승인했다. 하나로통신이사회는 상임이사 3명, 사외이사 7명으로 구성되는데 LG·삼성·SK 등 4대 주주 파견이사에 대한 견제 명분으로 사외이사 3명을 사장이 추천하고 있다. 후임사장으로는 신 회장의 측근인 이인행 부사장이 기정사실화됐다. 최대주주인 LG쪽은 “신 회장이 외자유치 무산에 대한 책임은 전혀 안 지고 자기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힌 뒤 자신도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반면 하나로통신쪽은 “회장이 외자유치 책임까지 져야 한다면 몇번이나 회장을 갈아야 할 것 아니냐 LG쪽이 경영권을 흔들기 위해 뿌리는 흑색선전”이라고 되받았다. 외자유치를 전제로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는데 유치가 무산된 만큼 회장 재선임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한국투신증권쪽은 “신 회장의 욕심이 앞서면서 경영권 분쟁 조짐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는 일부 전문경영인의 재벌총수식 경영에 제동을 거는 방안으로 시민단체가 공익이사 또는 사장추천위원회에 참여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를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을 주주가 뽑아야 하는데도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최고경영자가 추천하는 식이라서 경영진에 대한 내부 견제기능이 취약하다는 판단에서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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