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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3.02.13(목) 제446호

[표지이야기] 덮을 것인가 파헤칠 것인가

남북문제 전문가들이 말하는 ‘현대상선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해법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시각이 천차만별이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물<론이요, 시민·사회 단체도 특검을 통해 낱낱이 파헤치자는 주장부터 덮어두자는 쪽까지 가지가지다. 무엇이 잘못인지, 어떻게 매듭을 풀어야 하는지 헷갈린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진단과 처방은 이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나름의 준거틀을 제공한다. 특히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적극 옹호해온 전문가들의 쓴소리엔 더욱 귀를 기울일만하다. 반대자들의 힐난보다 지지자들의 비판이 더욱 따가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됐나- 나중에라도 밝혔어야

송금 행위나 송금 과정의 위법성보다 국민적 동의를 소홀히 한 점을 더욱 엄중하게 지적했다. 사전에 알리기 어려웠으면 사후에라도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국민을 납득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특수한 상황에 비춰 지원이 불가피했다고 이해를 표시하는 학자들도 사후에 국민적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건영 교수(가톨릭대)는 “통치행위인지 아닌지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판단하는 게 옳다. 통치행위로 정당화하려면 당시 밝혀야 했다. 최소한 지난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상황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책임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선원 교수(연세대)도 “김대중 대통령이 통치행위라는 말을 하는 순간 스스로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해버렸다”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고려대)는 “현대의 대북 송금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결정적 변수였다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상회담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을 설득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상만 중앙대 통일연구소장도 “대결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로 보면 이해의 여지가 있지만 2억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국민 모르게 건넨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 당국 배제전략을 구사하던 당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현준 연구원(통일연구원)은 “사후에라도 국민적 동의를 구하면 좋았겠지만 당시엔 남북의 적대관계 해소를 위해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불가피론을 폈다. 그는 “투명한 추진을 요구하는 주장은 국내정치 상황을 무시한 이상론에 지나지 않으며, 사전에 (야당의) 양해를 구했을 경우 정쟁이 가속화돼 결국 남북관계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유환 교수(동국대)는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의 특수성’에 주목한다. 고 교수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대가 제공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투명하게 추진해야 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냉전적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시절에 공론화를 거쳤을 경우 대북 지원정책이 과연 현실화됐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 현금지원 정책에 반대해온 조명철 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당시 관행적으로 모든 대북접촉에서 비공개 지원을 인정했는데 지금 와서 이 사건에 대해서만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상회담과 경협확대 등 이후 펼쳐진 남북관계가 비교적 긍정적이었으므로 지금 칼로 무 베듯 옳다 그르다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조심스러운 견해를 내비쳤다.

해법은? 특검이냐 국회조사냐

김대중 대통령과 관련 당사자들이 사실을 최대한 밝혀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한결같다. 다만 이후 해법에 대해선 곧바로 특별검사에 의존하기보다 먼저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특검도입을 일단 유보했다가 북한 핵문제 해결 이후 철저하게 조사하자는 의견도 눈에 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일정한 거리를 둬온 동용승 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은 “현재로선 당사자들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는 것밖에 마땅한 해법이 없다. 국회에서 밝힐 수 있는 것은 밝히고 다음에 특검을 논의해야 한다. 곧바로 특검으로 가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검사가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는 상황이 오면 남북관계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조명철 연구원은 “관련자들이 ‘관행과 법률이 이렇고, 북한 상황이 이러한 상황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했으니 이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국민에게 충분히 얘기해야 한다. 핵문제로 상황이 좋지 않은 터에 감정으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이상만 교수는 “국회에서 의혹을 따지고 변명도 들어 국민의 객관적인 평가를 거친 뒤 의혹이 남으면 특검으로 가는 게 옳은 순서다”라고 말했다. 전현준 연구원도 “국민을 납득시키면서 남북관계를 훼손하지 말아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있지만 특검제 이외의 방법으로는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며 특검제 불가피론을 폈다.

그러나 김연철 교수는 “송금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따라서 관계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한 뒤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선에서 마무리해야 한다. 이 문제는 사법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므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선원 교수는 ‘선 북한 핵문제 해결 후 특검제 도입론’을 폈다. “지금은 송금 문제로 마냥 소모적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 송금 문제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건을 덮거나 정치적으로 해결하자는 게 아니다. 먼저 관련자가 비공개로 사건의 윤곽을 밝힌 뒤 김대중 대통령이 사과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선에서 마무리짓되 북한 핵문제 해결 이후엔 특검제를 통해 철저하게 조사하자. 송금 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 국내적으로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이 묻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문제다.”

앞으로는 어떻게? -노무현의 고민

차기 정부가 북한에 대한 비공식적 지원의 필요성에 직면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노무현 정부도 현 정권과 같은 상황에 놓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박건영 교수는 “내막을 다 속속들이 들춰내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야당 지도자들에겐 알리고 함께 토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유환 교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시행방법에 대한 합의가 어려우면 최소한 정책의 기조에 대해선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연철 교수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대북지원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가장 효과적 수단은 대북지원일 수밖에 없다. 이를 활용하려면 정치권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야당에도 북한과 관련한 중요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동시에 야당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북지원이 필수적 수단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선원 교수는 차기정부의 ‘적극적인 평화정책’을 주문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적극적으로 설득하되 눈치보지 말고 과감히 시행하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김대중 정부는 말은 화려했고 큰소리는 쳤지만 정작 실천은 뒤따르지 못했다. 이를테면 전력지원도 말은 무성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명철 연구원은 “대북문제를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초당적 협의기구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이 기구가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남북문제 관련 법률과 관행을 정비하도록 하고, 대북 관련정책 전반을 토론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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