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2월27일 제448호 

검찰은 왜 SK를 쏘았나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최태원 회장 구속 이면엔 검찰 안팎의 개혁 요구에 대한 반격의 의미도


사진/ 지난 2월21일 밤 구속이 집행되어 구치소로 가고 있는 최태원 SK(주)회장. 그의 구속을 놓고 배경에 대한 갖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2월1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빌딩. 건물 1층 로비에 심상치 않은 표정의 양복 차림 남자 30여명이 밀어닥쳤다. 엘리베이터 앞 출입통제장치 앞에 다가선 이들에게 경비원이 “누구냐”고 묻자 “서울지검 수사관이다. 문을 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비원은 “사전 약속이 돼 있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아섰고 승강이가 벌어졌다. 밀고 밀리는 3~4분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험악한 소리까지 터져나왔다. 수가 많은 검찰 수사관들은 출입통제장치를 넘어 밀고 들어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그룹 구조조정본부로 향했다.

전광석화 같은 수색 작전


사진/ 치명상을 입은 SK. 그룹의 비밀이 모두 검찰의 손아귀에 들어 갔다. (연합)


이들의 목표는 3곳. 34층 손길승 그룹 회장실과 25층 최태원 SK(주) 회장실, 33층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이었다. 이들의 행동은 민첩하고 일사불란했다.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한 수사관들은 일단 구조본 사람들을 35층 회의실로 밀어넣은 뒤 바깥쪽과 연락을 취하지 못하게 차단했다. 그리고 재무팀 사무실의 서류를 박스에 몽땅 쓸어넣기 시작했다. 개인용컴퓨터(PC)의 하드디스크도 일일이 복사했다. 이렇게 하기를 8시간. 오후 6시가 돼서야 수사관들은 SK에서 철수했다. 구조조정본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서버는 아예 통째로 들고 가버렸다. 비서 3~4명밖에 없었던 손길승 회장실과 최태원 회장실 역시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모든 서류를 압수당했다.

같은 시각 SK C&C·SK글로벌·SK증권 3군데에도 동시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SK의 부당 내부거래와 경영진의 배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그룹 전체에 전격적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이다. 검찰은 김대중 정권 들어 최순영 전 대한생명 회장을 구속시킬 때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때 재벌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지만 그룹 전반에 걸쳐 이번처럼 대규모 수색을 한 적은 없었다. 검찰은 게다가 이틀 뒤인 19일 SK가 문서를 파쇄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SK글로벌 문서보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추가로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문서가 나왔다. 최태원 회장 방에서 그룹 지배력 강화 대책을 담은 ‘콥스(SK(주)) 주식확보 방안’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확보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2002년 4월 재벌기업에 대한 출자총액한도 시행에 따라 예상되는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 약화를 막기 위해 워커힐호텔 주식을 고평가해 SK(주) 주식과 맞교환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는 또 “비상장 주식을 고평가해서 맞교환할 경우 감독기관에서 문제삼을 우려가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주식 맞교환의 위법성을 추적하고 있던 검찰로서는 회심의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사실 SK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지난 1월 참여연대 고발에 따라 수사는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압수수색이 있기 며칠 전 유승렬 전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현직 구조본 임원들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SK쪽의 관심은 ‘검찰이 최 회장을 소환할 것인가’에만 맞춰져 있었다. 압수수색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검찰에 완전히 허를 찔린 셈이다.

최태원 회장은 압수수색이 있은 4일 뒤인 21일 오전 검찰에 소환됐고, 결국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범의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모든 일이 검찰의 치밀한 준비에 의해 전광석화같이 이뤄졌다. 수십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3위 SK그룹의 총수가 불과 며칠 사이에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초라한 피의자 신분으로 철장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94년 부인 노소영씨와 함께 외화밀반출 혐의로, 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스위스 비밀계좌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사법처리되지는 않았다.

SK 비자금 장부 있을까


사진/ 최태원 회장의 구속으로 SK계열사들의 주가가 연일 하락하고 있다. 한 증권사 객장에서 SK 주가를 모니터하는 직원. (이용호 기자)


이번 사건으로 SK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일단 최 회장의 구속으로 기업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다. 더불어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다. 연일 하락하는 SK 계열사들의 주가가 잘 말해준다.

그러나 더 큰 타격은 어떤 경우에도 드러나지 말아야 할 그룹의 비밀이 모두 검찰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최 회장 방에서 발견된 지배권 확보 방안 문건에는 이번에 문제가 된 주식 맞교환 방안 외에도 SK글로벌이 해외에 위장 분산해놓은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이 담겨 있다. SK글로벌이 파리·이스탄불·모스크바·시애틀 등 현지법인을 통해 SK(주) 주식 1천만주를 분산해놓았던 것이다. 이 방안은 “해외 예치 지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번 압수수색으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룹의 비자금 장부다. 검찰은 비자금 장부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비자금 장부를 찾아냈을 경우 ‘SK 장학생’으로 불리는 정·관계의 SK 인맥은 물론 정치권과의 비밀스런 거래 내역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SK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전말과 증거는 거의 다 나와 있다.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필요 없는 사안이다”고 말해 검찰에게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란 주장을 제기했다. 대검 고위 관계자도 “과거에 재벌 기업 총수들을 여러 차례 조사했지만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그룹을 압수수색한 적은 없다. 통상적인 수사 관례와는 맞지 않는 게 사실이다”고 시인했다.

실제로 검찰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으로 현대 구조조정본부를 압수수색하면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압수수색을 했다.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주식시장이 마감된 뒤 현대 직원들의 협조를 받아가면서 압수수색을 했다. 99년 최순영 전 대한생명 회장을 구속할 때 실시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비교적 대대적으로 실시됐다. 그러나 당시 대한생명 압수수색과 최순영 전 회장 구속은 평검사들이 검찰의 미진한 재벌 수사에 대해 집단서명을 벌이며 검찰 수뇌부의 각성을 촉구한 정치검찰 파동의 와중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최태원 회장 구속을 놓고 그 배경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는 설은 검찰의 난국 돌파용 포석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력한 검찰 개혁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는데다 평검사들이 검찰개혁안을 제출하는 등 안팎으로 개혁 요구가 밀려드는 상황에서 난국 돌파용으로 재벌 총수 구속이라는 강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독립해 고위 공직자나 재벌기업의 비리를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검찰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새 정부의 의도를 피해가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임기를 보장받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김각영 검찰총장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검찰이 이번에 SK를 압수수색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쪽과 사전교감을 갖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문재인 민정수석도 사전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새 정부의 검찰 개혁 방침에 대한 검찰의 저항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재벌기업 구조조정본부를 압수수색하면 당연히 정치권 로비자료가 나올 것이고, 여기에는 상당수 여야 정치인이 포함돼 있을 것이란 추측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치권에 대한 강한 압박 수단이 된다. 이미 오래전에 알려진 사안을 가지고 최태원 회장을 배임 혐의로 구속하면서 그처럼 대대적으로 그룹을 뒤진 이유를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새 정부와 검찰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SK가 희생양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리를 잡으면 권력 장악”


사진/ 2월 19일 검찰 수사관들이 삼청동 SK연수원에서 대량의 서류들을 압수하고 있다. 그룹 전체에 대한 대규모의 압수수색은 검찰로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고위 관계자도 “개혁에 대한 검찰의 반발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시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여러 경로를 통해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검찰 개혁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최태원 회장의 구속은 재벌개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벌어지고 있는 권력기관들 사이의 파워게임에서 나온 것이란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검찰 발표대로 참여연대의 고발을 법에 따라 처리했다고만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시각일 것이다. 검찰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에 대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 비슷한 사건들에 대한 참여연대의 고소를 무혐의 처리하거나 기각해왔다.

이와 관련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인규 서울지검 형사9부장이 2월21일 언급한 미국 연방수사국(FBI) 에드거 후버 국장에 대한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미국 법무관 시절 회의에서 만난 FBI 직원에게 역대 국장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후버 국장이라고 하더라. 왜 존경하냐고 물어보니 ‘다른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장악했겠나 비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의회에 가서 비리자료를 내보이며 압력을 가했다. 중앙정보국(CIA)은 순수 해외첩보만 하고, FBI는 국내 첩보에 연방 범죄수사까지 한다. 수사권과 첩보수집권을 동시에 가진 세계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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