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2월20일 제447호 

다시 안 맞고 안 때리려면…

폭력이 상습적일 때는 구체적 증거 확보부터… 부부가 함께 상담교육받는 것도 권할 만

이경실씨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안양여성의전화에는 불과 2~3시간 만에 10여건의 상담전화가 쏟아졌다. 한결같이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라는 말로 시작하는 사연들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먼저 폭력을 당하고도 그냥 참고 사는 아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고, 다음은 여성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의외로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지금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전국 어디서나 국번없이 1366번으로 도움을 청하면 된다. 1366은 112나 119처럼 국가나 국가에서 위탁한 여성단체가 24시간 운영하는 공식적인 여성 위기 전용전화다.

폭력이 상습적일 때는 이혼이나 고소를 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사진이나 진단서 등 구체적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정희진(경희대 강사·여성학)씨는 피해여성들에게 △알려라 △찾아라 △생각하라 등의 세 가지 수칙을 주문한다. 숨기고 혼자 고민하지 말고 친정·친지·상담소·병의원을 찾아 알리고, 도움받을 곳을 찾아 적극 대처하며, 한번 사는 인생인데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주문이다.

폭력이 병적이지 않으면 남편을 설득해 여성단체들이 운영하는 상담 프로그램 교육을 받아보는 것도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

한국여성상담센터(대표이사 채규만·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가 운영하는 이른바 ‘가해자프로그램’을 최근 수료한 김경환(가명·34)씨 부부는 아내폭력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한 경우다. 이혼소송을 결심하고 2달 동안 별거할 정도로 갈등이 심했는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8주 동안 48만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나 처지가 비슷한 다른 4쌍의 부부와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집단상담을 했는데, 특히 한 부부의 사연을 다른 부부들이 듣고 비평해주는 방식이 큰 효과가 있었다. 초기에는 남자 대 여자로 편이 갈렸는데, 나중에는 사안에 따라 남자가 여자 편을, 여자가 남자 편을 들어줬다. 김씨는 “같은 남자가 나를 공격했을 때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각을 받아들이게 되고 승복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폭력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다가,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폭력의 정의는 폭력을 당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게 됐다. 최근에는 5쌍이 함께 멤버십 트레이닝(MT)도 다녀왔고, 이들은 최근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문제가 생긴 부부의 집에 한꺼번에 몰려가 밤새워 토론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부부 사이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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