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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고 싶은데… 성의를 보여봐!” 김대중-노무현 사이에 흐르는 냉기… 최악 상황 피하기 위해 “DJ 직접 해명”청와대 압박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수난’을 당했다. 전두환씨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친구 노태우씨에 의해 칼바람이 몰아치는 백담사로 유배를 갔고, 노태우씨는 YS가 내건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기치 아래 구속됐다. YS 또한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자신의 인형을 유린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배신감을 삭이느라 밤잠을 설쳐야 했다.
두 사람의 인간적 신뢰와 동질성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화기애애하던 두 사람 사이에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노 당선자 진영에서는 청와대에 대해 볼멘소리가 나오고, 청와대쪽에서도 마땅찮은 표정들이다. 이런 균열이 어디까지 번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정치적 배반’은 사적인 인간관계를 뛰어넘어, 시대적 요구에 의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는 일단 출혈을 최대한 줄이려 시도하고 있다. 특검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관련자들의 국회 증언과 김대중 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노 당선자 진영에서도 특검의 불가피성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는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청와대가 말을 잘 안 듣는다. 청와대가 열과 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청와대를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특검을 막기 위해 청와대에 다른 선택을 시도해보라는 재촉일 뿐이며, 그 악역을 유 수석이 맡았다는 것이 당선자 진영의 해석이다. 노 당선자가 최대한 특검을 막아보려 애쓰는 이유는, 우선 김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신뢰와 정책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단일화가 성사되기 전이라 지지율은 밑바닥을 맴돌았고,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조순형·신기남·천정배·김택기 의원이 어느 날 저녁 노무현 후보를 불러내 “DJ를 밟고 갈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노 후보는 “내가 정치노선이나 인생역정 모든 면에서 김 대통령을 진짜로 존경한다. 표를 더 얻기 위해 김 대통령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는 없다”고 완강하게 버텨 분위기가 숙연해졌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김 대통령도 노 당선자에게 ‘표나지 않게’ 애정을 표시해왔다는 것이 노 당선자 측근들의 얘기다. 노 당선자가 2000년 총선에서 또 떨어지고 왔을 때 김 대통령은 노 당선자를 따로 불러 “당신은 참 행복한 정치인이다. 앞으로 활동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해 노무현의 대권도전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이다. 2001년 10월 김 대통령이 노무현 당시 상임고문을 최고위원에 임명했을 때도 노무현 캠프에서는 “공정한 경선을 보장해주려는 김 대통령의 배려”라며 대단히 고무되기도 했다. 또 노 당선자로서는 특검을 통한 공개적인 수사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부담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깽판’발언의 배경
여기에 노 당선자쪽은 최근 북쪽으로부터 상당히 강도 높은 항의를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 당선자가
하지만 노 당선자의 희망과는 영 어긋나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박희태 대표권한대행이 국회 대표연설에서 특검법안 관철 의지를 밝히는 등 한나라당은 한 발짝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김 대통령도 “모든 것을 전부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도,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고압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2월17일 또는 25일 특검법안을 단독으로라도 처리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특검은 노 당선자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김 대통령에게 칼끝을 겨누게 된다.
피할 도리가 없다. 노 당선자가 대통령의 신분으로 법안을 거부하는 방안도 생각은 할 수 있으나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는 “노 당선자가 의회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런데 취임하자마자 첫 조처가 법률안 거부권이라면 정국은 바로 파탄에 빠지게 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 당선자 진영에서는 특검에 대비한 여러 실무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 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특검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특별검사의 수사 범위와 목적, 활동기간 등에 대해 우리쪽 입장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특히 과거 특검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수사상황이 미리 공개되는 폐단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수사기밀을 엄수할 수 있는 사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당선자 진영이 특검에 대해 꼭 방어적 태도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 측근은 “특검 수사를 통해 오히려 대북송금의 불가피성이 드러날 경우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과도한 정치적 공세에 오히려 염증을 느낄 것이다. 진상을 알고 싶어하는 것도 국민 여론이지만 햇볕정책의 성과를 인정하는 것도 국민 여론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김 대통령도 다시 평가받고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살얼음판
다른 측근은 “노 당선자는 살을 내주고 뼈를 베는 승부사다. 패배에 패배를 거듭했지만 마지막에는 크게 이겼다. 전투에서는 지고 전쟁에서는 이긴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특검으로 설사 곤경에 처하더라도 내년 총선 승리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당선자쪽에서는 대북송금 의혹이 불거진 이후 몇 차례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의 동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국내 여론뿐만 아니라 외부 요인도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 진행 상황에 따라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노무현 정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미국은 어떻게 나올지 여러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노 당선자와 김 대통령의 운명은 마지막까지 살얼음판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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