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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3.01.02(목) 제441호

[표지이야기] ‘화끈한’ 세 사람이 만난다면?

같은 기질의 정치인으로 알려진 노무현·김정일·부시가 만나면 오히려 일 풀릴수도

‘노무현-김정일-조지 부시’

만약 이들 세 사람이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누군가 문짝을 박차고 뛰쳐나오면서 판이 깨져버리거나 아니면 의기투합해서 난제들을 일거에 타결하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들 세 사람은 하나같이 자존심 강하고 굽히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호가 나 있다. 두둑한 배짱과 한판에 승부를 거는 대담한 승부사 기질, 문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다가 크게 양보도 하는 점 등 닮은 데가 많다. 이런 점을 들어 전문가들은 3국의 정상들이 서로 대면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만 하면 일이 의외로 술술 풀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노무현, 조정자 역할 자임

고려대 김연철 교수(아세아문제연구소)는 “북한 핵문제는 결국 포괄협상을 통한 일괄타결밖에 없다. 3국 정상의 화끈한 기질이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누가 복잡하게 얽힌 3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협상국면을 조성하느냐는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발씩 양보를 촉구하겠다”며 북한 핵포기와 경제협력, 경제제재 철회, 체제보장의 일괄타결을 외친다.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정책을 결정할 때 기술적이거나 자잘한 세부사항에 집착하지 않고 크게 판단하는 ‘통큰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참모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거시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리더십 스타일이다. 복잡한 의전절차도 싫어하고 협상도 논리보다는 직관과 통찰에 더욱 의존한다. 때문에 그의 외교 스타일은 단순명료하다. 미국 관리들도 북한문제에 대한 ‘과감한 접근’(bold approach)을 얘기한다. 일괄타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을 ‘광폭정치’나 ‘통큰정치’라고 일컫는다. 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지도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남북정상회담이나 북-일정상회담,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의 미국 파견,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 허용 등을 통해서도 그의 대담한 면모가 드러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발행하는 월간지 <조국>은 김 위원장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가식’이라고 꼽은 바 있다. 격식을 파괴하는 대담한 행보도 곧잘 선보인다. 북-일정상회담에서 납치문제를 선선히 시인한 것도 문제를 크게 풀려는 그의 기질을 보여준다.

노무현과 부시, 언어코드도 비슷

노 당선자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두 상대를 잘 설득해서 국제 외교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노 당선자가 먼저 대면할 가능성이 높은 상대는 부시 대통령이다. 두 사람의 혈액형이 모두 ‘O형’. 일단 기질적으로 통할 여지가 많다. 두 사람은 언어코드도 비슷하다. 부시 대통령은 군더더기나 미사여구 없이 요점만 직설적으로 말하는 단도직입 어법을 구사한다. 사용하는 단어도 쉽고 평범한 대중적인 언어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많은 논란을 야기했지만 의도하는 바는 더없이 뚜렷하게 전달했다. 그는 공화당 하원의원들 앞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피그미’(쪼그만 녀석), ‘밥상머리에서 버릇없이 구는 아이’라고 지칭해 말썽을 빚은 적도 있다.

직설화법 애용가라는 점에선 노 당선자도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인사청탁 배격의도를 밝히면서 “걸리면 패가망신하도록 하겠다”는 말 이외에 또 무슨 표현이 더 필요하겠는가. ‘깽판’ 같은 말을 썼다가 일부 언론으로부터 트집 잡히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의 어법이 지닌 대중적 설득력은 경선과 선거과정에서 공인됐다고 볼 수 있다.

역사가 지도자의 개인적 기질에 의해 크게 진로를 바꾼 사례는 무수하다. 북한 핵문제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긴장국면이 3국 정상들의 기질적 유사성에 의해 ‘통크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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