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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3.01.02(목) 제441호

[표지이야기] 북핵, 노무현을 시험하다

최근 북한 핵문제에 적극 중재의사 밝혀…미국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가 관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나서기 시작했다. 민족의 명운이 걸린 북한 핵문제에 직접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국내정치에서 보여준 그의 돌파력과 승부수가 국제무대에서 통할지 관심을 모은다.

노 당선자는 12월27일 군 전방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내가 검토해본 결과 (북한 핵문제를) 대화로 풀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또 이날 자신의 이름으로 성명을 내어 “북한은 최근의 핵 관련 조처들을 철회하고 관련 시설과 장비 등을 원상회복해야 한다. 최소한 사태를 더 악화할 모든 추가 조처를 취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가 직접 짐을 멜 것”

그가 침묵을 깨고 나온 것은 당선된 지 1주일 만으로 예상보다 빠른 발걸음이다.

노 당선자는 발언 3일 전만 해도 북한 핵문제를 ‘학습’하는 단계였다. 그는 12월24일 통일·외교쪽 자문교수 5명을 만나 ‘평화적 해결과 전쟁 불가’라는 기본원칙만을 밝히면서 “대안을 찾아보라”고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 시간 남짓 이어진 이 자리에서 학자들의 얘기를 경청하기만 했을 뿐 자신의 견해를 밝힌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노 당선자가 이렇듯 일찌감치 칼을 뽑아든 이유는, 북한 핵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자칫 중재자로서 역할을 할 시간과 공간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는 다급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정면돌파로 승부를 내는 노 당선자의 기질도 작용했을 법하다. 한 자문교수는 북한 핵문제에 대해 일찌감치 “노 당선자가 직접 짐을 메고 갈 것이다. 그는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예고한 바 있다.

그의 정책참모들은 노 당선자가 현재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한다. 한 참모는 “5년 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설 때만 해도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2기에 접어들어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였다. 햇볕정책은 축복 속에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부시의 강경책을 한반도에서 막아내는 데만도 힘겨운 상황이다. 노 당선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미국경제가 장기불황 국면에 접어든 점도 상황을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노 당선자 주변 생각이다. 부시 행정부가 거대한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실현해주는 방향으로 경제회생의 돌파구를 찾고 있어, 모든 평화적 해결책이 무시될지 모른다는 우려다.

그나마 노 당선자 진영이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북-미 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데도 경의선 공사는 계속돼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등 남북간 신뢰관계는 여전히 유지된다는 점이다. 또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서려는 자세를 지키는 점도 5년 전과 비교해 좋은 조건으로 꼽힌다.

이런 맥락에서 노 당선자는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높게 평가하고, 그 궤도 위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나서고 있다. 노 당선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외에도 유재건 의원 등 6명으로 특별팀을 꾸려서 청와대 임동원 특보와 임성준 외교안보수석 등과 해결방향을 조율하며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중국·일본을 통한 우회로

노 당선자는 이미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말린다는 것이다. 10월24일 평화포럼 정책토론회에서는 “북쪽이 핵사찰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양보하고, 이에 대해 국제기구와 미국·일본·남한이 대북지원을 맞교환하는 일괄 타결방식을 실현시키도록 예방외교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에는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대신 미국에는 북한과 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한다는 구상이다.

그 가운데도 미국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노 당선자의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우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야심보다는 절망적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이 노 당선자와 정책참모들의 판단이다.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만 마련되면 북한은 언제든지 달려올 준비가 돼 있으나,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강온파 사이에서 정책적 조율이 되지 않았고 그런 혼돈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핵포기 없이는 협상도 없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이는 미국을 설득할 수단이 노 당선자에게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 당선자는 먼저 러시아·중국·일본을 통한 우회로를 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12월24일 하루 동안 세 나라 대사들과 만나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밀하게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낙연 대변인은 이날 “세 나라 대사들에게 당선자가 메시지를 보냈다. 상대방이 있어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지만 덕담만 한 것은 아니다”고 말해 상당히 밀도 있는 대화가 진행됐음을 시사했다. 노 당선자쪽에서는 특히 중국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러시아는 90년대 중반부터 북한과 사이가 멀어져 발언권이 약해진 상태인 데 비해, 중국은 북한이 여전히 의존하는 존재고, 미국도 중국의 동의 없이는 북한에 강공책을 펼칠 수 없어 두 나라에 상당한 발언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외부적 도움만 기다리지는 않겠다는 것이 노 당선자의 의지다.

노 당선자의 한 자문교수는 “부시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우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서라도 북한 핵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 끌려가서는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쪽에서는 1월 초 예정된 대미특사와는 별도로 대북특사 파견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문제에 대한 진전된 해법을 남북한이 도출해내면 미국도 강경책 일변도로만 나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또 합의형식으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기대하고 있다.

반미열기에 참모 의견 엇갈려

노 당선자 진영에서 핵문제 해결 주도권과 관련해 민감하게 엇갈리는 부분이 효순·미선양 문제로 불거진 ‘반미열기’에 대한 평가다. 유재건 의원 등 온건파는 “국민의 여론을 바탕으로 자주외교를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으나, 새 정부의 지도력 범위를 벗어나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반해 젊은 참모진에서는 “노 당선자가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발언하는 데 반미열기가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노 당선자 진영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5년 전 외환위기에 못지않은 심각한 면이 있지만, 이번에 매듭을 잘 풀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북한 핵문제로 정권 초반부터 뒤뚱거릴지, 안정적 기반 위에서 순탄하게 출항할 수 있을지 노 당선자의 정치력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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