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3.01.02(목) 제441호

[표지이야기] 이제 반전의 촛불을 켭니다

시민·사회단체들 북핵 해결에 앞장서… “반미 촛불시위를 평화운동의 동력으로 이어가야”

한반도의 남녘 땅에서 허망하게 스러져간 어린 넋을 기리는 촛불이 환희 밝혀질 무렵, 북녘 땅에서는 전쟁을 예감하게 하는 불길한 움직임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반세기 침묵을 깨고 거리로 쏟아져나온 반미 물결은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바꿔내자”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지만, 정작 주한미군이 부른 냉전의 음습한 그림자는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수백만의 미선·효순이 생길 수도”

발빠르게 핵동결 해제조치를 밟아나가는 북한의 발걸음은 숨가쁘기까지 하다. 12월12일 “중유공급 중단에 따라 핵 시설 가동과 건설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보름여 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요원 추방 결정까지 내달려왔다. 이에 맞서 미국은 ‘선 핵포기, 후 대화’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요지부동이다.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을 포함한 미국 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전쟁불사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다가오는 파멸의 먹구름을 누가 막을 것인가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우리 모두 피해 당사자다. 자구적 차원에서 대중적 반전운동을 벌여야 한다.” 환경운동연합 서형원 정책기획실장은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거리마다 반미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그러나 북-미 간 무력충돌이 빚어질 경우 수백만의 미선·효순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여성단체연합 등 상당수 시민·사회단체의 2003년 화두가 ‘반전·평화운동’으로 모아지는 것도, 파국의 심각성에 대한 현실 인식 때문이다. 이들은 12월27일 성명을 내어 “어떤 이유에서든 한반도 전체의 안전을 볼모로 하는 북-미 쌍방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은 극단적 위기사태를 초래할 핵 동결 해제조처들을 철회하고, 미국은 즉각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희망의 불씨는 여론의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물결에서 찾아진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불거진 북한 핵문제는 예전처럼 선거판세를 뒤엎는 ‘북풍’으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만큼 시민의식이 성숙된 덕이다.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에서 촉발된 반미 촛불시위를 반전·평화운동의 동력으로 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위기 대책기구 제안

이를 위한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을 둘러싼 촛불행렬 사이에서 ‘전쟁반대·평화실현’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돼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발 맞춰 시민·사회단체들도 12월30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정부·국회·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동위기 대책기구를 조직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시민사회가 앞장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들은 이날 회견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무력사용에 반대한다는 국회 차원의 의사표시가 나와야 한다. 또 위기상황을 심화시킬 수 있는 남북 교류협력 사업 중단 등의 조치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그늘이 깊어질수록 그 근원에 대한 궁금증은 커진다.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12월27일치 보도는 민심이 바라보는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짚고 있다. 신문은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가 아니라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남과 북이 불안한 정전협정을 맺고 휴전에 들어간 지 50년. 2003년을 맞이하는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반세기 만에 대중화한 반미의 뜨거운 몸부림은 반전·평화의 새로운 함성으로 메아리칠 수 있을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03000/2003/01/021003000200301020441012.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