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인사 5명이 말하는 일상에서 미소짓는 순간… 소박한 행복의 발견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박현미
순간의 진실을 찾아 걸어보렴!
김형경/ 소설가
누군가 내게 행복한가 물으면 먼저 이런 식의 잠언이 떠오를 것 같다. “행복한 인생은 길어봤자 5분이다.” 사람에 따라 이 문장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대책 없이 염세적이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지적할 수도 있고, 논리적 근거 없는 감상적 발상을 문제삼을 수도 있고, “맞아, 딱 그거야!” 손바닥을 마주치며 반색할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그 문장이야말로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것의 속성 또는 본질을 눈앞에 구체화시켜 보여준다고 믿는 쪽이다.
누군가 또 내게 행복이라는 것의 속성이나 본질을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물으면 나는 그것을 ‘순간의 진실’이라고 말할 것 같다. 사랑이나 분노, 기쁨이나 슬픔 등 인간의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추상명사들은 순간의 상태를 가리킨다. 분노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사랑도 그러하다는 것을, 슬픔이 인생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 기쁨도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듯 행복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루하고 지리멸렬한 생에서 행복이나 사랑은 잠시 빛나는 ‘순간’일 뿐이다.
그래서 또 누군가 내게 그 ‘순간’이 언제인가 물으면 그때는 당당하고 기분 좋게 대답할 수 있다. 하루에 한번씩 천천히 걸을 때 나는 틀림없이 행복하다고. 불가에서는 발걸음에 의식을 집중한 채 천천히 걷는 수행법을 포행이라고 한다. 도가의 수련법에서도 상기된 기를 아래로 다스리는 방법으로 걷기만한 게 없다고 한다. 건강 컨설턴트들은 체력이 약한 자들의 운동법으로 걷기를 권한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최소한 1만보는 걸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걷기를 시작한 지 벌써 열 계절 이상 지났다.
처음에는 목적지로 정해둔 지점이 너무 까마득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리가 무거웠다. 자주 걸음을 멈춰서서 허리께 만보계를 확인하며 숨을 고르곤 했다. 한 계절이 지나자 휴식 없이 목표지점에 도달하게 되었고, 두 계절쯤 지났을 때는 걷는 행위에만 몰입되어 있는 의식이 해방되면서 오감이 자유로워졌다. 세 계절쯤 지나면서부터는 오후 한두시가 되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왔다. 어서 밖으로 나가자고.
이제 걷는 일은 삶의 소중한 요소가 되었다. 걷는 행위에는 두 다리를 규칙적으로 교차시키며 몸의 흔들림을 느끼는 동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걷는 동안은 오감이 모두 열려 활발하게 작동한다. 차를 타고 달릴 때는 보지 못한 사물의 세밀한 뒷면을 볼 수 있고, 그것들이 저마다 고유의 소리를 내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감지할 수 있고, 청각으로 자극된 감각이 자주 촉각으로 전이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하여 걷는 동안은 잠시나마 세상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서서 눈앞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의 속도감, 소통의 전광석화, 욕망의 무한질주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다. 얼마간 걷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잡동사니들이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지점을 만나기도 한다.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면서 밝고 긍정적인 생각, 새로운 아이디어가 그 자리를 채운다.
걷는 행위는 때로 사랑의 과정과도 닮은 것 같다. 처음에는 사랑에 미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다음에는 이상화되고 미화된 ‘대상’이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사랑이라는 추상성이 온몸의 감각만으로 구체화되는 순간, 그 순간과도 같은 정점이 걷는 행위에는 내포되어 있다. 그 정점의 순간에서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갈망하며 서두르는 일상적 존재가 사라진다. 대신 우주와 통합되고 혼자 충일하며 자연의 시간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드는 자신을 느낀다. 조금 더 과장하면, 대지와 배꼽을 맞대고 우주의 심장박동을 느낀다고나 할까. 그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한다.
이부자리의 참맛을 아는가
김원/ 건축가
4년전엔가 <우리시대의 건축 이야기>라는 나의 책이 나왔을 때의 일이다. 평소 거의 매일 들렀던 단골 술집 주방장이 신문에 실린 서평을 봤다며 아는 체를 했다. “매일밤 술마시며 언제 이런 걸 다 쓰셨어요” 내가 술을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는 그 사람이 제일 잘 알기에 나는 할 말이 없어 웃고 말았다.
내가 수십년동안 매달려온‘건축’이라는 일은 밥먹을 때도, 사우나에 앉아서도, 길을 걸을 때도,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일이다. 또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못된’성격 탓에, 건축가라는 직업인의‘오지랖’을 넘어서, 나는 동강살리기 운동 같은 건축과 직접 상관이 없는 일에도 쓸데없이 뛰어다녔다. 이렇게 살다보면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냐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종종 이런 물음을 던지곤 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정신없이 스스로를 몰아가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행복한 까닭은,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고 그 일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도 매일의 일상은 고단하고 지루할 수 있다. 그런 활기를 충전시키는 순간이 바로‘이불 속’에서다. 난 아침에 잠이 깨서,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비몽사몽간에 뒤척거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 막연히 무언가를 생각하다보면 설계실 일, 현장 일 등 거치른 일들이 제법 아름다운 것들로 떠오른다. 그러다보면 다른 일들이 눈부시게 가지를 쳐 나간다. 때로는 어떤 설계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기도 하고, 잊어버렸거나 빠뜨렸던 일이 불시에 생각나기도 한다.
오래전 백남준 선생과 함께 일할 때, 그 역시 아침 늦게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 뒤척거리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본인에게는 가장 즐겁고 보람있는 시간이 된다고 들었을 때 기쁘게 동감을 했었다.
또 나는 잠들기전, 드러 누워서 약간 피곤해지면서 잠에빠져 드느라고 몸이 방바닥으로 점점 가라앉아 내려가는 것을 느낄때도 행복하다. 일요일엔 성당에 다녀와 오후내내 전화도 텔레비전도 오디오도 시계도 없는 아랫채에서 낮잠자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또‘틈새잠’도 즐긴다. 차만 타면 자고, 공항 대합실에서도 자고, 그 새에 대하드라마를 방불케하는 꿈도 꾼다.
중국작가 노신은 사람이 나이들어, 오후의 양광을 쪼이며 꾸뻑꾸벅 졸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시간, 돈, 마음, 모든 면에서 여유가 있을 때, 걱정거리가 없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 모든 면에서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노신의 그말을 지금도 믿는다.
전율과 함께 스크린 속으로…
이금희/ 방송인
월요일 저녁이면 라디오 생방송을 마치자마자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서점보다 이틀 먼저 영화 주간지가 나와 있는 버스정류장 앞 가판대. 3천원짜리 영화잡지를 사들고는 일주일간의 영화관람 스케줄을 짜는 것으로 일주일의 행복을 시작한다.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보는데 무슨 스케줄이냐고. 아무리 괜찮은 작품이라도 흥행성적이 시원치 않으면 사나흘 만에 간판을 내리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면 우선순위를 메겨가며 봐야 한다.
일주일에 한편 이상, 개봉 즉시, 반드시 영화관에서 볼 것! 이것이 자칭 영화광인 나의 원칙이다. 홈시어터를 아무리 훌륭하게 만들었다 해도 대형 스크린과 돌비 서라운드 시스템, 그리고 함께 보는 이들이 내뿜는 웃음과 눈물, 한숨과 탄성의 열기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뿐인가. 일부러 시간 내서 표를 사고 극장문을 들어설 때의 기대감, 예고편이 끝나고 서서히 조명이 잦아지면서 영화가 시작될 때의 긴장감과 떨림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영화의 바다 부산국제영화제에 푹 빠질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열흘간의 영화제 일정 가운데 무려 3번이나 서울-부산을 왕복하면서도 고단한 줄도 피곤한 줄도 몰랐다. 평소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걸작들까지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었으니 그 즐거움은 몇 글자의 문장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아침 7시에 TV생방송을 하기 위해 방송사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오후 6시 라디오 On Air의 불이 꺼지는 순간까지 긴장 속에 사는 직업이지만 13년 동안 지치지 않고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영화라는 쉼표 덕분일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좋은 사람들 만나고 틈틈이 좋은 영화 찾아다니고. 이것이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나만의 행복찾기다. 오늘도 나는 행복을 만나러 간다. 혹시 모르지.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 같은 남자가 내 옆에 앉을지도. 그리고 나만의 영화 한편이 시작될지도….
일상에 널린 ‘행복의 이유’
이상은/ 가수
아무도 없이 혼자 내 방에서 놀 때 행복하다. 책도 꺼내 읽고 인터넷도 한다. 햇살이 오는 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볼 때 행복하다.
요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책들은 21세기의 변화, 발전할 세계상을 예측해놓은 미래학 서적. 인터넷은 Real one player나 nme radio, Lycos Rapsody 등 음악을 24시간 들을 수 있게 하고 CD도 구울 수 있는 Site, Program들이 즐겁다. 혼자서 여행하는 것도, 여행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좋다. 날마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나 자신을 만날 시간이 적어졌다. 홀로 하루의 일들을 반추해보고, 미래의 일들을 구상할 때의 기쁨.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아마 겨울이라 더욱 그런가 보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이란 거의 대부분이 자유롭다는 데 있을 것이다. 더 수입이 많아지길 바라거나 좋은 자동차를 원하는 마음만으로는 좋은 음악이 탄생되기 어렵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조금 행복이 솟아나오는 발생지가 다르다고나 할까. 하지만 충분히 사회인으로 사는 것의 고단함을 아는 나로서는 함부로 음악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할 거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행복은 찾으려면 멀어지는 속성도 있는 듯하다. 아예 생각하지 않고 있으면 자연스레 온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진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행복을 원하지 않는데 행복이 온다는 것도 이상하다. 어느 정도는 행복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 행복은 딜레마다. 행복은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온다. 행복에 걸려들면 행복할 자유도 없어지는 건지 모른다. 즉, “행복하기 위해 불행히도 애써야 하는 것”을 없애면 빈자리에 무언가 따스한 것이 밀려오지 않을까.
끝으로 나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거나 듣거나 노래하거나 할 때 자주 행복했던 것 같다. 단, 아주 기막히게, 너무너무, 하늘에 가 닿을 듯 좋았을 때만….
여러분도 출마를 꿈꾸시죠
조윤석/ 월간 발행인
연말, 빨래방에 밀린 외상값을 갚으러 갔다. 사장님과는 꽤 친한 사이다. 술 한잔 같이 못했지만 나이나 처지가 비슷해서인지 갈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가까워진 것 같다. 잊고 있는 것을 갚는다며 점심을 산단다. 점심에 커피까지 얻어마시고 수다를 좀 떨었다. 한참을 떨다 일어서려는데 사장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다음번에도 또 선거에 나가실 거예요”
“예, 그럼요. 또 나가야지요. 왜요”
사장님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러면 다음엔 저랑 라이벌이 되시겠네요”.
“예”
“다음번엔 저도 서교동에서 구의원 선거에 출마할 거예요.”
“정말요 와! 진짜 잘됐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먼저 책을 쓰다 보니 여러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지금 세탁에 관한 책을 쓰고 계신다), 이번 선거와 유시민씨의 글, 지난 여름에 나와 한 이야기들이 출마를 결심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선 마포구에 살면서 그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했다.
“와! 난 이제 안 나가도 되겠네.”
“구의원 선거의 모든 것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아냐, 아냐. 사장님은 여기가 동교동이니까 동교동에서 나오세요. 그래서 같이 구의회에 들어가서 마포구를 바꿔봅시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다.
난 지난 6·13 지방선거에 서교동에서 무소속 시민후보로 구의원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다음엔 더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분은 좋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구의원은 아무나 하나~.’
지난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에서 홍보용으로 사용한 노래가 떠올랐다.
‘이젠 정말 아무나 하겠는걸.’
기분이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