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교민 박상화(45)씨
“걱정되는 것은 시가전”
취재진들이야 보도경쟁이라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민간인들이 전쟁터로 달려가는 것은 왜일까 전쟁특수를 겨낭해 한몫 건지려는 것도 아닌데 한국인 박상화(45)씨가 전쟁터가 될 바그다드에 굳이 머무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쿵! 쿵! 콰르르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과연 미국이 전쟁을 할까 하며 많은 이들이 설마 했다. 그러나 전쟁은 현실이 되어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의 귓전을 때려댔다. 미군 주도 다국적군은 91년 1월17일 새벽 수백대의 전투기와 전폭기를 동원해 바그다드 지역을 비롯한 주요 군사기지에 공습을 감행했다.
“걸프전은 달랐어요. 낮에는 일상이 유지되고 밤에만 제한적인 폭격이 이루어졌지요. 새벽 2시부터 50여분 정도 정해진 폭표물을 향해 폭격이 이루어졌지요. 그냥 또 다른 일상이었지요.” 사실 밤하늘 불꽃놀이 같은 공습을 감상하는 것이 바그다드 주민들의 또 다른 일상이었다.
걸프전이 터진 날 그는 바그다드에 남은 단 두명의 한국인 중 하나였다. 박씨는 43일 동안의 전쟁 기간 내내 대사관을 지키고 있었다. 83년 이래 20년째 바그다드에 살고 있는 그는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다시 전쟁이 터질 텐데 바그다드를 떠날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럴 계획이 없습니다. 다만 전쟁이 터지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면 더욱 좋겠지요”라고 답한다.
이란-이라크전을 치른 이라크는 스스로 백전노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미국은 예상외로 강적이었다. 이제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힘을 알고 있다. 게임이 안 되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이라크인들의 심정은 복잡한 것이다. “이번에 걱정이 되는 것은 이전처럼 공습 중심의 전쟁이 아닌 시가전입니다.” 이라크는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숨을 만한 산악지대도 별로 없다.
캐나다 이라크 난민 아브 누르(60)
“후세인을 위해 기도한다”
이라크 난민으로 캐나다에 거주하는 아부 누르(60)는 1남1녀를 둔 전형적인 이라크 기독교인이다. 그의 가정은 지난해 봄 캐나다 정부로부터 입국 허가를 받고 이민길에 올랐다.
이들 가족이 바그다드를 떠난 것은 장남의 징집 연령이 가까워지면서였다. 어두운 기억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작정 요르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법 그럴듯한 큰 집에서 살던 이들 가족은 단칸방을 전전해야 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는 등 두 내외가 고학력자였지만 변변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하는 딸자식을 보며 버틸 수 있었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 아부 누르 가정은 이라크를 피해 나온 것이 아니다.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였다. 이들은 이라크인들과 더불어 마음껏 새로운 미래를 펼쳐가길 바란다. 지금 이들은 캐나다에서 낮과 밤 가릴 것 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라크 상황이 호전되면 나이가 들었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목회를 할 것이다. 나의 조국은 영원히 내가 사랑하는 땅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이라크 전쟁 소식은 아프기만 하다. “하나님께서 성지 이라크를 지켜주시길 바랄 뿐이다.” 그 길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지 않은가 언제 아부 누르 가족은 바그다드 땅에서 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요르단 이라크 난민 하싼 자밀(43)
“전쟁 끝나면 돌아갈 것”
하싼 자밀(43)은 3남매의 아버지로 98년 12월 미국·영국의 공습에 맞서려는 이라크의 동원 소집에 불응하고 바그다드를 등졌다. 불법체류자로서 지낸 5년간의 요르단 생활로 심신이 지쳤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계속 그에게 난민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외국인 여성과 위장결혼을 시도했고, 요르단 여성과의 재혼도 추진했으나 모두가 좌절이었다. 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로의 밀입국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지친 그는 목숨을 걸고 이라크로 돌아갔다. 다행히 그의 이름이 국경 관리소에 입력되어 있지 않아 다시 요르단으로 돌아왔다.
하산 자밀은 이라크 전쟁이 몰고 올 애꿎은 인명피해를 안타까워한다. “사담 후세인 체제로는 이 어려운 상황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사실 하산 자밀 말고도 난민 신청을 한 이들 다수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지지한다.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가 후세인의 폭정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미국이 자기 국익을 위해 전쟁을 도모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이라크인들에 대해 요르단 정부가 압박을 가해 힘들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도 없고 일자리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언제 이 같은 상황이 끝을 볼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다시금 되뇐다.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 아닌가.” 하산 자밀처럼 전쟁은 파멸의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라크 난민의 또 다른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