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1월15일 제443호 

’토네이도 문’의 세번째 도전

98·99년 두번의 좌절 닫고 여소야대 격파에 도전 … “의원빼가기 같은 건 안 한다 ”


사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문희상 의원이 김원기 의원으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이용호 기자)


문희상 민주당 의원은 새 정부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1월8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잘됐네요. 잘하실 겁니다”라는 축하전화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문 의원의 눈가에는 물기가 어렸다. 문 의원은 전화를 끊고는 “정작 주군(김 대통령)을 모시고는 못 해본 일인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기회를 줬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각오를 다진 것으로 전해졌다.

DJ 정부 때 실패한 이유는…

그의 다짐을 이해하려면 얘기가 5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문 의원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한꺼번에 뒤집는 정계개편 계획을 은밀히 진행하고 있었다. 이른바 ‘토네이도론’이다. 미국을 강타하는 태풍 토네이도처럼 정치권을 순식간에 휘감아올려 정치지형을 완전히 새로 짜겠다는 구상이다. 핵심내용은 동교동-상도동 연합인 이른바 ‘민주대연합론’으로, 문 수석의 상도동쪽 창구가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였다.

하지만 김중권 비서실장은 다른 프로그램을 작동하고 있었다. 이른바 ‘낚시론’으로,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이나 옛날 민정계 의원들을 하나씩 하나씩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은 두 방식을 다 저울질해보다가 김 실장의 손을 들어주며 여소야대를 벗어났다.

문 의원은 이에 대해 “지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얘기가 다 돼 있었다. 서청원·신상우 의원이 20명 이상 데리고 함께 오기로 약속했다. 마지막 순간 김 실장이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때 내 말대로 했으면 국민의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고 통탄해 마지않았다.

1년 뒤 그는 두 번째 시도에 나선다. 새천년민주당 창당 과정에서 ‘지역을 넘어, 세대를 넘어, 계층을 넘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정치질서 재편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이념적 측면의 개혁연합이라는 궤도를 벗어나 자민련과의 통합논의로 변질되고 말았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고 만 꼴이 된 것이다.

그의 좌절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있었으나, 당시 정책기획 수석인 강봉균 의원은 “문 수석은 대통령 앞에서 제대로 말을 못했다. 내가 곧잘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하면, 문 수석이 ‘아니 어떻게 대통령 앞에서 그렇게 말씀을 잘하십니까’라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문 의원의 한 측근도 “대통령이 부르기 전에는 제대로 보고를 안 했다”고 자책을 인정했다.

“민주대연합은 이미 식상하다”

어쨌든 문 의원으로서는 그 실패가 뼈에 사무쳤고, 그 때문에 노 당선자의 한 측근을 통해 “노무현 정권 5년과 생사를 같이하겠다. 국회의원직도 버리겠다”고 자신의 의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로 정치재편을 시도할 기회를 맞은 것이다.

노 당선자가 문 의원을 선뜻 기용한 것은 민주대연합 구상을 놓고 둘 사이에 오랫동안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왔기 때문이다. 문 의원은 5년 전 노 당선자와 긴밀히 협의하며 보고서를 작성했고, 의견을 수렴한 주요 대상에 김원기 의원과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 등 국민통합추진위(통추) 출신들이 여럿 포함됐다. 따라서 노 당선자의 정무 라인이 김원기-문희상-유인태로 짜인 것은 5년 전부터 그 씨앗이 배태되었던 셈이다.

물론 5년 전과 달리 이번에 인위적 정계개편을 위한 시도는 없다는 것이 문 의원의 설명이다. 그는 “과거 민주대연합론을 펼 때는 그게 시대정신이라고 판단했다. 이념적 통합을 통해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를 자연스럽게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정신을 말하기 모호하다. 민주대연합은 이미 식상했다. 또 우리로서는 인위적 정계개편을 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을 개별적으로 영입했다가 받은 시련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 5년 전 ‘낚시론’을 주도했던 김중권 비서실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실제로 현재 정당개혁에 몰두하고 있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의원들도 ‘의원 빼가기’식의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민주당의 천정배 의원은 “개혁성향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몇명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개혁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영입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그들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개혁파로 분류되는 한나라당의 안영근 의원도 “5월이면 노무현 정부에 위기가 온다. 각종 부도어음성 공약들의 폐해가 드러날 테고, 그때 대립각을 세우면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 개혁을 지지한 사람들도 노무현에 실망해 다시 한나라당에 넘어올 그릇을 만들어놓고, 그때부터 다시 싸우자는 것이다”라고 결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1년 뒤를 내다본 장기포석

하지만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자체 분열 가능성에 대한 기대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넘어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단지 현재 150석이 넘는 거대야당이 탄탄하게 방어진영을 갖춘 것은 우리에게 부담스럽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도를 타파하려면 한쪽이 무너져내려야 한다. 그러면 총선 전이라도 ‘헤쳐모여’가 가능하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도 “가을쯤 정계개편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다. 김원기 의원이 연초에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에게 난을 돌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래도 최후의 심판은 결국 2004년 총선에서 국민의 손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 이전의 모든 밀고 당기기는 먼저 유리한 정치지형을 차지하고 보려는 샅바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문 의원을 초대 비서실장에 배치한 것도 1년여 뒤를 내다본 장기포석의 성격이 짙다. 이는 인수위 산하에 설치된 ‘정치개혁연구실’ 면면을 살펴봐도 엿볼 수 있다. 연구실은 임혁백 교수가 소장을 맡는 등 교수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나, 이곳에 배치된 단 2명의 실무진이 모두 문 의원의 ‘측근 중 측근’이다. 또 이들은 선거운동과정에서 ‘부산 자갈치 아지매’를 발굴해내 텔레비전 찬조연설에 투입함으로써, 선전전에서 한나라당을 따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조광한 전문위원은 이기택 대표 체제의 통합 민주당 시절 당시 비서실장인 문 의원과 인연을 맺은 이후, 청와대와 국정원을 함께 다니며 문 의원이 ‘민주대연합론’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크고 작은 도움을 줘왔다. 소문상 행정관도 조 전문위원과 마찬가지로 1998년부터 민주대연합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왔으며, 1999년 문 의원이 안기부 기조실장을 그만둔 직후부터 지금까지 문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해오고 있다.

정치개혁연구실은 노 당선자가 지역구도 타파를 목표로 내놓은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과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 등을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연구실에서 2004년 총선에 대비한 청사진을 짜도 여소야대 상황이라 휴짓조각이 되기 십상이다. 문 의원에게는 그 장벽을 뚫어야 하는 과제가 맡겨져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 보면 위협이 될 수 있으나, 문 의원으로서는 필생의 과업을 이룰 기회기도 하다. 과연 그가 1998년, 1999년에 이어 2003년의 세 번째 도전에서 어떤 성과물을 거둬낼지 주목할 일이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