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1월15일 제443호 

인수위 기자실의 ‘글짓기 대회’

작문성 기사와 입단속의 악순환… 재래전부터 고공전까지 인수위와 기자들의 치열한 신경전


사진/ 인수위 담당기자들이 비좁은 기자실에서 기사 작성에 몰두하고 있다. (이용호 기자)


“1월3일부터 오늘까지 4일간 각 신문에 19개의 인수위 관련 톱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그 기사가운데 인수위에서 내부 검토나 논의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기자분들이 어디서 누구의 말을 들었더라도 그것은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

임채정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1월7일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론이 특종이라고 앞다퉈 보도해온 인수위 관련 주요 기사들이 모두 설익은 사견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공약집을 지나치게 참고해서 오는 혼란 등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스럽다”며 기자들이 공약집을 근거로 작문하고 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기자들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변인이 두명씩 있으면 뭐하냐, 일용할 양식(기사거리)을 줘야지.” “아무도 못 만나고 기자실에 갇혀 지내라고 하니, 우리가 무슨 사육되는 돼지냐.”

서울시 종로구 도렴동 정부종합청사 별관 4층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기자들과 인수위 사이에 신경전이 일상화됐다. 인수위는 언론이 설익은 정책을 마구 쏟아내 국민적 혼란만 가중한다며 인수위 관계자들에게 기자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기자들은 그 벽을 뚫어야 산다.

1월10일 현재 인수위에 등록된 309명의 기자들은 비좁은 기자실에서 스스로를 “대입학원 작문반 수강생”으로 비하하면서도 뉴스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화장실 가는 인수위원이라도 만나려고 2~3시간씩 분과위 앞에서 진을 치는 ‘재래전’부터 인맥을 총동원한 ‘고공전’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인수위원들은 “입 잘못 놀리면 짐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 잘리는 꼴 보려느냐”며 황급히 사라지기 바쁘다. 어쩌다 2~3분씩 앞길을 막고 질문을 퍼붓지만 ‘영양가’ 없는 동문서답이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자들은 회사 데스크와 신경전을 벌이다가 “당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아우성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문건을 인용한 기사를 양산한다. 노무현 당선자의 대선공약집 내용을 짜맞춘 뒤 “공약이니까 당연히 검토해야지요”라는 위원들의 원론적 답변을 근거로 ‘인수위 ㅇㅇㅇ 정책 추진’이라며 큼직한 기사를 뽑아낸다.

이런 보도는 인수위를 더욱 자극하고, 입단속은 더욱 강화된다. 인수위 핵심인사들은 “기자들이 작문한 뒤 성급한 정책으로 혼란을 준다고 사설로 조지는 식으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고 공공연히 비난한다. 몇몇 보수언론을 거명하며 “취임 전에 노무현 당선자를 고꾸라뜨리려고 악의적인 작문을 일삼는다”는 평가도 심심찮게 나온다.

감정대립부터 이념대립까지

결국 취재기자와 인수위 사이에는 직업에 따른 긴장을 넘어 감정대립과 이념대립까지 뒤섞이는 극단적 대결상황까지 벌어진다.

일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확정되지 않은 설익은 기사를 무작정 1면에 올리는 태도는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언론들이 공약집을 토대로 작문을 계속하면 데스크의 압박을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사의 속보 경쟁이 사태 악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인수위 한 핵심인사도 “위원장과 대변인 등이 인수위의 논의상황 가운데 옥석을 가려 기사거리를 적절히 생산해야지, 일방적인 보안주의와 봉쇄주의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반성은 기자와 인수위의 치열한 신경전 속에 금방 묻혀버린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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