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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12.27(금) 제44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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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새들은 제 발등을 찍으며 운다 배신과 변절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자처한 철새들… 그것은 희극이자 비극이었다
뜨는 해가 있으면 지는 달이 있는 법. 대선 과정에서 정치적 이익만을 좇아 원칙과 소신, 의리를 헌신짝처럼 내던진 정치인들은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개막과 함께 순식간에 정치무대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둥지를 옮긴 ‘철새’도, 옛 둥지로 되돌아간 ‘연어’도 당분간 ‘배신자’나 ‘변절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정치적 복권을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표출된 새로운 흐름과 젊은 세대의 위력은 변절 정치인들이 2004년 총선에서도 고전할 것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압권은 단연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난해한 행동이었다. 투표일을 불과 1시간40분 앞둔 상황에서 돌연 발표한 그의 ‘노무현 지지 철회’는 소설보다 극적이었고, 코미디보다 희극적이었으며, 자신에겐 참담한 비극으로 귀결됐다. 후세에 역사 드라마의 소재로 애용될 법한 이 사건은 불가사의한 극적 요소들이 즐비하다.
어느 역술인의 예견
정 대표의 ‘폭탄선언’ 직후인 12월18일 밤부터 투표가 끝날 때까지 노무현 지지자들은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시시각각 정보를 나누며 사건의 파장을 예의 주시했다. 그들은 “노 후보가 ‘정몽준 지뢰’를 넘어 당선되면 거추장스런 혹을 떼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출발할 수 있다. DJP연합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득이 된다”며 ‘전화위복’과 ‘새옹지마’의 고사성어를 역설했다. 19일 밤, 투표 결과가 나오자 노무현 지지자들은 광화문 거리에서 기쁨에 넘쳐 외쳤다. “‘역사의 간계’가 작용했다. 신의 섭리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2000년 한 역술인이, 구한말 동학교도인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전수된 것이라며 공개한 비결서가 있다. 2000~2010년에 한국을 중심으로 벌어질 사건을 예언해놓은 것이다. 한 월간지에 실리면서 2002년 대선과 관련해 숱한 화제를 낳았다. 올해를 예측한 대목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목하첨자(木下添子) 나무 아래에 아들 자를 더하는 곳에 목가병국(木可丙國) 나무에 병을 더하는 나라가 있을진대 존읍정복(尊邑鼎覆) 존읍이 솥을 뒤엎는다네. 나무와 아들자를 더하는 것은 이(李)씨 성을 뜻하고, 병국(柄國)은 권력장악을 뜻한다. 또 존읍(尊邑)은 정(鄭)씨를 일컫는다. 정가에선 이를 두고 “이회창씨가 권력을 장악하려 하는데, 정몽준씨가 솥을 뒤엎는다”는 뜻의 해석이 나돌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권의 호사가들은 선거 결과가 나오자 “정 대표가 단일화를 통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솥을 엎어버렸지만 종당엔 자신의 밥솥도 엎은 꼴이 됐다”고 말한다. 이인제 자민련 총재대행도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지난 3월, 국민경선이 막 시작될 무렵만 해도 민주당에선 ‘이인제 대세론’이 대세였다. 수십명의 계보의원들이 그를 따랐고, 가는 곳마다 그를 ‘알현’하려는 인사들이 붐볐다. 설날, 그의 자곡동 집앞엔 세배객들이 운집했고, 여의도 개인 사무실엔 내로라 하는 책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3월16일 광주 경선에서 노 당선자에게 밀린 이후 그의 추락엔 날개가 없었다. 그는 정치적 고비마다 배후음모론과 색깔론 노무현 불가론 등을 주장하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초라해졌다. 그에겐 여러 번 기회가 있었다. 경선에서 패한 뒤 깨끗하게 노 당선자의 손을 들어주었더라면 최상일 것이고, 단일화 이후에라도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이토록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김민석이 일등공신이다?
그는 선거 막바지 자민련으로 둥지를 옮기고 5년 전 결정타를 날려 침몰시킨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지만 JP의 제동으로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가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논산에서 얻은 선거 성적표는 실로 초라했다. 그가 ‘급진적이고 위험한 후보’라고 선전하고 다닌 노 당선자는 이회창 후보보다 2배에 가까운 표를 얻었다. 지역에선 그가 2004년 총선에 출마하더라도 당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온다. 이른바 ‘평화개혁세력’의 단일화를 주장하며 국민통합21로 건너간 김민석 전 의원도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상을 입었다. 지난 10월 탈당을 감행한 뒤 그는 “두달 뒤면 알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선택을 자신했다. ‘노-정 단일화’가 합의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탁견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 달리 운명의 여신은 노무현을 단일후보로 선택했다. 게다가 정몽준 대표마저 날개가 꺾이면서 그는 갈 곳 없는 정치적 미아신세로 전락했다.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선 ‘김민석이 일등공신’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그의 탈당이 노 당선자에게 밀려든 국민성금의 기폭제가 됐고, 그의 의도와 관계 없이 어쨌든 전체적으로 보면 단일화에 기여한 나름의 공로가 있기 때문이다. 김원길 의원(서울 강북갑)과 박상규 의원(인천 부평갑)도 상식적으론 납득하기 어려운 변절행보를 보였다.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다가 정작 후보단일화가 성사되자 한나라당으로 튄 이들의 행동은 모순의 극치였다. 특히 김 의원은 당내 후보단일화론을 주도하며 “수구·냉전 집권세력의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때문에 그가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직전까지도 민주당에선 그의 순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국민회의 시절부터 DJ의 총애를 받으며 당내 최고의 경제·정책통으로 통했다. 정책위의장은 그의 ‘단골당직’이었고, 복지부 장관까지 지냈다. 그런 그에게 노 후보도 많은 미련을 보였다. 그가 사무총장직을 내팽개치고 ‘반노’로 돌아섰을 때 노 후보는 집에까지 쫓아가 설득하는 성의를 보였지만 끝내 그를 돌이키지 못했다. 한나라당 입당의 첫 테이프를 끊은 전용학 의원(충남 천안 갑)과 뒤를 이은 강성구(경기 오산·화성)·원유철(경기 평택갑)·이근진(경기 고양 덕양을)·김윤식(경기 용인을) 의원도 이제 땅을 치며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됐다.
“돌아올 곳은 이제 지상에 없습니다”
민주당 탈당 1호인 안동선 의원(경기 부천 원미갑)의 행보도 희극적이다. 그가 누구인가. 2001년 이회창 총재를 향해 ‘친일파 집안’이라고 비난하고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이회창 한놈만 안 울었다”고 막말을 퍼부어 최고위원직까지 사퇴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자민련으로 옮긴 뒤 앞장서서 이 후보 지지를 선언했으니…. 신한국당에서 자민련으로 옮겼다가 한나라당으로 되돌아간 이완구(충남 청양·홍성)·이재선(대전 서을)·이양희(대전 동)·함석재(충남 천안 을) 의원 등은 자신들의 지역구에서 노 당선자가 압승한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자민련에서 친정인 한나라당으로 되돌아가려했으나 그마저 좌절돼 갈곳 모르는 무소속 오장섭 의원의 처지는 더욱 처량하다.
-춥더라도 다시는 둥지를 떠나지 말기 바랍니다.
지난 11월21일 강성구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민주당 이종상 부대변인이 남긴 촌평이다. 그로부터 1개월이 흐른 지금, 이 촌평을 ‘철새’들이 기억할지 모르겠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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