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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12.20(금) 제43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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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거 우리나라 맞아? 당돌한 10대들의 좌충우돌 좌담… 어른들의 비겁한 행동이 반미를 부추긴다
10대는 좌담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이들은 반미감정을 걱정하는 어른들의 ‘비겁한’ 행동이 오히려 아이들의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한겨레21>은 12월13일 오후 회의실에서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에 대해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여중생 사건 관련단체들을 통해 좌담 참석자를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또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의식이 ‘투철한’ 학생들만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겨레21>이 여중생 사건 관련 좌담에 참가할 청소년을 모집한다’는 글을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를 보고 ‘참가 희망’ 이메일을 보내온 청소년들 중에서 참가자를 뽑았다. 자발적 참여에 따르다 보니 참가자의 학교와 학년이 제각각이다. 참가자들의 동의를 얻어 권혁철 기자가 사회를 봤다. [참석자] 이지민(서울 진선여중 3), 소순평(서울 강남공고 1), 박성기(서울 선린인터넷고 3·전국민주중고등학생연합 중앙위원장)
사회: 평소 사회적 문제에 관심 없어 보이던 청소년들이 효순·미선양 사건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고 있어 뜻밖이란 어른들이 많다. 언제, 어떻게 이 사건을 알게 됐는지, 친구들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나는 왜 열받았나
이지민(이하 이) 월드컵 때 친구들하고 거리 응원을 다녔다. 서울 신촌에서 응원을 마치고 지하철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지하철역에서 벽보를 봤다. 숨진 두 여학생 사진이랑 사건 관련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정도 일이라면 뉴스에 날 만도 한데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별게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고 대부분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 사건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서 내용을 알게 됐고, 여중생 사건 관련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에도 가입했다. 처음엔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다. 학교에서 미국에 대해 배울 때도 좋은 내용만 나온다. 그런데 카페에 가입한 뒤 미국에 대한 나쁜 얘기를 많이 알게 됐다. 요즘은 심지어 미국영화도 보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친구들도 있다. 소순평(이하 소) 나도 마찬가지다. 8월쯤 지하철 벽보를 보고 알았다. 사고현장에 대한 얘기가 나와 있었다. 자연스럽게 촛불시위에도 나가고 친구들과 이와 관련한 얘기도 나누게 됐다. 요즘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같은 것들 가지고 이야기한다. 박성기(이하 박)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나라에 친미주의나 사대주의가 많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던 중 사건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7월부터 항의집회에 참석했다. 이번 사건은 상식에 어긋난 일이다. 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나라 법을 지키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 가면 미국법 따라야 하고. 그래서 열받았다. 청소년이 미군에 의해 사고를 당한 것은 처음이라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 서울 광화문 등에서 열린 추모시위에 참석한 적이 있나. 있다면 소감은 어땠나. 소 지금까지 3차례 참석했다. 인터넷을 통해 모이자는 얘기가 나와서 글을 퍼 나르기도 하고, 지난번 미 백악관 사이트 사이버 시위에도 참여했다.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뒤 더욱 관심이 커졌다. 이 우연히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함께하는 선배들하고 광화문 근처에 놀러갔다가 촛불시위를 하기에 준비 없이 참석했다. 평화적인 분위기로 시위하다 언제부턴가 분위기가 격해지면서 사람들이 밀리고, 넘어진 사람들 일으키고 하면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박 이것은 분명히 하자. 촛불시위는 누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모든 세대가 합심해 말도 안 되고, 국민의 자존심을 해치는 일을 막자고 나선 것이다. 우리도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대응을 너무 늦게 했다
사회: 일부에서는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나서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의 위협을 거론하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어른들은 미군이 철수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더라. 솔직히 어른들이 너무 대응을 늦게 한 것 아닌가. 또 국방부나 법무부 같은 데서 다들 공정한 재판이었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이거 우리나라 맞아’ 하고 아이들은 화를 냈다. 어른들은 반미감정을 걱정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행동이 아이들의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모르는 것 같다. 사회: 여러분이 생각하는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이 문화적으로, 특히 영화는 좋아한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같이. 하지만 미국 제품만 계속 찾는 사람들은 꼴불견이고, 문제가 있다. 물론 미국 제품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다. 극도로 치우쳐 미국 제품은 절대 안 된다거나, 미국놈은 모두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박 미국에게서 배울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우지 말아야 할 점도 많다. 총기사건도 그렇고. 또 다른 나라와 동반자 관계가 돼야 하는데, 자기네들이 세계경찰이라면서 사실은 깡패 같은 짓을 하지 않나. 그래서 미국은 참 황당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소 맞아. 미국은 깡패 같다. 일방통행식 정치를 하고, 다른 나라는 이를 막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강력히 SOFA 개정에 힘을 써야 한다. 이 그런데 미국은 SOFA 개정은 안 되고 방향만 바꾼다고 하지 않나. 박 학교가 서울 용산에 있어 자주 보는데, 미군들은 교통경찰이 뗀 주차위반 범칙금 통지서를 다 길에 버리고 간다. 우리나라를 아예 무시하는 것이다. 미군 차량은 자동차보험도 안 들어도 되고,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해도 아무 처벌도 못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소 (박수를 치며)어휴! 맞다. 정말 말이 안 된다. 사회: 주변에 있는 다른 친구들도 여러분과 비슷한 생각을 하나. 요즘 친구들과 주로 어떤 얘기들을 나누나. 이 장갑차 사건도 그렇지만, 인터넷에 다른 내용도 많다. 한번은 미군 장갑차가 훈련하다 논에 빠진 일이 있다고 하더라. 장갑차가 논을 100여평쯤 밀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사고를 낸 미군 병사가 “벼가 한국인의 식량인지 몰랐다”고 했다. 아이들은 이런 일에 대해 “정말 황당하다”고 말한다. 소 아, 거 윤금이 사건은 또 어떻고. 사회: 92년에 있었던 미군의 윤금이씨 살인사건 말인가. 박 당시 윤금이씨 사진하고 이번 장갑차 사건 사진이 다 미국 엽기 사이트에 올라 있다. 미국사람들이 리플 달아놓은 것 보니 ‘재미있다’, ‘웃긴다’는 반응이 많았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비극을 보고 즐길 수 있나. 사회: 장갑차 사건과 관련해 의견이 다른 친구들과 다툰 적은 없나. 이 우리끼리는 대부분 의견이 같다. 세대 간에 차이는 많은 것 같다. 소 일부 의견이 다른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애들은 처음부터 이런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 아예 관심이 없다. 이 친구네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전체적으로 외부 집회에 나가지 말라고, 나가면 징계한다고 방송했다더라.
부시가 직접 머리숙여 사과해야
소 우리 학교는 말리지는 않고 침묵하는 분위기다. 촛불시위에 갔다왔다는 사실을 알면 선생님들이 궁금한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 요즘 국사시간에 해방 뒤를 배우는데 선생님은 신세 한탄하듯이 얘기한다. 하지만 미국 얘기는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분위기다. 선생님이 잘못 얘기하면 아이들이 학교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막 올리니까. 박 미국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이 어른들은 미국이 빠져나가면 큰일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군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이 들어와 있는 것 아닌가. 땅덩어리도 좁은데…. 소 주한미군이 얼마나 되나. 사회: 3만7천명가량 된다. 소 우와, 너무 많이 들어와 있는 거 아닌가. 사회: 정말 우리에게 미국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나. 미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도 높은데…. 소 중국이나 유럽시장으로 서서히 바꿔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미국에 기대다 보니 미국이 없어지면 큰일난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 미군이 들어와서 마음이 편할지는 모르나, 사고도 많이 치고 안 좋은 일이 많다. 친구들은 미군기지 근처에는 안 간다. 특히 밤에는 절대 안 간다. 서울 이태원에서 요즘은 미군 보기도 어렵다. 홍대 앞에는 미군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 있고 해서 미군들도 그쪽에 잘 가지 않겠지. 박 가게 주인이 장사 포기하고 항의 표시로 미군 안 받는 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회: 그럼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보나.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한-미 관계는 뭔가. 이 미군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점차 줄여야 한다. 서로 지금처럼 너무 대립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너무 쥐고 흔들고 있지 않나.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자신의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좋겠다. 좋은 이웃이라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약소국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우리도 인권이 있다. 미국 처지에서야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SOFA 개정문제처럼. 아무래도 이번 사건 때문에 언론에 민감하게 됐다. 뉴스도 많이 보게 되고. 미국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자꾸 보게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과 우리나라 관계를 좋게 만들자는 거다. 우리를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라. 어른들의 생각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 얼마 전 미국이 예멘으로 가는 북한 화물선을 끌고 갔다. 그런데 예멘에서 공식적으로 항의하지 않았나. 아시아 다른 나라들도 반미감정이 높다고 알고 있다. SOFA 개정과 개선 모두 이뤄져야 한다. 계속해서 미국에 압력을 행사하면 가능하지 않겠나. 박 점차 미군 수를 줄여나갔으면 좋겠다. 전방이나 뭐 이런 데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최소한 지금의 상태는 동반자 관계가 아닌 게 분명하지 않나. 아직 심도 있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태로는 한국과 미국이 파트너라고 볼 수 없다. 사회: 듣고 보니 미국에 대한 생각이 어른들과는 많이 다르다. 처음부터 지금같이 생각했나. 이 물론 아니다. 처음에는 미군이 알아서 사과하겠지, 우리 정치인들이 알아서 대응하겠지 했다. 그런데 미군의 재판절차는 공정했다고 하고, 시위하는 거 보고 극단주의자라고 하고. 미국은 사과도 아니고, 간접사과한 거 아니냐. 박 그건 사과도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대사에게 유감을 표하라고 전화한 걸 가지고 사과라고 언론에서 과장했다. 소(탁자를 치며)맞다. 오버다. 오버의 극치다. 이 일본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와서 머리 숙여 사과하지 않았나. 왜 부시는 사과하지 않나.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알려나가자
사회: 정부에서는 미군이 일본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은 범죄였고, 이번 사건은 범죄가 아니라 작전 중에 벌어진 사고라고 지적한다. 이 98년 미군 비행기가 이탈리아 스키장 케이블카 줄을 끊어 이탈리아인과 독일인 등 20여명이 숨진 사건도 공무 중 아니었나. 그때도 미군법정은 사고를 낸 조종사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숨진 각 나라 정부에서 무죄평결에 격렬히 항의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공정한 재판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분노하는 거다. (좌담이 끝난 뒤인 13일 밤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해서 ‘애도와 유감의 뜻’을 밝혔다.) 사회: 그런데 청소년들은 대표적인 미국 문화상품인 콜라나 햄버거를 좋아한다. 어느 한편에선 미국이란 나라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한쪽에서는 미국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박 미국 제품 안 써도 되는 것은 우리나라 제품을 쓰는 게 좋다. 무조건 안 쓰자고 하는 것은 좀 그렇다. 한국을 왜곡한 007 영화는 확실히 보이콧해야 하지만. 이 무조건 안 된다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될 수 있으면 국산품 써야겠지만, 꼭 필요한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소 그래도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에는 너무 사람들이 많더라. 이 패스트푸드 먹으러 자주 안 가지만, 가게 되면 롯데리아로 가자고 한다. 요즘은 애들이 햄버거 안 먹고 분식집으로 바꿨다. 박 그런데 내년에도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할 텐가. 이 우리는 인터넷 세대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모두 모일 것이다. 소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알려나갈 것이다. 사회: 마지막으로 꼭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자. 소 오늘 내 결론은 미국 제품 불매운동을 확실히. 하려면 확실히 하고, 안 하려면 하지 말아야지 대충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박 7월17일 1차 청소년 행동에 참여하면서 원칙이 살아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인터넷 카페 같은 데 가면 ‘6월에 일어난 사건인데 뒤늦게 지금 왜 항의하느냐’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뒤늦게 한다고 생각 안 한다.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나. 그래야 효순이·미선이 같은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진행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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