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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12.12(목) 제43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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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냐 권이냐 그것도 문제로다 진보세력의 고민 대변하는 두 문인의 논쟁… “진보의 파이를 키우자” “소신대로 투표하자”
한국의 개혁·진보 세력은 1987년 두 김씨의 후보단일화 논쟁 이후, 대선 때만 되면 비슷한 갈등을 겪곤 했다. 극우 헤게모니에 대항해 연합전선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과 결국 보수정치판의 놀음에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날을 세우고 대립했다. 또 지역감정과 계급적 정체성 사이에서, 현실적 당선 가능성과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당위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과 논쟁이 거듭됐다. 16대 대선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히 지식인들이 그 논쟁의 당사자들이다. 안티조선 인터넷 사이트 ‘우리모두’에서 각각 ‘빵아줌마’와 ‘고양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돈독한 우의를 다진 시인 노혜경(44)씨와 소설가 송경아(31)씨가 이번에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지지자로 편을 갈라 논쟁을 벌였다. 12월7일 오후 2시 한겨레신문사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누가 지역감정을 타파할 수 있는가
노혜경 저는 노사모 초창기 멤버인데요, 노무현 지지자들은 대부분 노무현이 자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지향점이 비슷하죠. 그런데 그건 굉장히 비이데올로기적인 거예요. 현실에서 행복을 추구해야지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눈물나게 하지 않고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송경아 저랑 참 정반대구나. 저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에요. 민노당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굉장히 이질적인 사람일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면 프티적인 감성이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저는 요즘도 저 자신에게 물어봐요. 내가 80년 광주에 있었다면 총을 잡았을 것인가 대답은 그때마다 바뀌죠. 그런 질문들을 통해서 저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계속해서 저와 사회와의 관계가 어떻게 돼야 할까 점검해요. 저는 그래서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가 민노당을 찍는 동력이에요. 노 왜 민노당이 아니고 노무현이냐, 이런 질문 굉장히 많이 들어요. 부산의 지역감정이라는 게 이제는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독이 돼서 호남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오르고 있거든요. 부산사람들이 왜 호남을 미워해야 하나요 민주노동당은 그들의 인간성이 황폐해지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여요. 그런 점에서 민노당이 역사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이념·계급 이전에 제대로 된 인간성 회복이 중요해요. 송 하지만 노무현 후보가 부산 가서 ‘부산의 아들’을 말하는 것은, 민주당이 지역감정이라는 그릇 자체를 깨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있는 그릇에 이 내용으로 다시 한번 채우자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념으로 지역감정을 깨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노무현의 개혁적 의지가 얼마나 힘을 쓸 수 있겠어요 노무현에게도 DJ처럼 한계가 있어요. 단일화한 이후 정몽준에게 발목잡히지 않고 자기 일 할 수 있을까요 노 전 별로 걱정 안 해요. 정치 시스템이 노무현을 통해 바뀔 것이라고 믿어요. 지금까지 선거는 분명히 특정 지역의 대표를 뽑는 선거였죠. 파워게임을 해서 이기는 쪽이 다 먹는 고스톱 싹쓸이식 투표를 한 거예요. 지분을 나눠먹는 정치는 극복해야죠. 너에게 총리자리 줄게, 장관자리 몇개 줄게, 그런 것은 야합이죠. 그러나 ‘당신이 얘기하는 정책은 국민의 동의를 구해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일게’ 하는 것은 야합도 아니고, 지분 나누기도 아니죠. 송 제가 노무현 후보를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떤 지위를 따먹겠다가 아니라 세상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서 그 길로 정치라는 것을 택했다는 것인데, 단일화 등 몇 가지 문제들(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에서 노 후보가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며 만들고자 하는 세상과 얻고자 하는 지위가 어느 순간 헷갈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노 그건 전형적인 좌파 마타도어예요. 노무현이 가는 길은 오른쪽, 왼쪽이 아니에요. 점점 대권에 다가감에 따라 접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져 그렇다고 생각해요. 노 후보는 굉장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정치인이에요. 좌나 우는 모던의 개념인데, 노 후보는 중재자로서의 정치인을 자임하는 사람이에요. 자기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따르라는 게 아니에요.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송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황논리의 변형이에요. 단일화만 놓고 보더라도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라면 할 필요가 없죠. 저는 권 후보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민노당을 지지하는 것이거든요. 그게 아마 민노당 지지자와 노 후보 지지자의 다른 점일 거에요. 상식과 원칙을 얘기하는데, 노 후보는 단일화라는 데서 원칙을 깨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에요.
노무현의 원칙? 민노당의 색깔?
노 원칙이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송 자기 색깔의 원칙이죠. 노 저는 노 후보다운 선택이었다고 봐요. 노 후보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을 따르겠다는 원칙이 있어요.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지켜온 바, 나의 올바름을 갖고 직진하는 거죠. 그런데 주변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정몽준을 설득해서 이겨주기를 바랐죠. 단일화를 받아들였을 때 사실 놀랐어요. 자기라는 한명의 정치인이 길이 남는 것과 사회를 조금이라도 진보시킨다는 것은 달라요. 저는 그래서 노 후보가 더 좋아졌어요. 송 민노당이 출마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답안지가 하나 더 생기는 거예요. 수권을 하려는 시도를 되풀이하면서 수권능력이 쌓이는 거죠. 베른슈타인과 로자 룩셈부르크 얘기인데요, 베른슈타인이 “우리는 아직 역사적으로 발전이 덜 됐으니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로자의 답변은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는 것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시기상조다”라는 것이었어요. 그런 시도가 되풀이되는 중에, 시도하고 시도하고 결국은 성공해야 더 이상 시기상조가 아니죠. 노 저는 결국 실패한다고 봐요.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노동자·농민이라는 프롤레타리아성 속에 자기를 가두려는 사람은 적죠. 제가 볼 때 민노당은 부문정당이에요. 일단 노 후보를 통해서 극우를 잠재운 다음에 민노당·여성당 등 수많은 부문정당들이 합해서 힘을 모아가는 게 좋은 진보라고 생각해요. 그런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에서 노 후보가 이기는 게 좋아요. 1~2% 차이로 승부가 갈라질 수도 있어요. 송 그게 결정적으로 다른 거예요. 제가 자주 들어가는 통신 동호회에 울산인가 마산인가에서 현대 하청회사에 근무하는 젊은이가 있어요. 통신에 들어와서 “이번에 파업을 한다. 파업에 들어가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최고로 생각해주는 정당이 민노당이니까 민노당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수 있는 희망이 되는 당이 있다는 것, 민노당이 희망으로서 그 사람들 앞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노 극우가 집권해도 된다는 거예요 송 속도가 느려질 뿐이지, 커다란 물결은 달라지지 않아요. 탄성이 생긴다는 거죠. 노 저는 그 논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진도가 늦어지면 누가 고통을 받나요 노동자 서민들이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괜찮아요. 대학생들도 투쟁할 기회가 생기니까 오히려 멋있게 살 수 있죠. 진중권이 그랬죠. “이회창이 집권하면 5년 동안 내가 씹히는 게 뭔지 알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우리집 건너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회창을 지지하지만- 에게는 그대로 고통이 가죠. 내가 당할 고통이 아니니까 극우가 집권해도 된다는 논리는 해괴해요. 극우 집권은 범죄예요. 송 정말로 1~2% 차이로 이기고 진다면, 민노당의 색깔과 목소리는 더 중요해요. 선거판세가 그렇게 짜이면 온 나라를 극우로 끌고 갈 수는 없어요. 노 최악은 민노당이 1~2%로 캐스팅보트를 갖게 되는 것이고, 최선은 민노당이 빈민층을 끌어오는 거죠. 랄프 레이더는 지지자들의 아름다움을 보장해줬지만, 결국 부시가 정권을 잡게 해서 극우세력이 득세하게 만들었잖아요. 권 후보는 과감하게 베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다음 지분을 요구하는 거죠. 이건 정몽준과는 분위기가 달라요. 그거야말로 수권능력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 대담을 권 후보가 읽기를 바래요.
‘극우 집권 차단’에 대하여
송 TV토론에 한나라당과 민주당 두 후보만 나왔다면 그 자체로 얼마나 보수적이겠어요. 서로 헐뜯기만 하다가 끝났을 거예요. 색깔론만 해도 그래요. 노 후보가 색깔론 공세를 받지 않은 까닭은 권 후보가 이쪽에 있으니까 가능했어요. 또 권 후보가 있기 때문에 노 후보가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노 민노당은 대학교 앞에서는 유세해도 달동네는 안 가요. 그런데 한나라당은 만날 술만 먹는 동네 아저씨들을 찾아가 막걸리 받아주고 가요. 물론 5년에 한번이지만, 그 사람들은 ‘아, 이 사람들이 내 존재를 인정하는구나’ 하는 착각에 빠져서 고마워해요. 저는 민노당이 그들을 왜 안 찾아가고 지식층만 공략하는지 묻고 싶어요.
송 그건 선거전략의 문제가 아니에요. 민노당의 현재 조직을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싫었어요.
노 우리가 합심해서 극우에 사로잡혀 있는 민노당 지지자들을 제대로 민노당에 돌려주고, 중산층, 근대적 주체들을 노 후보와 묶어내느냐가 중요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해요. 노 후보가 집권하면 둘 다 유리하지만, 극우가 집권하면 둘 다 손해예요.
송 근대적 주체라면 자기 주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우리의 욕구를 미뤄왔어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기에게 솔직한 투표라면 심지어 한나라당에 대한 투표라면 뭐가 나빠요 문제는 자기 정체성이 없는 이들의 표가 이회창에게 가니까 문제죠.
노 지금은 이긴 놈이 싹쓸이하는 나쁜 구조예요. 나에게 선명한 투표를 해서 이긴 놈이 다 가져가게 하자는 것은 배부른 이야기라고 봐요. 한때의 즐거움을 위해 오랜 고통을 남기는 일이죠.
송 그건 공포에 기반한 선택, 공포에 기반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봐요. 자기에게 솔직한 게 우선이 아니라, 극우가 집권할지 모른다는 공포로 투표한다는 게 이상해요.
노 그건 배부른 사람 얘기예요. 호남에 가보세요. 진짜 얼마나 공포심에 빠져 있는지. 이회창이 자기를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가 아니에요. 전라도 여자라면 모두에게 왕따당하는 현실을 저는 옆에서 보고 살아요. 그런 지역차별을 끝내야 해요. 지역차별을 끝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계급적 투명성을 내세우는 사람보다 진보라고 생각해요. 노 후보가 대통령 되면 저절로 저 사람 전라도 사람이라는 말은 움츠러들 테니까.
송 권 후보가 되도 마찬가지죠.
노 지금은 대통령 될 사람이 아니잖아요. 극우에 대한 반대는 우리 시대에 할 수 있는 진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투표는 해야 한다
송 극우라는 거울을 통해서 되돌아오는 옳음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옳다’고 말하는 게 더 중요하죠.
노 제가 나이 먹어서 더 그런가 봐요. 87년에 실패함으로써 15년을 견뎠지, 부마항쟁부터 치면 한 20년 정도를 참아온 셈인데, 저는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그래서 이번에 꼭 이겨야 해요.
송 현실을 보는 눈이 다르니까요.
노 청춘은 아름다워!(웃음) 저는 진짜 제대로 된 여성당이 있었다면 굉장히 갈등했을 거예요. 사실 세 정당이 여성에서는 구색맞추기 식이죠. 그런데도 국가 전체의 보편적 과제를 놓고 노 후보와과 연대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 속에 투표하러 가기 전에 발발 떨었을 거예요.
송 지지 정당을 떠나서 정말 국민이 선거권에 대해, 자기가 피 흘려서 얻은 게 아니라고 너무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솔직히 한나라당 지지하는 것보다 투표 안 하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노 50, 60대에게 투표는 습관이에요.
송 이 부분에서 의기투합해서 좀 이상한데….(웃음) 이건 농담이지만 투표일에는 날이 흐려야 한대요. 20대는 날이 흐리면 놀러가지 않을 테고, 50, 60대는 몸이 쑤셔서 투표하러 못 갈 테니까.(웃음)
노 오늘의 결론. 대극우 국민전선을 만들자, 일단 파이를 키우자, 극우세력의 파이를 줄이고, 진보세력의 파이를 키우자. 진보가 집권할 수 있는 파이를 노 후보에게 주고, 급진개혁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민노당이 갖자.
송 저는 ‘주관대로 투표하자’, ‘공포논리로 투표하지 말자’.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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