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2월27일 제440호 

“이번엔 권영길 찍으려 했는데…”

막판 정몽준 폭탄선언으로 100만표 득표 실패한 민주노동당, 97대선에 비해선 대약진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겼습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12월19일 저녁,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농민·빈민 등 소외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존재와 가능성을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새겼고, 2004년 치를 총선에서 원내로 진출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았다는 분석인 셈이다. 이상현 민주노동당 중앙선대위 미디어대책위원장은 “한국의 진보세력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한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권영길 후보, TV토론서 일약 스타로


사진/ 권영길 후보는 이번 선거를 통해 노동자·농민·빈민 등 소외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존재와 가능성을 대중의 뇌리에 깊이 새겼다.(박승화 기자)


특히 권 후보는 진보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 토론회에 참가해 기존 정치권을 속시원히 질타하고, 신선한 공약을 척척 제시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가리켜 각각 원조부패당·신장개업당이라고 일컫는 등 번뜩이는 재치도 인기에 한몫을 했다.

권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95만7천여표를 얻어 3.9%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는 지난 1956년 조봉암 진보당 후보가 216만표(24%)를 얻은 이래 가장 많고, 5년 전인 97년 대선과 비교하면 3배나 급증한 대약진이다. 지난 92년 이래 치른 몇 차례 대선에서 진보정당 후보는 1%대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3~5%의 고른 지지를 얻었고, 울산, 경남북, 강원, 인천, 경기, 대전·충남북에서 전체 평균 3.9%를 뛰어넘어 전국적 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인텔리, 학생 운동권, 조직 노동자 20~30대 중심구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와 함께 대공장 밀집지역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적 투표’는 더욱 본격화한 것으로 민노당은 보고 있다.

한 당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8.1%의 득표율로 제3당이 됐지만, 이때 ‘제3당’이라는 것의 의미는, 중앙당 간부들이 ‘홍보’해야만 사람들이 동의하는 수준이었다. 국민 대부분은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조차 낯설었다. 그러나 이제 민노당은 ‘대중적으로 공인받는’ 제3당이 됐다”고 평가했다.

민노당의 최근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04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정당만을 놓고 투표한다면 어느 정당에 투표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민주노동당이라는 응답이 11.8%를 차지했다. 또 이번 대선과정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호감도 변화를 묻는 질문에는 71%가 “좋게 생각하게 됐다”고 답변했다. 신장식 기획위원장은 “2004년 총선에서는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실시되므로, 우리 당의 원내진출은 이제 규모의 문제만을 남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내교섭단체(20명)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가 과거와 다른 점을 꼽으라면, 진보적인 가치가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햇볕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민노당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노당은 ‘평등한 세상, 자주적인 나라’라는 기치 아래 “30억원 이상의 부자에게 부유세를 거둬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택문제 해결”이라는 공약을 내걸었고,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적극 개입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에 대한 범국민적 요구를 이끌어내는 데 공을 세웠다. 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당당히 주장하기도 했다. 옛날 같으면 친북적 주장이라는 색깔론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공약이었다. 민노당의 선명성 덕에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색깔론 시비에서 비껴날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꼬리 문 “정말 미안합니다”


사진/ 12월19일 밤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당원들과 함께 방송을 지켜보는 권영길 후보. 민노당은 대선 이후 당의 존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첫 진보정당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박승화 기자)


하지만 민노당 지지자들과 당직자들은 이번 선거결과를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선거 막판에 터져나온 노·정 공조파기 소식에 극우보수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정서가 급속히 퍼지며 화이트칼라 중심의 지지표가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정몽준의 폭탄선언은 우리 민주노동당에게 날아온 직격탄이었습니다. 우리 당으로 와야 할 표가 최소한 3~4%는 (노무현쪽으로) 갔다고 봅니다. 우리 당이 ‘노 일병 구하기’ 희생자가 된 겁니다.”(이상현 위원장)

김종철 대변인은 “정몽준 관련속보가 텔레비전에 뜨자 우리 당 홈페이지 순간 접속 건수가 8만여건에 이르는 바람에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만은 제발 노무현의 손을 들어달라는 읍소형에서, 한나라당 2중대라는 씁쓸한 비난까지 줄을 이었다. 선거가 끝난 다음날에는 “권영길 후보를 찍으려고 했는데…. 정말 미안합니다”는 유의 글이 꼬리를 물었다. 실제로 3차 텔레비전 토론 뒤 권 후보의 지지율은 6~7%까지 올랐다. 민노당은 “특히 서울의 지지율이 전국 평균 이하로 나온 것은 30대 화이트칼라가 많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가 있었으면 3~4배 나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노당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두 가지 시대적 요구가 있다. 하나는 개발독재 패러다임의 약화라는 민주주의의 진화 요구고, 두 번째는 외환위기 이후의 빈부격차 문제를 비롯한 계급문제의 해결이다. 우리 당은 두 번째 요구를 대변했는데, 이번에 젊은 사람들은 민주주의 완성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결국 민노당의 ‘시원시원한’ 정책에 대한 지지를, 민노당 자체에 대한 지지로 발전시키는 게 민노당의 과제인 셈이다.

이를 위해 민노당은 민생보호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국민의 삶에 밀착한 정치를 꾀할 계획이다. 또 부유세 도입, 한반도 평화군축 등의 주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투표서명운동을 벌일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연대를 추진해 대도시 중심의 조직구조에서 벗어나고, 한국노총의 민주사회당과도 적극적으로 공조를 모색할 방침이다.

좌절 속에서도 당원 3만여명으로 불어

민노당은 대선 이후 당의 존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첫 진보정당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한 당원은 “민노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의 이름으로 대선을 치른 97년 대선 직후, 30만표라는 초라한 성적표에 낙담한 조직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끝까지 남은 활동가들은 30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당원이 오히려 3만여명으로 늘었다. 대선 이후에도 지금의 정강정책을 가지고 쭉 갈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장상환 위원장은 “당원을 5만, 10만명으로 늘려 신뢰할 수 있는 정당으로 발전하는 것이 과제다”라고 말했다.

민노당은 그야말로 당원의 돈으로 움직이는 최초의 민주 정당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19억원의 선거비용 가운데 5억3천만원의 국고보조금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당원과 후원자들의 성금으로 조달했다. 앞으로 야당다운 야당을 하겠다고 선언한 민노당. 정쟁만 일삼는 야당이 아닌 진정한 정책야당이 국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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