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2월27일 제440호 

유세직후 소주를 벌컥벌컥…

자리요구 거절 이어 대접소홀에 분노 폭발… 정몽준 대표는 도대체 그날 왜 그랬을까


사진/ 투표일 직전 노무현 후보와 함께 유세장을 찾은 정몽준(오른족) 대표. 장관직 등 구체적 자리 요구가 거절당하면서 쌓인 앙금이 일시에 폭발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용호 기자)


도대체 왜 그랬을까.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돌출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어 정확한 까닭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공조의 구체적 대가를 확약받지 못한 데 대한 앙금과 타고난 ‘뿔뚝 성질’, 선거판세에 대한 순간의 판단 착오, 재계 안팎의 압력 등이 화학작용을 일으킨 행동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가 지지 철회 이유로 내세운 북·미 관계에 대한 시각 차이를 사실로 믿는 사람은 두 당 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노 당선자의 선거 과정에서의 발언은 평소의 지론을 되풀이한 것으로, 그동안 통합21쪽도 이견을 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정 대표쪽이 공조 대가로 장관직 등 구체적 자리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면서 쌓인 앙금이 일시에 폭발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 대표쪽은 11월25일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결정에서 패한 뒤 약속대로 즉각 지원에 나서지 않고 줄기차게 요구사항을 쏟아냈다. 느닷없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수용을 요구해 관철시킨 뒤에 또다시 세부정책 조율의 필요성을 들어 추가협상을 제안하며 시간을 끌다가 12월13일에 이르러서야 정 대표의 명예선대위원장 취임을 수락한다.

정 대표쪽은 표면적인 정책조율과는 별도로 국무총리를 비롯한 주요 장관직 배당을 요구하며 노 당선자 명의로 서면약속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두 당 간 정책조율이 뚜렷한 이유 없이 이상하게 지지부진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이철 전 의원은 말한다. “총리 외에도 국정원장·국방·외무·법무·통일 장관 등 6자리를 포함한 각료의 50%, 총리의 확실한 내각제청권, 정부산하단체와 국영기업체 등 정부에게 사실상 임면권이 있는 자리의 50%를 요구했다.” 국방장관까지 요구했다면 국군통수권을 달라는 것이니 사실상 “대통령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경제부총리쯤이나 하라”는 얘기인 셈이었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끝까지 이를 거부했다. 노 당선자가 명동 합동연설 등에서 정 대표를 대접하지 않은 것도 그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이 쌓였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표가 폭발한 결정적 원인은 노 당선자가 ‘차차기 대통령감’을 언급하면서 정 대표와 정동영·추미애 의원을 동급으로 취급한 때문이었다. 일순 얼굴색이 변한 정 대표는 유세장 주변의 한 식당에서 측근과 당 실무자들 40여명과 식사를 하며 벌컥벌컥 소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측근들은 “어떻게 대표님을 추미애와 같이 취급할 수 있느냐”며 노 당선자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어 정 대표는 밤 10시30분께 귀가하는 차 안에서 김행 대변인에게 전화로 ‘지지 철회’ 발표를 지시했다. 텔레비전 속보를 통해서야 이 소식을 접한 이철·박범진·정상용·신낙균 전 의원 등이 “당직자회의 한번 없이 어떻게 저런 당론을 결정할 수 있느냐”며 황급히 당사로 달려왔지만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유세현장에서 정 대표쪽은 정동영 의원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명동 유세에서 노 당선자와 정 대표 외에 정 의원이 함께 연단에 오르자 정 대표쪽에서 “앞으로 정동영이 연단에 함께 오르지 못하게 해달라”며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표가 투표개시를 불과 7시간 남겨둔 시점에 지지 철회라는 돌출행동을 한 것은 그로써 노 당선자의 당선을 저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차차기’는커녕 내각지분조차 확실히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색깔이 다른 ‘노무현 대통령’ 밑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이회창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함으로써 보수진영의 2인자로 나선 뒤 차차기를 노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하루가 지나지 않아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정 대표는 지지를 철회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노 당선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12월20일 “개인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고 국민의 사과를 구했지만 그의 정치적 앞길은 캄캄한 밤중이다.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룩한 이후 한때 국민 지지율 1위를 달린 정치인의 급격한 몰락은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새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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