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2월27일 제440호 

‘진짜 야당’된 한나라당의 공황

‘50대 이상 영남출신 민정계’가 주축 이룬 당 지도부 개혁 없인 별 희망 없어

한나라당은 이제까지 여당만 해온 당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당직자들의 기수에 매기는 이름이 ‘입사’할 당시의 당명에 따라 ‘공화기’, ‘민정△기’, ‘민자×기’이듯 권력의 향유에 익숙한 만년 여당이 그 뿌리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 구조


사진/ 패배 확정 뒤 당직자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이회창 후보. 당내 체질개선 없이는 앞으로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류우종 기자)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정권을 빼앗겼지만, 원내 제1당으로서 절반의 권력을 행사해왔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단일야당으로선 처음으로 원내 과반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제 한나라당은 ‘진짜’ 야당이 됐다. 한 당직자는 “마흔살 때 야당이 됐다. 앞으로 또 5년 야당생활을 하면 내 나이 쉰살이 된다”고 푸념했다. 10년은 과거 야당의 생존방식인 신념과 도덕적 우위, 자기희생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세월이다.

또 지난 5년은 정권을 되찾아온다는 희망과 기대가 버팀목이 돼준 시간이었다. 권력의 짧은 유예기 정도로 치부한 것이었다. 한나라당 의원이나 당직자들이 스스로를 여당, 민주당을 야당이라고 하는 말 실수가 잦은 탓도 여기에 있었다.

그 희망의 구심점이 이회창 전 후보였다. 이 전 후보는 15대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8달 만인 1998년 8월 당당히 한나라당 총재로 복귀했다. 대선을 앞두고 ‘꼬마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조순 당시 총재에게 당권을 넘겨줬다가 이를 되찾은 것이다. 이후 이 전 후보는 흔들림 없는 당내 1인자로 군림해왔다.

그의 공고한 지위는 당선 가능성에서 나왔다. 지난 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최병렬 후보가 ‘이회창 필패론’이라는 선견지명을 들고나왔을 때 대부분의 한나라당 당원과 지지자는 허황된 이야기쯤으로 여겼다.

이번 대선기간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로 노무현 당선자의 지지율이 급상승했을 때조차 당선 가능성을 묻는 항목에선 늘 이 전 후보가 우위였을 정도로 그의 ‘대세론’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이 전 후보가 다시 대선에 실패하고 정계에서 퇴장하자, 한나라당은 한순간에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희망과 구심점을 동시에 놓쳐버린 허탈감이 이들을 사로잡았다.

이 전 후보는 정계은퇴 회견에서 남은 이들을 향해 “도덕적으로 재무장하고 자기혁신을 해달라. 진정 건전하고 합리적인 개혁의 길을 간다면 언젠가 국민은 여러분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지난 5년 동안 한나라당을 이끌며 감격어린 승리와 충격적 패배를 모두 겪은 이 전 후보의 말이기에 그 무게가 남달랐다.

노쇠한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사진/ 흔들림 없는 당내 1인자로 군림해온 이회창 후보. 눈물과 함께 정계를 떠났다. (이용호 기자)


이를 실천에 옮길 이들은 남아 있는 지도부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미래를 결정할 이들의 면면은 50대 후반 이상의 영남 출신 민정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표 참조).

이번 대선 결과가 세대교체와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정치문화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지도부 구성은 그 자체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 구조를 지녔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실제로 당내에선 대선 패배에 따른 지도부 인책론과 함께 강한 체질개선 요구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혁성향 초·재선 의원들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런 요구는 2003년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번 겨울 동안 당내 뜨거운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체질 개선은 세대·지역·이념 등 복잡한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먼저 노쇠한 당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강재섭 최고위원 등이 50대 중반으로, 5년 뒤에는 60대를 바라보는 세대다.

이에 따라 지도부 전체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40대 의원들이 지도부에 진출하는 형태의 세대교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지난 봄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에는 44살의 김부겸 의원(경기 군포·초선)과 47살의 홍준표 의원(서울 동대문을·재선)이 도전장을 내민 바 있다.

이회창 전 후보의 한 측근은 경선이 끝난 뒤 “그때 김 의원을 당선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40대 최고위원의 필요성을 당시부터 느꼈다는 말이다. 동시에, 절대적 영향력이 있는 이 전 후보쪽도 뜻을 이루지 못할 만큼 40대의 진입벽이 두꺼웠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내년 초 전당대회가 열리면 이들이 재도전할 전망이다.

세대교체는 이념적 지향의 조정이라는 과제와도 맞물려 있다. 각각의 세대가 대변하는 이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한나라당은 극단적인 색깔론을 쓰는가 하면 이 전 후보의 촛불시위 참석을 검토하는 등 이념적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전자는 서청원 대표나 김영일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후자는 미래세대위원회 등 젊은 당직자들이 주도했다.

한나라당 구성은 김용갑 의원을 필두로 하는 극우적 시각에서부터 이부영 의원 등 재야운동 출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런 이념의 혼재 양상을 국민대통합이라는 포장으로 합리화하며 실제로는 강경보수 노선을 걸어온 게 사실이다.

이런 모습으로는 20~30대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욕구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게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당내 세력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386세대와 지금의 20대가 점차 우리 사회의 주류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한나라당이 지금의 이념적 태도를 유지하면 앞으로 몇 세대에 걸쳐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전망도 나오는 실정이다.

‘영남당’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벗어날지도 체질 개선의 관건으로 꼽힌다. 특히 수도권 출신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전국정당’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철저한 지역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지도부가 기득권 선뜻 포기할까

그러나 이런 모든 요구가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고위원 경선을 다시 해도 조직과 자금력을 갖춘 현재의 지도부가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주류를 자처하는 이들이 기득권을 선뜻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나라당은 좀더 격동적인 미래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벌써부터 점쳐지는 보수 대 진보의 정계개편 등을 피해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전 후보의 은퇴회견이 열린 지난 20일 허탈감에 젖은 한나라당사를 찾은 한 지지자는 의원과 당직자들에게 “흩어지지 마세요”라는 부탁을 하고 다녔다. 한나라당의 분화가 벌써부터 당면한 가능성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부탁을 들은 이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경황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들의 표정에는 ‘이회창’ 이후 당의 앞날에 대한 복잡한 상념이 어김없이 배어나왔다.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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