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2월27일 제440호 

마초적 리더십을 넘어…

“리더십이 있기는 한 거냐”는 공격 잠재워… 그의 특징은 카리스마가 아닌 파트너십!


사진/ 쿠데타와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나를 따르라'는 제왕적 리더십을 보였다.


“대통령이 되려면 대학을 나와야 합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기업체를 경영하거나 정부 부처의 책임자를 지내면서 지도자 훈련을 체계적으로 해야지요.”

대통령 선거일을 하루 앞둔 12월18일 오후 서울에서 한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강연회에서 국내 보수우익세력의 대표적 논객으로 꼽히는 학자는 대통령의 자질을 언급했다. 그는 “아니면 군대에서 분대장이라도 해봐야지…”라고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세속적 언어를 쓰는 것에 대한 불안감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참석자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무현 당선자는 고졸에 전방부대에서 병사로 군복무를 마쳤다. 공직 경험은 판사 생활 8개월과 국회의원 2번 당선, 해양수산부 장관 8개월이 전부다.



최근까지 많은 사람들은 노 당선자에게 ‘리더십이 무엇인가’란 질문 대신 ‘과연 리더십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자주 던졌다. 또 노 당선자의 직설적이고 감성적 말버릇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노무현이 과연 대통령감인가’, ‘노무현에게 국정운영 능력이 있는가’라고 의심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노 당선자는 ‘리더십의 존재증명’이란 오랜 숙제를 끝냈다. 이제 ‘노무현의 리더십’의 성격과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당선자는 당선 이틀 전인 12월17일 인터넷언론인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국민의 힘이 리더십의 핵심이다”고 설명했다.

노 당선자는 3김시대 이후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적 리더십은 인격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더 큰 것은 힘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힘의 근원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 그것이 이번에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제가 세속적 언어를 쓰는 것에 대해 불안감은 가지고 있지만, 모두 능력이 있다고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회견이나 토론을 마치고 난 뒤 사람들이 손뼉 치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들이 이제 진정으로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저를 인정하게 된 것이 국민적 지지라는 현실적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힘이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진시원 고려대 강사(정치외교학)는 “당선 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한 노 당선자의 리더십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파트너십 형태다. 개인의 카리스마로 이끄는 리더십이 아니라 지지기반에 추동되는 리더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 당선자가 반대세력으로부터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이란 비판을 피해가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세련되게 조직화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노 당선자는 자신의 리더십은 카리스마형 리더십, 제왕적 리더십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3김정치’로 대표되는 아나로그 시대의 낡은 잣대로 평가하면 노무현 리더십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지난 시기 리더십 성격은 폐쇄적이고 상명하복이었다. 새로운 리더십은 정당 내부의 두목과 부하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심판받고 감시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 당선자에게 군사문화의 산물인 ‘남자답다’는 마초적 리더십을 넘어 21세기 지도자는 생태적 리더십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환경문제는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절대적 한계다. 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가. 20세기 개발주의 리더십에서 생태주의 리더십으로 시대적 전환이 필요하다.”

‘힘센 장관’과 ‘우리 장관’의 차이


사진/ 단일후보 확정 직후 선대위 회의에서 당직자들의 축하박수를 받는 노무현 후보. (한겨레 이정우 기자)


노 당선자는 10월 초 한 강연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리눅스형 리더십’이라고 정의내렸다. 자신의 리더십은 리눅스처럼 “모든 소스를 공개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 조금씩 발전시키고 함께 이뤄나가는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인 20~30대 네티즌을 겨냥한 듯 ‘네트워크형 리더십’, ‘디지털 리더십’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실제 노 당선자는 이메일을 자주 사용한다. 한 신문사 논설위원은 “노무현 당선자가 내가 쓴 칼럼을 읽은 뒤 소감을 이메일로 몇번 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직원들이 보낸 이메일을 챙겨 읽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씨는 노 당선자의 리더십은 수평적 대화형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의 중심이 잡힌 사람이므로 원칙을 지키되 유연성을 보일 것이다. 그는 본격적인 한글세대고 디지털 마인드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쿨하다’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오성규 환경정의시민연대 정책실장은 대통령의 권한 축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사람의 판단은 한계가 있다. 가치 판단의 다양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실무선으로 권한을 넘겨야 한다. 노 당선자는 기존의 권력 가치를 과감히 포기하고 과거의 마이너리티 가치인 환경과 복지를 과감히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 모습 속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


사진/ 노무현은 해양수산부 장관 재임 때 "정책의 시작은 현장을 확인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용호 기자)


노 당선자가 2000년 8월부터 2001년 4월까지 장관을 지낸 해양수산부는 그때까지 몸담은 어떤 조직보다 큰 조직이었다. 당시 리더십은 어땠을까. ‘장관 노무현’의 리더십에 대한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는 인사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 확보를 위해 인사권을 조직에 거의 위임했다. 그는 1급과 국장급 인사권을 행사하고, 부이사관(3급) 승진이며 과장(4급 서기관) 보직문제는 국장들의 판단을 존중했고, 서기관이나 사무관 승진은 상관·동료·부하직원이 참여하는 다면평가를 크게 반영했다.

“노무현 장관의 취임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직원들은 ‘힘센 장관이 오는구나’라고 했다. (…) 그가 떠나던 날 직원들은 개각 발표를 보며 “어, ‘우리 장관’이 바뀌네”라고 했다. ‘힘센 장관’과 ‘우리 장관’의 차이는 무엇일까. 직원들이 말한 ‘힘센 장관’은 그가 가진 역량과 권위로 현안문제들을 해결해주긴 하겠지만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단지 후원자로서 장관을 상정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장관’은 비록 화려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를 조직의 일원으로 대하는 친근함이 배어 있고(…).”(박광열 해양수산부 서기관이 2001년 4월 노사모 홈페이지에서 쓴 글)

본인이 다 챙기진 않을 거다

<칼러 리더십>의 지은이 신완선 성균관대 교수(시스템경영공학부)는 “21세기 리더십은 획일화된 카리스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역량을 인정해주면서 함께 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리더십이 아니라 팀의 리더십이 돋보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선거 공천권과 돈을 쥐고 있으면 모든 의사 결정권이 몰리겠지만, 기득권을 포기하고 견제를 각오하는 순간 시스템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가 꽃피고 묻혀진 다수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초 설정한 100대 과제의 추진상황을 직접 진두지휘했지만, 노 당선자는 대통령이 직접 챙겨할 몇 가지 사안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실무자와 전문가들에게 맡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을 다룬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에서 스스로 낮추어 권위를 세우는 것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자의 말을 인용했다.

“강과 바다가 수백개의 산골짜기 물줄기의 복종을 받는 이유는 그것들이 항상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보다 높은 곳에 있기를 바란다면 그들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그들보다 앞서기를 바란다면 그들 뒤에 위치하라. 이와 같이 뒤에 있을지라도 무게를 느끼지 않게 하며, 그들보다 앞에 있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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