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내는 강준만 교수의 제안… ‘인의 장막’에서만 벗어나도 절반의 성공
사진/ 강준만ㅣ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에게 가장 무서운 건 ‘인의 장막’이다. 왜곡되거나 균형을 잃은 정보에만 접해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어떤 지도자도 그런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으면서도 자신만큼은 ‘인의 장막’에 갇혀 있지 않다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절대 권력의 속성을 지나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그런 착각을 만들어내게끔 돼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한번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것이다. 무시무시한() 경호를 보면서 대통령이 고립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환경을 절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격식을 갖춰 만나지 말라
그런 물리적 환경에서 대통령에의 접근권이 정보 왜곡과 불균형을 가져온다.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공보 보좌관을 지낸 조지 스테파노풀러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 점에선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걸 잘 말해준다.
“백악관 사무실에서 중요한 요소는 크기가 아니었다. 위치, 바로 위치였다.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이 권력의 원천이며 상징이다. 가까이 있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을수록 더 많은 정보가 흘러들어온다.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면 대통령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대통령이 내게 의지할수록 더 큰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귀를 장악한 극소수 인사들이 대통령 못지않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정보만 제공해주면 문제될 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매우 기대하기 어렵다. ‘권력 투쟁’ 또는 ‘인정 투쟁’의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건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게다.
나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의 장막’이었다고 믿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딱 한 가지만 주문하고 싶다. 그건 대통령에 대한 고언(苦言)을 유일 임무로 삼는 이른바 ‘고언 사조직’을 만들어 운영해달라는 것이다.
‘고언 사조직’은 매월 한 차례 대통령을 만난다. 격식을 갖춰 만나면 안 된다.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촌놈’ 노무현을 만나는 자유로운 자리여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에게 그런 ‘고언 사조직’ 비슷한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다 실패했다. 왜 격식을 갖춰 만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만남은 일회성이거나 상징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초청받은 사람들도 사회적 원로나 각 분야의 권력자들이었다.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청취하겠다는 것보다 그런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겠다는 포섭의 성격이 강했다.
내가 말하는 ‘고언 사조직’은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계산과 정략이 판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믿는 사람끼리 청와대가 아닌 안가에서 술도 좀 마셔가면서 인간 노무현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고언 사조직’은 10명 정도면 될 것이다. 앞서 말한 성격의 자리를 만들어 대통령에게 자유롭게 고언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그 정도 수가 적절하다. 어떤 사람들로 구성할 것인가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들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이념과 철학이 비슷해야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지 그 자리에서 전혀 다른 이념과 철학의 소유자들과 논쟁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대통령의 권위에 주눅들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운 기질의 사람들로 각계각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고언 사조직 참여자의 조건
사진/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의 장막'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국립 현충원을 방문하는 노무현 당선자. (한겨레 탁기형)
‘고언 사조직’의 구성원들이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려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염려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참여 인사는 영원히 정·관계(각종 공기업과 위원회 포함) 진출을 하지 않을 사람들이어야 한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각서를 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관계 진출을 염두에 두는 순간 정보의 왜곡과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철저히 자기 비용으로 운영한다.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고, 고언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과 밥 먹고 술 먹는 비용도 각자 나눠 낼 정도로, 개인적으로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는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셋째, 상호 연대책임을 진다. 구성원 가운데 누가 대통령 접근권을 사적으로 이용하지 않는지 서로 선의의 감시를 하며 내부 도덕성과 긴장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좀 엉뚱하기도 하고 너무 이상적이라는 반론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런 사조직이 있었다면 김 정권을 침몰시킨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아들들의 비리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성격과 형식은 달리해도 좋으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내가 말한 취지의 고언 청취를 어떤 식으로건 정례화해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대통령이 ‘인의 장막’에서만 벗어나도 이미 절반의 성공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란다.
나는 노무현 지지자들에게도 5년 전 김대중 지지자들이 범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지금 노무현을 향해 각계각층의 주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나는 5년 전을 생각하면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의외로 많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중앙집권주의는 우리의 모든 삶을 관통하고 있다. 비판문화도 예외일 수 없다. 신문에서 이뤄지는 모든 비판을 비판의 대상 중심으로 통계를 내보면 어떨까 대부분 정부와 대통령을 향하는, 놀라운 수준의 중앙집중성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비판 내용을 따져보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를 목격할지 모른다. 서로 상충되는 비판이 너무 많다. 특히 이념적으로 그러하다. 진보주의자는 대통령이 보수적이라 비판하고, 보수주의자는 대통령이 진보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서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 각자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서만 외칠 뿐이다.
이념적 측면에서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갈등의 소지가 있는 모든 사안이 다 그런 식이다. 모두 대통령과 정부에게만 요구할 뿐 서로 간 소통은 없다. 언론도 소통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대통령과 정부에게 비판하는 것만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언로의 중앙집중성을 깨자
이런 식으로 비판의 과부하에 시달리는 대통령과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할까 자기들에게 약이 되는 고언의 판별력을 잃게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판에 둔감해지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의연’해지는 게 아니라 ‘둔감’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결과를 곧잘 ‘인의 장막’ 탓으로만 돌리지만, 실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복잡한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언로(言路)의 대통령 지향적 중앙집중성이 깨지지 않는 한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마다 ‘인의 장막’만을 탓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제도적으론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론 여전히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살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에게만 비판과 탄원을 집중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그 증거다.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은 이런 착각 또는 의식의 지체가 빚은 비극이다. 노무현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