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2월12일 제438호 

경제정책, 뜯어보니 확 다르네

시장논리 중시하는 이회창과 정부개입 필요성 강조하는 노무현… 각종 정책차이가 막판 판세 가를 수도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신참 빌 클린턴이 걸프전 승리의 영웅 조지 부시 대통령과 맞붙었을 때 내세운 구호다. 나중에 확인되었지만, 미국 경제는 당시 침체국면에서 회복국면으로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무렵이었다. 경제지표들은 엉망이었다. 부시 대통령 집권기간에 성장률은 연평균 0.5%에 불과했으며, 실업률은 7%대를 넘나들었다.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 아래서 이뤄진 각종 감세 조처로 연방정부의 재정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렸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사진/ 재래시장을 찾은 이회창·노무현 후보. 경제정책이야말로 국민 각자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용호 기자)

클린턴은 공공투자와 연구개발 투자, 산업기반 정비를 통한 연간 4% 성장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클린턴은 중산층에 대해서는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 최상류층 2%에 대해 세금을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 집권기 미국 경제는 유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그것이 클린턴 정부가 경제정책을 잘 편 덕분인지, 아니면 레이건 및 부시 정부 아래서 이뤄진 경제정책이 시차를 두고 낳은 효과 덕분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어쨌든 “문제는 경제”였다.

이는 대표적인 예일 뿐이다. 많은 나라의 주요선거에서 경제정책은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문제는 핵심쟁점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드물었다. 경제정책이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정치적 쟁점이 억눌렀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도 아직까지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박빙의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경제정책이 막판 판세를 좌우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경제정책이야말로 국민 각자의 삶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분야에 대한 TV토론이 벌어지고 나면 아직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의 귀에 경제정책이 메아리칠 가능성이 크다.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경제정책은 장밋빛 공약들만 보면 별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공약이나 발언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경제정책에 상당한 차이가 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정책 가운데 쟁점이 될 부분은 현재의 경제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앞으로 10년 동안 5.2%에 머물 것”이라고 지적했듯 우리 경제는 예전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것인가가 문제다. 무엇보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더욱 확대된 빈부격차를 어떻게 해소할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경제정책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을 보면 이회창 후보는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시장논리를 더 중시하고, 노무현 후보는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정부 개입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차이는 잠재성장력 확충방안에서부터 드러난다. 이 후보는 교육과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 기업규제 완화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6%대로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 후보도 연구개발 투자의 확대를 강조하지만,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특수를 활용하는 적극적인 수출시장 개척, 노사화합 및 사회통합에 의해 7%대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장률 수치보다 성장률을 높일 ‘방법’의 현실성과 그 밑바탕에 깔린 철학은 음미해봐야 할 대목이다.

재벌정책 차이는 아주 뚜렷

새 정부에 넘겨진 주5일 근무제는 당장 유권자들의 이해가 걸린 사안이다. 이 후보는 “노사 간 자율합의가 아닌 입법을 통해 모든 사업장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다. 노 후보는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현 정부의 안에 찬성하면서 전체 사업장에 적용하는 시기를 정부안(2010년)보다 앞당겨 차기 대통령 임기 중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노사문제에 대해 이 후보가 ‘정부 개입 없는 노사 자율’을, 노 후보가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는 것도 노사문제에 대한 두 후보 간의 시각차를 보여준다. 공기업의 민영화에 적극적인 이 후보와 신중론을 펴는 노 후보의 견해 차이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빈부격차 문제에 대해 이 후보가 적극적인 공약을 내지 않고 있는 데 반해, 노 후보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조건으로서 분배”를 강조하는 것은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이는 특히 조세정책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 후보는 “변칙 상속이나 증여법 등이 정해놓은 조항과 비슷한 유형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유형별 포괄주의를 강화한다”는 쪽이고, 노 후보는 “과세대상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완전 포괄주의”를 표방한다.

주택공급 확대를 다같이 강조하면서도, 노 후보가 집값 안정을 위해 부동산에 대한 보유단계의 과세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유권자들 사이에 이해가 엇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보유세 강화가 집값 안정에는 기여하겠지만, 고가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부담이 커지는 만큼 반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관련 조세의 경우 이 후보는 ‘법인세율 인하를 통한 부담 완화’를 제시했다. 반면 노 후보는 중소기업에 한해 법인세율을 낮춰주고, 연간소득 3천만원 이하의 봉급자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경감해주겠다고 공약했다.

노무현, 정몽준과의 정책연합이 변수

재벌정책에서도 두 후보 간의 차이는 아주 뚜렷하다. 이 후보는 기업에 대한 규제에 부정적인 것처럼 재벌에 대한 출자총액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반대한다. 반면 노 후보는 출자총액 제한제도 등을 존속시키면서 집단소송제도 도입에도 찬성한다. 또 재벌의 금융기관 소유 및 경영참여에 부정적이다.

경제정책 중 쌀문제는 농민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다. 이 후보나 노 후보 모두 현재의 최소시장접근물량 방식을 유지하고, 쌀 관세화를 통한 개방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런 대응 전략이 옳은지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지난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쌀시장은 절대 개방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약속을 어긴 일이 있어, 농민들에게는 누구를 더 믿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이와 함께 국민통합21과 정책연합을 한 노 후보로서는 정책연합 때문에 실제 경제정책 추진 과정에서 공약이 흔들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계속 듣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 후보의 이런 점은 재산가에 대한 부유세 도입과,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 노동자의 기업 경영참여를 주장 등을 통해 노동자 농민의 이익 보호 및 빈부격차 해소에 가장 적극적인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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