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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세대라 불러다오! ‘재수 없는’ 미국에 침을 뱉는 월드컵 세대들… 당찬 발언을 미덕으로 여기며 들불처럼 일어나
“이상하고 더러운 기분이에요.” “왜요” “죄가 있는데 죄가 없다고 하니까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여중생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기 위한 네티즌들의 촛불시위가 열리고 있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주변. 때는 11월30일 오후 6시 조금 지나서. 교복차림에 X자 표시를 한 파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나선광(16·중3)군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생각도 대답도 거침이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더럽게 생각해요.” “예” “이번에 무죄(판결) 난 것도 그렇고, 6·25 때도 우리 도와준다고 해놓고, 우리나라 사람들 죽이고 그랬잖아요. 유죄라고 하거나, 부시가 직접 사과할 때까지 이런 데 계속 쫓아다닐 거예요.” “미군이 철수하면 불안하지 않겠어요 전쟁이라도 나면….” “우리나라하고 북한 문제 아닌가요. 왜 미국이 간섭하느냐 이거죠. 우리끼리 해결할 문제잖아요.”
촛불시위에 참가한 10대들의 분노
“씨발, 지금 햄버거가 넘어가냐” “버~거~킹 나~와~라!” “여러분은 햄버거 안 먹어요” “아, 우리야 롯데리아 가서 먹지.” “여기 온 거 부모님이 아세요.” “아유 몰라요, 말 시키지 마세요.” “여기 왜 왔어요” “같은 중2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게 분해서 왔어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왜 미국법에 따라 처벌해야 하나요. 이게 말이나 돼요”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여기저기서 말의 성찬이 벌어진다. ‘고등학교 1학년 이성윤’이라고 소개한 네티즌이 먼저 마이크를 잡는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전부 다 같은 마음일 거예요. 살인미군은 처벌돼야 하고, 부시에게 확실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잠시 말을 더듬자 자연스럽게 구호가 터져나온다. ‘효~순~이를 살~려~내~라! 미~선~이를 살~려~내~라!’ 또 다른 네티즌이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엄마랑 대화를 많이 하거든요. 요새는 미국 ‘뿌셔야’ 한다는 얘기만 해요. 오사마, 거 누구냐, 오사마 빈 라덴이 쌍둥이 빌딩 테러한 뒤에 미국이 뽀갰잖아요. 거 어디냐, 거기. 아~! 아프가니스탄. 그래 놓고, 우리 효순이 미선이 죽여놓고는 아무 잘못이 없대요. 이게 말이 돼요. 어제 부시가 사과했다는 말을 뒤늦게 들었는데, 막 분하더라고요. 한국 와서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 “맞아요!” “맞습니다!” 무리들 속에서 각종 ‘리플’이 튀어나온다.
“미국 물건 쓰면 탱크 만들잖아요”
‘옳소’라고 외치는 정경희(17·고2)양에게 물었다. “여고생들도 ‘명품’ 좋아하잖아요. 정말 불매운동 할 거예요” 뜨악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미국 물건 쓰면 그걸로 탱크 만들어서 우리 아이들 또 죽이면 어떡해요. 안 쓸 거예요.” 대전에서 왔다는 그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지난주 대구에서 열린 추모집회에도 참석했다고 했다. 친구 2명과 함께 온 이화여고 2학년 오아무개(17)양은 훨씬 분석적이다. “무죄판결은 예상했어요. 미군 군사법정에서 열린다고 할 때부터. 부시 대통령이 이번에 간접사과라도 한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봐요. 북한 핵문제도 있고, 반미감정이 더 높아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어요.” 고등학생 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한술 더 떠 “미국이 우리에게 도움만 주는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미 관계의 불평등성에 대해서까지 한참 말을 이었다. 곁에 있던 친구 육아무개(17)양도 거든다. “더 이상 우리나라가 미국 압력에 굴하지 않고 대등한 외교를 했으면 좋겠어요. 국회의원이나 장관들도 외교문제에서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어느샌가 스피커를 타고 인터넷 유행가요
온라인에서 불 붙어 ‘반미 번개’로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가볍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번져나갈 수 있는 ‘젊은 세대의 강력한 휘발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깊이 있게 천착하지는 않지만 관심의 폭이 아주 넓고 기성세대처럼 닫혀 있지 않아요. 겉으로 보면 리니지 게임에 취해 심각한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비상식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참지 않죠. 순수한 의미의 진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굉장한 에너지가 있는 거예요. 그런 열정이 축구·음악·게임으로부터 사회적 의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참여하고 발언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홍성태 교수(상지대 사회학)는 이들이야말로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라고 규정한다. “개인주의는 자기 자신의 독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독자성도 존중하죠. 차이에 대한 존중,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는 바로 개인주의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기도 합니다. 지금 네티즌들의 반미운동의 심층에는 ‘미국이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어요. 결국 네티즌들의 반미운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자기표현에 익숙… 대등한 관계 요구
월드컵 세대는 신세대 논쟁이 처음 등장한 90년대 초의 신세대보다는 정치적으로 훨씬 성숙해 있다. 당시의 신세대들은 군사정권 아래서 억압받아왔다고 생각되는 자기표현을 문화적인 분야에 국한했다. 이에 반해 월드컵 세대는 문화뿐만 아니라 스포츠나 정치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경계가 없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한창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시작할 때 태어나고 자라난 세대다. 한국은 지금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다. 200여개가 넘는 나라 중에 11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거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미국관, 비굴한 미국관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홍성태 교수는 이른바 월드컵 세대와 기성세대의 미국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절대적 빈곤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온 기성세대에게 미국은 천국이며, 미국처럼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따라서 미국 앞에서는 발발 기어야 했다. 하지만 월드컵 세대는 한-미 관계가 일방적으로 의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이를 자부심이라고 표현한다. “예전의 반미는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죠. 한스럽기도 한 그런 의식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 10대들은 월드컵을 중간에 끼고 있어서 더 그런데, 자신감이 있어요. 여기는 우리 땅이고 너희들이 우리 땅에 있는 것은 너희들에게도 도움이 되니까 있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계속 있고 싶으면 까불지 마라. 꼬우면 이 땅을 떠나라는 식이죠.”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굴종은 싫다
월드컵 세대의 전방위적 의사표현을 가능케 한 것으로 인터넷이라는 열린 미디어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의 경우 이른바 ‘늙은 기득권 세력’이 미디어를 독점하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면서 국민의 의식을 조작할 수 있었지만, 인터넷 등장 이후 그런 여론조작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이른바 ‘조·중·동’이 부시의 사과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데 대해 네티즌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그 좋은 예다.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력의 정치세력화라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김수기 대표는 “추상적인 논의에 머물렀던 전자민주주의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고 얕은 술수나 엉터리 사과로 달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이런 현상이 ‘붉은악마’를 거쳐 최근의 ‘반미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월드컵 세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늙은 기득권 세력으로 대표되는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은 한국이 가장 열악할 때 맺은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진작 바뀌어야 했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과 결탁한 우리나라의 늙은 기득권 세력이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늙은 기득권 세력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은 우리 사회가 변했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모르는 척할 뿐이다. 지금의 반미는 미국을 완전히 거부한다는 반미가 아니다. 한-미 관계를 합리화·정상화하자는 거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맺었던 불평등한 관계를, 필리핀보다도 못한 열악한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거다.”(홍성태 교수)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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