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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등록 2002.11.21(목) 제435호

[표지이야기] "'반창'에는 '반DJ'가 특효약"

다된 밥에 재 떨어진 한나라당 대책마련 분주…단일화 흠집내기 등 네거티브 공세 점화

“단일화 결과는 이미 정몽준으로 결론이 나 있는 것 같다. 노무현 후보는 들러리에 불과하며 공작의 희생물임이 명백하다.” “애초 정몽준으로 단일화하려고 음모를 진행했지만 결국 노무현으로 단일화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한 얘기가 아니다. 김영일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11월16일과 17일 각각 단일화 후보로 누가 될지를 예측한 말이다. 상황판단이 하루 만에 정반대로 뒤바뀌었다. 급작스런 단일화 성사에 한나라당이 그만큼 혼비백산했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상대진영 교란작전일까.

대선전략 전면 수정에 돌입

느긋하던 한나라당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단일화 합의 소식이 전해진 16일 이후 한나라당은 밤중에 긴급 기획단 회의를 소집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사실 노무현-정몽준 회동이 이뤄지기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은 단일화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기획단의 핵심 관계자는 “단일화 성사 가능성은 0%”라며 조목조목 근거를 들이댔다. “단일화가 돼야 선거가 좀 재미있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아 유감”이라며 여유도 보였다. 불과 1주일 전 얘기다.

설마했던 한나라당이 혹시나 하며 긴장하기 시작한 것은 15일 노-정 회동이 성사되면서부터였다. 두 후보의 심야회동 장소인 국회 귀빈식당에도 한나라당 당료들이 나타나 분위기를 탐색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웠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고, 여유는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여유작작하던 기획단 관계자는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질 수 있고, 받아놓은 밥상이 엎어질 수 있게 됐다. 이제 정말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엄중한 상황인식을 내비쳤다.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단일화를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이회창 후보는 “한쪽을 밀던 분들이 다른 쪽이 선택됐다고 반드시 그분을 밀겠느냐”며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에 의문을 나타냈다. 이 후보의 분신으로 불리는 윤여준 의원도 “일시적으로 바람이 불기는 하겠지만 길게 가지 않고 곧 소멸할 것”이라며 “시기가 너무 촉박한데다 두 후보가 이미 각각 이미지에 의존한 바람을 한 차례씩 경험했기 때문에 밑천이 다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외부용이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애써 태연한 척하는 태도에서 단일화가 자칫 ‘이회창 대세론’의 기세를 꺾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엿보인다.

내부적으론 단일화의 위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11월2일 “후보단일화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되더라도 대세에 큰 지장 없다”고 단언한 김문수 기획위원장은 막상 단일화가 현실화되자 “시너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좀 두고 보자”고 말을 아꼈다. 기획단의 핵심 관계자도 “단일화가 바람을 노린 것이니 바람이 불 테고, 이회창 후보가 밀리는 상황도 나올 것”이라며 단일화의 효력을 인정했다.

위기가 닥쳤는데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한나라당은 단일화 불발과 다자구도를 상정하고 짜놓았던 대선전략의 전면 수정에 돌입했다. 기획팀 관계자는 “이제 대선구도가 새롭게 바뀌었으니 대응전략도 180도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적 대응전략은 우선 ‘단일화 흠집내기’에 집중된다. 초기에 단일화의 바람을 차단하자는 계산이다. 단일화 흠집내기의 핵심은 DJ와 청와대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서청원 대표는 단일화를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배후조종에 의한 제2의 국민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김영일 사무총장, 남경필 대변인 등 당직자들도 연일 음모론과 이면합의설을 제기하며 같은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딱 부러진 근거는 내놓지 못한다. 다만 △100명이 넘는 거대정당의 후보와 의원이 단 1명뿐인 정당의 후보가 50 대 50의 똑같은 조건으로 단일화를 한다는 것이 공작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 △DJ와 교감이 없다고 볼 수 없는 민주당 동교동계 인사들의 노무현 흔들기를 통해 단일화까지 이르게 됐다는 점을 방증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있다. 청와대 음모론과 DJ 배후설에는 단일화가 정몽준 후보로 성사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노 후보로 단일화하기 위한 음모라면 그동안의 숱한 ‘노무현 흔들기’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총장이 단일화를 ‘민주당 후보교체의 명분쌓기’와 ‘동교동계의 노무현 고사작전’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관측이 엇갈린다. 정 후보를 점치는 사람도 있고, 노 후보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론조사 결과 노 후보가 정 후보를 앞지른 것도 한나라당의 음모론을 궁색하게 한다. 기획단의 핵심 관계자는 “노 후보로 단일화된다고 얘기하면서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개인기는 노, 득표력은 정

이회창 후보가 상대하기에 누가 더 유리할지에 대해선 대체로 정 후보쪽이 버거운 상대라는 분석이 많다. 기획단의 핵심 관계자는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노 후보가 어려운 상대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정 후보가 우리 표를 더 많이 잠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후보는 개인기가 뛰어나지만 지지층이 협소한 편이고, 정 후보는 개인기가 떨어지지만 지지층이 넓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단일화 바람이 불면 ‘정풍’보다는 ‘노풍’이 드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후보 등록 이후의 단일후보에 대비한 거시적인 선거전략의 틀도 크게 변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의 전략적 기조는 △대세론 확산 △DJ 공격 자제 △네거티브 공세 자제 △20대와 30대 충청권 등 사각지대 공략 등이었다. 당직자들에게도 ‘DJ 공격 자제령’을 내렸다. 이런 기류 때문에 정가에선 한나라-청와대 밀약설이 나돌기도 했다. 단일화는 이런 전략의 물줄기를 일거에 바꿔버렸다. “단일화의 공식은 한마디로 ‘이회창 반대’다. 우리는 ‘김대중 반대’로 간다. 한동안 DJ를 공격하지 않았다. 김홍걸이 석방돼도 별소리 안 했다. 이제부터는 다르다. 정권교체와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건다. 단일화를 DJ정권 연장을 위한 음모로 규정하고, 누가 단일후보로 나서든 DJ의 후계자로 낙인찍을 수밖에 없다. 그쪽이 ‘반창연대’를 들고 나왔으니 우리는 ‘정권교체연대’를 꾸릴 것이다.” 기획단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네거티브 공세를 통한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의원 영입을 통한 대세론 확산전략에도 변화기류가 감지된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단일화라는 큰 흐름이 있는데 의원 한두명 영입으로 표가 나겠느냐”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의지할 곳은 결국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논리로 JP 포용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반창연대’의 폭을 조금이라도 좁혀두자는 계산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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