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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2.11.21(목) 제43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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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마누라는 자고 있을 거야” 단일화합의 뒤 포장마차 뒤풀이에서 인상적인 세 가지 장면
후보단일화를 전격 합의한 11월16일 새벽 포장마차. 노 후보가 먼저 자리를 뜬 뒤에도 소주잔은 계속 돌았고, 닭발과 데친 오징어 주문도 끊이지 않았다. 정 후보와 따로 술을 마시던 민주당 의원들이 “이제 우리 한식구 됐는데 같이 마십시다”라며 합석해왔고, 정 후보도 흥에 겨운 듯 “이제 다섯병 마셨는데, 우리 딱 열병만 더 마십시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장면1 정 후보가 민주당의 유인태 전 의원에게 술을 따랐다. “유 선배, 우리 옛날에 친하게 지냈잖아요. 아! 그런데 왜 연락도 한번 안 하십니까. 여하튼 경기고는 문제야 문제. 왜 있잖아요, 경기고 나온 사람들. 이익치니 이회창이니 말예요.” 정 후보가 여론조사를 받아들인 이유 가운데 하나를 토로하는 대목이다. ‘도쿄발언’을 통해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에 자신을 끌어들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그 배후로 확신하는 이회창 후보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다. 정 후보가 잔을 채우던 그 순간 이씨는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정 후보가 이를 미리 알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씨가 ‘정몽준 킬러’를 자임하고 나선 만큼 정 후보로서는 맞서 싸울 공동전선의 필요성을 느꼈을 법하다. 정 후보는 한때 한나라당과 이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거꾸로 노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을 수도 있는 선택을 했다. 국민통합21 관계자는 “강원도의 교두보로 삼으려고 공을 들인 한승수 의원이 한나라당으로 가면서부터 한나라당과의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이익치씨 문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박근혜 의원도 이 후보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 후보의 결단에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여론조사 결과 승산을 높게 가졌으며 노 후보와 담판을 짓기 30분 전에 21.1% 대 17.7%로 자신이 앞선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를 들었다. 정 후보는 회담시작 10분 만에 “노 후보의 제안을 받겠습니다”고 시원스레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계산’말고도 정 후보의 ‘낭만적 기질’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용단’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지금 집에 가면 우리 마누라가 깨어 있을까요, 자고 있을까요. 강심장이라 아마 자고 있을 겁니다. 오히려 ‘그게 뭐 뉴스거리라고 요란을 떠느냐’고 야단칠지도 모릅니다”고 말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돌려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장면2 정 후보가 이철 전 의원에게 술을 따랐다. “이 선배가 누굽니까. 사형수 이철 아닙니까. 가장 어려운 때, 10월유신 때 저 같은 평범한 학생은 감히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한 분 아닙니까. 그런 이 선배와 함께 정치와 미래를 논하는 것 자체가 감격입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표상입니다.” 정 후보가 70년대 ‘부잣집 도련님’으로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짊어졌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이 전 의원이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정 후보에게 끼쳤을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이 전 의원은 ‘탈당’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정 후보를 압박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1월8일 정 후보가 부산 생가를 방문할 때는 6시간 동안 정 후보를 밀착마크한 결과, 자신이 협상단장을 맡고 박범진 전 의원 등 단일화에 적극적인 진용으로 협상단을 물갈이하는 성과를 따내기도 했다. 민주당에서도 그를 후보단일화의 ‘일등공신’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로써 그는 87년 김대중·김영삼 후보단일화를 주창하고, 88년 야권통합의 길을 걸어온 자신의 정치여정에서 상당한 결실을 맺게 됐다. 96년 낙선 이후 걸어온 음지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할 경우 국민통합21이라는 간판만으로는 2004년 총선에서 승산이 없다는 민주당 내 옛 동료들의 설득에 상당부분 공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전 의원으로서는 향후 정치여건이 ‘꽃놀이패’다. 정 후보로 단일화되면 당연히 국민통합21 내 1등공신이고, 노 후보로 단일화돼도 그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기 때문이다.
#장면3 민주당의 이호웅 의원이 김민석 전 의원에게 술을 따랐다. “우리 민석이랑 영영 헤어질까봐 걱정 많이 했어.” 김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에서 정 후보쪽으로 옮겨온 신낙균 전 의원이 대신 받는다. “그래도 말들을 너무 심하게 해서 섭섭했어요.” 김 전 의원은 이날 탈당 한달 만에 친정식구들을 다시 만났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보상받고 싶어서인지 조금은 들떠보였다. 자신에 대한 비판 논평을 연거푸 낸 김현미 부대변인에게 악수를 청하고 자신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말한 임채정 의원을 뒤에서 껴안기도 했다. 그는 “거봐! 내가 결국 다시 만날 거라고 했지”라며 단일화 과정에서 자신이 해낸 역할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는 이날 술이 당기는지 민주당 협상단과 함께 2차를 가서 새벽 4시까지 폭음을 했다. 하지만 민주당 사람들은 그의 기대만큼 와락 안아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2차를 함께한 한 의원은 “깊은 얘기는 못 나눴어. 김민석이 있어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김 전 의원을 ‘배신자’라며 성명서를 낸 임종석 의원도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다. 김 전 의원은 정 후보로 단일화를 이뤄내기 위해 뛰어야 되는 처지기 때문에 여전히 적대관계다. 또 김 전 의원이 단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정 후보를 압박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김 전 의원로서는 다행인 게 그의 홈페이지에 “이젠 그대의 충정을 알썽 싶으오”라는 내용의 글들이 제법 올라온다는 점이다. 김 전 의원이 기대한 대로 친정식구들과 ‘한길에 하나’가 될지 여부는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판가름날 듯싶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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