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11월21일 제435호 

‘단풍’은 폭풍인가

노-정 후보단일화 합의로 불붙는 대선판… ‘누구로’ ‘어떻게’의 문제 쉽지만은 않다


사진/ 후보 단일화 합의 발표 이후 서로를 껴안고 연대를 과시하는 노무현·정몽준 후보. (이용호 기자)


“이회창 후보 옥인동 집 앞에 앰뷸런스를 대기시켜놓아야 할걸.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몰라. 아니면 단일화가 될까봐 조마조마해서 심근경색을 일으킬 수도 있지.”

11월15일 밤 국회 귀빈식당에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만 남겨놓고 나오며 국민통합21의 이철 협상단장이 한 말이다. 정 후보는 이날 노 후보와 담판에 들어가기 전 이 단장에게만은 자신의 결심을 귀띔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심상찮은 여론조사 결과

물론 이 후보는 단일화 합의 소식에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밋밋하던 대선 판도에 한바탕 태풍이 몰아치려는 듯 먹장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여론조사 결과가 심상찮다. 단일화 합의 직후인 16일 실시된 여론조사 5곳 모두에서 그래프의 지지도 곡선이 꺾이는 ‘변곡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보나마나 한 승부에서 해볼 만한 승부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이런 현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코리아리서치센터(KRC) 여론조사다. KRC는 협상 전날인 14일과 합의 직후인 16일 두 차례 여론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이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41.4% 대 33.2%로 크게 밀리던 노 후보가 이틀 만에 39.3% 대 37.4%로 바짝 추격했다. 단일후보로서 정 후보는 39.3% 대 36.1%로 뒤지던 수치가 거꾸로 36.8% 대 37.9%로 역전을 시켰다. 정 후보의 이런 역전극은 16일 실시된 5곳 여론조사 가운데 3곳에서 나타났다. 정 후보로서는 오랜만에 맛보는 ‘단비’다.


사진/ 후단협 의원들의 회의 장면. 단일화 합의 이후 여론조사에서 단일후보로서 정몽준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앞섰다. (이용호 기자)


당선 가능성을 묻는 KRC의 질문에도 이회창 후보 44.6%, 단일화 후보 21.5%로 나타났고 누구로 단일화 됐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응답이 14.2%로 조사됐다. 이는 이틀 전 각각 47.6%, 12.8%, 25.1%로 나타났던 수치에 비하면 단일화의 폭발력이 점차 현실화되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를 놓고 민주당과 국민통합21 양쪽은 모두 환호하고 있다. 국민통합21 한 관계자는 “흐름을 완전히 반전시켰다. 적어도 후보등록일 전까지는 노·정 두 후보가 정국을 이끌고 나간다. 노풍(盧風), 정풍(鄭風)에 이어 단일화의 단풍(單風)이 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두 당은 50대 중반인 두 후보의 단일화가 60대 후반인 이 후보와 대비되면서 ‘세대교체’ 바람이 일 것으로 기대한다. 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최근 중국 4세대 지도부의 출범이나 미국·영국의 젊은 지도자의 출현 등을 보면 시대가 바뀌면서 이뤄지는 선택은 한 세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3김 이후 새로운 리더십은 50대에서 나오게 돼 있다”고 자신했다.


사진/ 합의 이후 박수를 치고 있는 국민통합21 관계자들. (이용호 기자)


하지만 기대가 충족될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우선 텔레비전 토론이 철저하게 정책중심으로 짜여져 있다는 점이다. 서로 결정타를 주고받기 힘든 형편이라 두 후보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기 쉽지 않고, 이럴 경우 ‘힘의 집중’을 통한 파괴력을 보여주기가 만만찮다는 해석이다. 또 단일후보가 결정된 직후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점을 걱정하기도 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지지도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기세가 살아가야 하는데 11월27일부터는 그게 불가능하다. 어쩌면 단일화로 거둔 성과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초반 흐름 노 후보 유리, 문제는 충청표


사진/ 후보단일화 합의를 위한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회동엔 이례적으로 많은 기자들이 몰렸다.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전격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이용호 기자)


단일화의 초반 흐름은 분명 노 후보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동안 계속 3위로 처져 있던 노 후보가 서너달 만에 처음으로 정 후보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이다. 16일 실시된 여론조사 5곳 가운데 4곳에서 확인됐다. 여전히 정 후보가 2위를 한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도 그나마 0.3%포인트 차이다. 또 ‘누구로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보느냐’나 ‘누구로 단일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노 후보가 46.1%로 정 후보 33.7%를 앞선 것(미디어리서치)을 비롯해 모두 노 후보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KRC의 김정혜 부장은 “후보단일화의 매듭은 정 후보가 지었지만 지지도는 노 후보에게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노 후보가 주요 정당의 후보라 정 후보가 결국 노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숨어 있던 노 후보 지지층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또 그동안 하락 추세를 보여온 정 후보 지지도 흐름과 상승세를 탔던 노 후보 지지도 흐름이 후보단일화를 계기로 증폭된 측면도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후보와 양자대결에서는 정 후보의 경쟁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역구도로 설명한다. “영남에서 득표력은 노·정 두 후보가 비슷하다. 호남은 누구라도 단일화만 되면 몰표를 줄 것이다. 문제는 충청표인데, 노 후보에 대해서는 반감이 심하고 정 후보는 끌어들일 여지가 많다. 그러나 정 후보 개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충청을 대표해온 김종필·이인제 의원이 결국 정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깔려 있는 지지다. 정 후보가 이들과 함께해야 지지도가 진짜 표가 된다.”

즉 3자구도에서는 호남표가 노 후보에게 몰리면서 정 후보가 밀리지만 양자대결이라면 영호남은 같은 조건에서 충청표를 더 흡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후보 진영에서는 이런 그림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과거 DJP 공조가 만들어낸 호남·충청 연합구도라는 낡은 틀 속에서 후보의 경쟁력을 파악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종석 의원은 “부산에 가보면 분위기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노 후보의 지지도가 최근 10% 이상 상승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에 대해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반작용이 일고 있다. 노 후보가 과거 DJ 공천장을 가지고도 38%를 득표했는데, 이번에는 40% 이상을 자신한다. 설사 충청에서 정 후보보다 못하다 하더라도 부산·경남에서 충분히 상쇄하고 남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16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노 후보 지지도 상승에는 부산·경남 표심이 상당히 가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의 차이 극복할까


사진/ 1990년 울산 현지에 내려와 현대 중공업사태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노무현 후보 그와 정몽준 후보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역대결 구도를 인정하더라도 후보단일화로 충청에서 노 후보의 취약점이 크게 보완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우리가 이길 경우 다음 정권은 노무현-정몽준 공동정권이다. 이 점을 부각시키면서 선거운동을 펼칠 경우 충청권에서 불리하지만은 않다. 또 이를 위해 자민련 및 이인제 의원과의 연대는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또 노 후보 진영에서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활자매체를 거치지 않고,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시 한번 여과 없이 국민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누구로’ 단일화되더라도 ‘어떻게’ 단일화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역시 정책의 차이로 보인다. 11월6일치 민주당보에는 “일관성을 상실한 정 후보의 대북정책으로 가변성 많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내용의 비판기사가 실렸다. 15일 밤 회동에서 정 후보는 “남북문제나 대미인식에서 노 후보와 아무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뭉뚱거렸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단일후보의 상대방 표 흡수율이 60%를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체성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국민통합21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 재벌문제나 남북관계에서는 노 후보와 충돌하고 있다. 당장 해결할 방법도 없다. 이런 차이점은 그냥 놔둔 채 나머지 정책들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한계를 토로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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