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88.6%가 공직사회의 부패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나라. 인·허가, 사건·사고 처리 등 행정업무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 ‘급행료’를 내겠다는 사람은 25.6%에 지나지 않지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것이 민원 처리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80.6%나 되는 나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차봉천·이하 공무원노조)이 지난 9월 말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한민국’은 분명 부패공화국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부패공화국의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더니, 단체행동까지 벌였다.

“경제위기 이후 180도 달라졌다"

사진/ 11월4일 밤 전국공무원노조 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린 서울 한양대학교 대운동장. 경찰이 진입해 집회 중이던 조합원들을 강제 연행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지난 11월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공무원노조의 이른바 ‘연가투쟁’ 과정에서 10명이 구속되고, 454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에 앞서 11월1일 연가투쟁에 대한 기자회견 뒤에는 지도부 5명이 구속됐다. 또 지난 10월 차봉천 위원장과 행자부 장관실 점거농성에 가담한 조합원 2명도 이미 구속된 상태다. 도대체 공무원들이 왜 스스로 노동자라고 주장하고 나서 ‘탄압’을 자초하는 걸까

“철저하게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뭐가 불만이어서 노동조합을 만드느냐.” 공무원노조가 연가투쟁에 들어가자 몇몇 언론사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표적인 ‘철밥그릇’으로 여겨온 공무원들의 단체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대기업보다 임금수준이 조금 낮을 뿐 공무원 사회는 그동안 안정적인 신분과 정년보장, 각종 연금혜택 등 특혜를 누려왔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김정수 정책기획단장은 “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으며,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공무원 사회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고용불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는 얘기다.

“98년 이후 공무원 사회에도 직권면직 제도가 도입됐다. 3차례에 걸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공기업뿐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서도 강도 높게 진행됐다. 공무원 총 정원제 도입과 함께 초과인원은 가차 없이 잘려나갔다. 지금까지 10만여명의 공무원이 직권면직이나 명예퇴직·정년단축 등으로 현직을 떠났다. 이 가운데 90%가량이 기능직·고용직 등 힘없는 하급직이었다. 공무원도 더 이상 신분보장이 확실한 ‘철밥그릇’이 아니다.”

성과급제·개방형임금제 등 각종 경쟁논리가 공직사회에도 예외 없이 자리를 잡았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의 상징으로 여긴 공무원 연금조차 주식시장 등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부실화하면서 위기감을 더했다. 공무원 사회도 우리 사회 전체를 흔들고 있는 고용불안과 노후불안의 이중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공무원이 무슨 노동자냐. 관공서 가보면 아직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일 뿐이다.”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매서운 질타는 이어진다. 고위직에서 하급 말단관료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짜인 부패의 먹이사슬에 안주해온 공무원들이 갑자기 노동자로 자처하고 나선 것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공무원은 이른바 ‘국민 전체의 봉사자’가 아닌가

정부의 공무원조합법안은 문제투성이?

사진/ 11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결의대회에 참석한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노조 허용"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지난 10월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공무원조합의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 공무원 단체의 명칭을 ‘노조’가 아닌 ‘조합’으로 정한 것도 이런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공무원은 근로자인 동시에 공직 수행자라는 특수성이 있다. 이런 지위에 걸맞은 범위 내에서 단체활동이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박재범 정책국장은 “국민의 공복이라는 특수신분을 내세워 공무원노조를 불허하는 것은, 국민 위에 군림해온 잘못된 역사를 유지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만연한 부패구조에 기대어 작은 권력에 안주한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공무원은 노동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공무원도 ‘노동자’임을 인정하는 것인가 행자부 관계자는 “공무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단결권·단체교섭권 등 핵심 노동권을 보장해주겠느냐”고 말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66조는 “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입법안은 오히려 이런 제약을 특별법 형태로 풀어준 것이라는 게 행자부의 설명이다.

노동계 시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정부의 공무원조합법(안)은 단결권의 핵심인 자주성을 극도로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안을 보면,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범위와 대상·교섭 주체 등에 대해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또 공무원으로 구성된 노동단체를 제외한 노동단체에 가입하거나 연합체를 결성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으며, 일반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행정기관의 설립신고서를 받은 노동조합이 아닌 경우 노동자로서 기본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법 현실 역시 노동계의 우려를 높이고 있다.

단체교섭권 역시 논란거리다. 정부는 ‘공무원조합’의 단체교섭권은 인정하면서도, 교섭에 따른 협약체결권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공무원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법과 예산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국회와 지방자치 단체의 고유권한으로 행정부가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3권분립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가 내놓은 법안에서 협상내용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외국에서도 이런 ‘신사협정’을 통해 단체협약 문제를 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교조의 전례

이에 대해 노동계는 “행자부의 설명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경우, 공무원노조와 정부가 단체교섭 결과에 따라 단체협약을 체결하지만, 협약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본래 의미의 단체교섭이 아니라 정부의 결정에 앞선 사전교섭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단체협약에서 합의한 내용대로 근로조건에 관한 법 규정을 개정하기 때문에 단체교섭은 사실상 준수된다. 우리의 상황은 너무 다르다. 이미 전교조가 교육부와 합의한 사항에 대해 기획예산처가 예산배정을 해주지 않아 물거품이 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상지대 김인재 교수(법학과)는 “공무원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자칫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 교원이라는 특수한 신분에 맞게 특별법으로 특례 규정을 정하지만, 전교조는 기본적으로 노동조합법의 적용을 받는다. 부당노동행위 구제 등 일반적인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전교조처럼 공무원노조 역시 최소한 이에 준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